어쩌다 카페 사장이 되었습니다.
내 인생의 선택지 안에 없었던 소상공인으로 살고 있지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내려고요.
한 때 꼬마빌딩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에 편승해 꼬마빌딩을 짓기 시작하여, 카페를 운영하는 일상을 공유하려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 있던 자리에 어느새 새 건물이 솟아 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휀스만 덩그러니 있었는데, 무심히 지나던 사이 눈 깜짝할 새 ‘짠!’ 하고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다는 말과 함께 ‘아이고, 부실공사 어쩔~’하며 단정 지었다. 내 일이 아니라고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거였다.
누구도 말만 하면 ‘짠’하고 등장시키는 도깨비방망이를 갖길 원하지만 슬프게도 그런 것은 없다. 겉으로 보이는 ‘짠’의 순간 뒤에는 오수백 번의 회의, 수천 번의 수정, 보이지 않는 인내가 숨어 있다는 것을 직접 해보고야 알았다. 솔직히 나도 그렇게 일사천리로 흘러갈 줄 알았다. 하지만 한 장의 도면을 수정하는 데에도 일 년 이상이 걸렸으니 세상에 뚝딱 되는 건 아무것 없다는 걸 뼈저리게 배웠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평면도를 들었다 놨다 하며 ‘공사놀이’를 했다. 계단실을 중앙에 두었다가 답답하다 싶어 구석으로 밀어냈다가, 다시 중앙으로 불러들이기를 몇 차례. 퍼즐 조각을 제자리를 찾아 끼워 넣듯, 가장 효율적이 동선과 공간활용이라는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욕망의 줄타기를 했다. 하지만 토끼는 내 손에 잡힐 만큼 그리 호락호락히지 않았다.
주차 공간은 건축법상 최소 대수에 맞춰 두 대를 확보했다가, 1층 면적이 임대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생각하며 한 대로 줄이고, 결국 그마저도 없애버렸다. 건물 규모도 3층으로 했다가, '이왕 하는 거 한 층 더 올릴까?' 하며 4층으로 키웠다가, 예산을 계산해 보고는 다시 3층으로 낮추는 식이었다. 그 과정을 담당 건축사는 묵묵히 받아줬다. 우리의 폭풍 같은 요구를 묵묵히 받아주고, 반영해 주고 기다려줬다. 돌이켜보면 그때 우리의 손을 잡아준 것이 그분 인생에서 가장 큰 오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워낙 꼼꼼한 남편은 다른 분야이긴 하나 설계도면을 그리는 일을 하고 있어서, 건축도면이 나오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밤새워 수정을 하기도 했다. ‘이제 정말 마지막 수정이에요!’라고 매번 약속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조금 더 수정해 봤어요.’라며 웃기지 않는 상황을 멋쩍은 웃음으로 퉁친다.
가끔은 도면을 갈아엎는 대수술을 감행하는 남편의 타는 속을 알리 없는 나는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 수집병에 걸려 '이건 어떨까, 저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만 폭탄처럼 터뜨렸다.
작당모의하는 사이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마침 ‘꼬마빌딩’이 슬슬 인기를 얻을 때라 블로그나 유튜브에는 '연 5% 수익률 꼬마빌딩 투자' 같은 제목이 줄줄이 올라왔고, 우리는 발품을 팔며 감각을 키워나갔다. 도면을 머리에 그려보고 구조와 배치를 꼼꼼히 살피며, 반영하면 좋을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후 깨달은 것은 5%의 수익을 위한 95%의 고생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든 자신만의 주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건축을 하는 데도 예외는 없었다. 처음 설계를 시작할 때는 누구나 ‘최고의 건물’을 꿈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건축은 욕심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법의 테두리와 주어진 여건 안에서 ‘최선’을 찾아가는 일이야말로 진짜 실력이라는 것을 배웠다. 원하는 것을 전부 담기보다는 덜어내는 법을 익혀야 했고, 조급함을 버리고 시간을 견뎌야 했다. 건축은 한 층 한 층 인내를 쌓아가며 완성시키는 예술이었다. 덜어내고 기다리고 견디는 일, ‘최고’는 놓았지만 ‘최선’은 끝까지 붙들었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도시 한켠에 남아 있는 건물들을 보면, 그 안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층층이 쌓여 있음을 느낀다.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도시 속에서도 오래된 건물 하나가 주는 울림이 큰 이유는, 그 속에 시대의 기술과 삶의 흔적, 그리고 인간의 온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유한하듯 건축물 또한 언젠가 사라지지만, 그 존재는 시간을 품고 다음 세대에게 기억을 전한다. 그래서 건축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시간을 담는 그릇이며, ‘시간을 기억하는 예술’이다.
나의 공간 하나 갖고 싶다는 작은 바람에서 시작된 건축의 여정은 생각보다 길고 험했다. 예산의 한계로 우리가 직접 손을 보아야 할 부분이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이야기를 더 짙게 새겨 넣을 수 있었던 과정이었다.
건축은 결코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공간에서 숨 쉬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순간부터 이미 건축은 시작된다. 벽돌 하나에도, 창의 위치 하나에도 우리의 취향과 가치관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건물은 결국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도구여서 언젠가 이 건물이 세월의 무늬를 입고 다음 세대에게 전해졌을 때 나의 생각까지도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바란다.
‘어떤 삶을 짓고 싶은가’를 고민하는 순간부터 이미 인생의 설계는 시작된다도 건축처럼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무너지면 다시 세우고, 때때로 수정해 나가야 한다. 역심을 덜어내야 할 때가 오고, 예상치 못한 균열이 생기기도 한다. 그 모든 시행착오가 나를 지탱하는 기초가 된다.
건물을 올리는 과정은 나를 키우는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