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야기를 소설로 씁니다.
아버지를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하여...
바닷일은 늘 삶과 죽음의 경계 어디쯤에 있었다. 섬의 남자들이 작은 파도가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며 바다로 향했다. 그것은 배운 일이 바닷일뿐이었기 때문이었으며, 그래야 하루를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축해 놓은 쌀도 돈도 없는 이에게는 늘 죽음의 그림자가 따랐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보내도 비워진 곳간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타고난 운명을 탓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운명이라 받아들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닷속에서 건져 올린 그물의 무게만이 어부를 행복하게 때론 근심하게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일에 삶의 희로애락을 맡기며 하루를 살아낸다. 거친 파도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인간의 무력감을 맛본 남자들은 집으로 돌아와서는 종종 억척스러운 폭군이 되곤 했다. 바다가 허락하지 않은 것을 집안에서라도 움켜쥐려 드는 듯, 그들의 가부장적 권위는 바다의 변덕만큼이나 거세고 제멋대로였다.
하지만 섬의 여자들은 그런 폭압에 쉬이 무너지지 않았다. 위태로움 속에서 여인네는 더 강해져야 했다. 거친 파도를 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바다의 남자들과 다를 바 없이, 여자들 역시 삶의 온갖 풍파를 정면으로 맞서온 터였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된 노동과 살림살이 속에서 다져진 맷집으로 가정을 지켜냈다. 팍팍한 삶 속에서 잔소리 한마디, 쓴소리 한마디라도 던질라치면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운 고삐를 붙잡고 집안을 억척스레 꾸려나갔다.
'바다는 저 화상 안 잡아가고 뭐 하나. '
화 난 아낙들이 내뱉는 혼잣말에, 바다에서 남편을 잃은 영임은 생각했다.
'아무리 웬수같은 남편이라도, 남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얼마나 중한 일인데.'
하지만 좀처럼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런 말을 했다간 만만하게 볼까 봐, 힘든 마음을 내비쳤다간 헤프게 보고 사내들이 붙을까 봐 입을 더 꾹 다물었다.
사람들은 죽음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며 화풀이 대상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을 먼저 보낸 아낙들은 책임을 떠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했다. 영임도 마찬가지로 '남편 잡아 묵은 년, 팔자 드러운 년'이라는 오명을 얻었지만, 부인하지 않았다. 그래봤자 소용없는 일이라는 듯 보란 듯이 더 억척스러워지겠다고, 어디 두고 보라고 이를 악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두 아들을 키워낼 재간이 없었다. 밖에 나가 '애비 없는 자식' 소리를 듣게 하지 않으려면 더 엄해져야 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로 꼬장꼬장해 진 것은 처지가 만들어낸 성격이었고 아들을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정희야, 정남아. 느그는 나가서 절대 욕보이면 안 된다. 아베 없다고 놀려도 무시혀라. 싸우지 말고."
정남이는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무던히도 애썼지만 아베 없다는 조롱을 참아낼 인내심이 없었다. 매일 함께 놀던 동무라도 수가 틀리면, 상대방을 약 올릴 방법을 찾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아베 존재였다. 배알이 베베 꼬인 5살 아이에게 이성이란 게 존재할 수 있을까? 그만큼 어린아이들에게 아버지는 강하고 크나큰 존재였으리라. 고달픈 하루의 피로를 술로 달래고, 술에 취해 애먼 살림과 가족에게 화풀이를 해대는 아버지라도 존재 자체가 치졸한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던, 가족을 지켜주는 울타리였다. 그런 아버지가 정남이에게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