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부끄러움을 배웁니다.

by 아름다움이란

부모님의 이야기를 소설로 씁니다.

엄마, 아빠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06화 그리움이 자라나다.




가난은 비교를 먹고 자란다.


선생님이 들어오시기 전부터 교실은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곧이어 굳은 표정으로 들어온 선생님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다. 거기엔 어김없이 정남이가 있었다.


"이형배, 박행남 .......김정남..."

"너희들은 왜 아직 월사금을 안 내는 거냐"

".................."

"왜 말이 없나"

"어머니께 말씀드려 볼랍니더"

"학교가 자선사업 하는 곳이가? 학교를 댕길라면 돈을 내야 한다. 내일은 꼭 내도록 해라"

"............................"

"반장"

",,,,,,,,,,,"

"반장 없나?"

"여 있습니다."

"빨리빨리 대답 못하나. 인사"

"차렷, 인사"

"안녕하십니까"


월사금은 책상과 걸상, 교실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보증금과도 같았다. 그날이 돌아올 때마다 시간의 속도를 실감했다. 세월이 지나며 무뎌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더 예민해지는 감정도 있는 모양이었다. 부끄러움과 수치가 그랬다. 매달 이름이 불려 선채로 꾸지람을 듣는 일은 익숙한 장면이었지만, 사춘기 사내아이의 몸집이 커가듯, 마음속 수치심도 해마다 덩달아 커지고 있었다.


공부를 못해도 보증금을 꼬박꼬박 내는 아이들은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하나라도 더 배워보겠다고 선생님의 말씀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던, 보증금을 내지 못한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온갖 모진 말을 견뎌야 했다. 정남이는 학교에서 교과서에 나온 지식보다 돈의 권력을 먼저 배웠다.


서 있는 아이들과, 앉아 천진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는 애초에 넘어서야 할 삶의 문턱이 달랐다. 교실 안에 드리운 그 보이지 않는 높낮이는 훗날 사회에 나가서도 이어져, 누구는 가볍게 넘는 문턱을 정남이는 몇 번이고 더 높이, 더 숨차게 뛰어넘어야 했다. 그때의 정남이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음 달 월사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그 걱정만으로도 이미 꽤 묵직한 돌덩이를 마음이 품은 지 오래였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걱정이 한가득이라 수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학업을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든 형님처럼 자신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은 점점 깊어졌다.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동네 어르신과 이야기 나누고 있는 고숙을 만났다. 약포 일이 늘 바쁜 탓에 찾아가도 잠시 대화 나누기 어려웠고, 설령 찾아간다 해도 월사금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해 돌아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은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았는지 고숙에게 달려갔다. 지금 아니면 다시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조급함이 용기를 부축인 게다.


“고숙, 그동안 안녕 하셨지라.”


“그래. 정남이구나. 학교 다녀오는가보제'”


“네. 그런데 이번에 월사금을 내야해서, 이번만 좀 도와주시면~”


"지금 대화중인거 안보이나? 내일 약포로 오니라.”


빛이 보였다. 약포에 찾아가면 ‘공납금 때문에 선생님한테 혼났구나’ 하며 마음을 달래주고, 큰돈도 선뜻 빌려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음 날은 뭐라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마음이었다.


"저 왔습니다."

"그래, 왔나. 올라가자"


1층에서는 약방을 운영하고 2층에서 살림을 하고 있는 고모댁은 지역에서 인심 좋은 부자로 알려져 있었다. 고모는 오빠의 빈자리로 힘들게 살아가는 조카들에게 때때로 도움을 주었다. 그것은 그런 베풂을 이해해 주는 남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가파른 계단을 가볍게 올라 거실에 앉았다.


"어제 길거리에서 그게 뭐 하는 짓거리냐.”


예상치 못한 호통에 정남이는 어리둥절했다.


“네? 거 무슨”


“버리장머리 없이 길거리에서 할 말이냔 말이다. 그런 얘기를 하려거든 여 와서 공손하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날을 되돌이켜 보면 예의 없는 행동이었던 것은 맞다. 고숙의 얼굴을 보고 반가운 것이었는지, 돈 얘기를 꺼낼 수 있어서 반가운 것이었는지 그 선후관계조차 이제 모호하다. 그래도 척박한 삶 속에서도 살아갈 용기를 주셨던 고숙에게 혼쭐이 나고 나니 설움에 목이 메었다. 그날 정남이는 다짐했다.


‘공부가 다 뭣이냐. 그만 둘란다. 무엇이 되얏든 그냥 빨리 돈 벌어서 나는 부자가 될란다. 공부는 돈 벌어서 다시 하면 되지’


공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미루는 것뿐이라며, 서운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어머니에게 말을 꺼낼때면 학교를 그만두라는 소리가 나올까봐 항상 조마조마했는데 결정을 내리고 나니 한편으론는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흔히들 공부도 다 때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당시는 배움에 때와 장소는 걸림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부재로 형님은 일찌감치 아버지 역할까지 해야 했다. 사정이 그렇더라도 정남이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매일 열심히 일한다고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16년 동안 보아왔으니 형편을 바꿀 방법을 공부해서 출세하는 것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 월 돌아오는 공납금을 내야 하는 때가 오면 어머니 앞에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학교에 보내달라는 자녀와 그럴 돈이 어딨냐며 일 손을 보태야만 밥이라도 굶지 않는다고 자식의 애원을 애써 외면해야 하는 부모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라도 해야 출세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쌈짓돈을 모아 자녀를 광주로, 서울로 유학 보내는 부모도 있었다. 학업을 그만두어야 하는 아이들은 그런 부모를 두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원망하거나, 일찍 철이 들거나 둘 중 하나였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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