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이야기를 소설로 씁니다.
엄마, 아빠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김이 폴폴 나는 밥상이 들어온다. 연심이는 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마음은 벌써 콩밭에 가 있다. 그것이 진짜 콩밭이었다면 엄마가 얼마나 좋아했을까마는 안타깝게도 그 콩이 그 콩은 아니었다. 밭으로 갈 궁리가 아닌 밭에서 도망칠 궁리가 머릿속을 그득 채우고 있었다.
"연심이는 오늘 딴생각 말고 나가서 김매야 헌다."
"알았다니까요."
"저 가시내, 오늘도 내 빼기만 해 봐라. 가만 두나 보자."
어머니의 말에 풀이 죽어 대답했지만, 언니가 비아냥대는 말에는 이상하게 골이 난다. 식사가 끝나기 전부터 슬슬 눈치를 살핀다. 상을 물릴 때까지 앉아 있다가는 분명 설거지가 자기 차기가 될 것이 뻔하니, 빨리 먹고 일어나서 뛰어야 한다.
연심이가 아침마다 하는 것은 바로 '도망칠 결심'이다.
눈동자를 슬슬 굴리다 남을 밥을 욱여넣고 날쌔게 밖으로 튀어 나간다.
"잘 먹었소"
붙잡혔다가는 밭에 끌려가 하루 종일 고추 따고 고구마를 캐야 한다. 고추밭은 한번 들어가면 해가 중천에 떠도 나오기 힘든 곳이라는 것을 알기에 등 뒤에서 소리치는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지 한참이 지나도록 달린다. 쎅쎅 가쁜 숨을 쉬면 목에서 쇠맛이 느껴지지만 이제야 안심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친구들이 기다리는 아지트로 향하다.
농촌의 아이들은 일찍도 철이 든다는데, 집안일을 책임지는 오빠도 있고 살림 밑천이라 불리는 언니도 있으니 연심이 손 하나가 덜 가도 문제없었다. 그것은 14년을 살면서 터득한 눈치였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다 보면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간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면 금방 사위에는 어둠이 깔리고, 친구 얼굴조차 분간할 수 없는 캄캄한 밤이 찾아왔다. 불 빛 하나 없는 길을 따라 집으로 가는 길은 무섭고 낯설었다. '어흥' 친구가 내는 소리에 소스라쳐 놀라지만 이내 까르르 웃다 보면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한다.
"가시나가 뭐 하고 다니다 인제야 기어들어오냐"
조신치 못하게 몰려다니는 여자 아이들을 보며 어른들은 혀를 끌끌 찼다. 밥 때도 잊고 늦게 까지 놀다 들어가는 날이면 밭 일은 도와주지 않고 매일 밖으로만 돈다고 어린 연심이를 타박하는 것은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닌 바로 위 언니였다.
"할 일 이렇게 많은디, 너는 하루 종일 뭐 하고 싸돌아댕기냐?"
"나는 일 안 할라니께! 죽어라 일만 해야 하는 시골에 안살꺼여. 니는 여기서 이렇게 사는 게 좋냐. 나는 서울 갈꺼여!"
"너는 서울이 어딘지나 아냐?"
"열차 타면 하루도 안 걸린다고 하더라. 종심이 오빠는 서울 가서 출세해서 올 때마다 종심이 옷도 사주고 과자도 사 오는데 너는 여기서 죽어라 일만 할래? "
큰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세 살 터울 언니는 묵묵히 집안일을 도왔다. 사실 손위에 오빠를 두었지만 남자가 할 일과 여자가 할 일은 따로 있었으니 엄마를 도와 밭에 나가는 것이 지당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사람들이 땅끝이라 하지만 해남이 어디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는 없어 답답했다. 단지 그렇게 가고 싶은 서울과의 거리가 아주 멀 것이라는 추측만이 가능해서, 가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밀려오는 곳이 서울이었다.
하지만 서울로 가겠다는 말이 빈 말은 아니었다. 서울에 가서 큰 공장에 취직했다는 종심이 오빠는 올 때마다 종심이를 재촉했다.
"서울에 좋은 일자리에 말해 놨으니, 이번엔 꼭 가자" 아무리 오빠가 있는 곳이라지만 혼자 가기는 무서운지 가장 의지가 되는 연심이를 부추겼다.
"연심아, 우리 같이 서울 가자. 오빠가 좋은 데 취직시켜준다고 했어"
"그럼 나도 취직시켜 준다대?"
"우리 오빠가 능력이 있응께 걱정하지 말고 같이 가자"
허락도 하지 않은 종심이 오빠만 믿고 종심이를 따라가기로 약속해 버렸다.
"당연이 가야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야지. "
"느그 엄마가 보내 줄라드냐?"
"안 보내주면 못 가냐, 가시나야. 무조건 갈 거니까 걱정도 하지 마라"
연심이 얼굴에서 걱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종심이와 연심이 성숙이는 밤마다 서울 가서 멋지게 살아보자고 손가락을 걸었다. 서울 간 동네 언니 오빠들이 고향에 올 때면 생전 보도 듣도 못한 물건들을 양손 가득 들고 오니 돼지 먹이는 오빠와 밭일만 묵묵히 하고 있는 언니를 볼 때마다 분통이 터져 참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