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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정남이

by 아름다움이란

02화 섬의 눈물




5살 사내아이에게 바다는 놀이터였다.

맨발로 뻘에 들어가면 가끔은 무릎까지 빠지기도 하고, 조개에 긁혀 다리가 성할 틈이 없어도 아랑곳할 아이들이 아니었다. 웃통을 벗고 가장 먼저 하는 것은 가까이 가면 구멍으로 쏙쏙 숨어버리는 칠게를 잡는 것이었다.


“누구 게가 더 힘이 센지 시합이다!”

“앗 따거”

“조심해라, 손가락 다 뜯겨분다!”


게가 싸운다. 한 마리의 집게발이 떨어져 나가야 끝이 나는 게임은 가장 재밌는 놀이였다. 실컷 놀다 보면 서서히 허기가 몰려온다. 힘을 다 쓰고 녹초가 된 게를 불에 구우면 그보다 맛있는 간식이 없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워본 적이 없는 어린것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먹을 것을 찾아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손안에 무엇인가를 들고 모인다. 부지런히 서리하고 달리고 매 맞으며 배를 채웠다. 검게 그을린 고구마가 노란 속살을 드러내며 뜨거운 김을 피워 올리면 서로의 입김을 불었다. 고구마 한 개를 한 입 씩 베어 물면 몇 대 얻어맞은 아픔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배시시 웃음이 나는 맛. 고구마 맛이다.


그전 날도 그 전전날도 뻘 범벅이 되어 돌아가 어머니 눈에 띄기 전에 옷을 벗고 아랫목에 깔아 둔 담요 속으로 숨어버린다. 벗어둔 무명옷에 방망이질을 하며 어머니가 욕을 퍼부어도 못 들은 척 잠이 들면 그만인 것이 5세 아이들이 가진 특권이었다. 바다는 뒷일을 잊게 할 만큼 재미가 무성한 곳이었다. 그러나 정남이는 달랐다.


정신없이 놀다 보면 해가 수평선 저편으로 넘어가는 것이 보인다. 그때는 더 놀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냅다 집으로 뛰어야 한다.


"내일 또 보자"

"벌써 가냐"


지체했다가는 일나간 어머니와 형님보다 늦을 수도 있으 정남이는 뒤로 돌아보니 않고 내달린다.

아이들의 고함과 웃음소리가 갯벌 위로 퍼져나가며 점점 희미해져 간다.


집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허기에 지쳐 돌아올 가족을 생각하며 가마솥에 밥을 지었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었지만 5살 정남이에게는 이것도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놀이였다.


“얘가 또 혼자서 밥 하려고 불 지폈는가 보네.”


멀리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면 뛰어나가 아주 오래도록 떨어져 그리움에 사무친 사람들처럼 부둥켜안는다.


"옷이 젖았다 안 하냐"


서리처럼 차가운 어머니의 마음을 녹이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갯가에서 김을 따거나 미역을 말리고 돌아온 어머니의 손등은 짠물에 갈라져 있었고, 옷은 늘 바닷바람에 눅눅했다. 갯벌에서 하루 종일 놀다 온 정남이의 손등과 볼도 언제나 벌겋게 트고 옷은 젖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놀이인 사람과 생업인 사람의 온도는 달랐다.


피곤을 안고 돌아온 어머니와 형님은 김이 피어오르는 밥상 앞에서 그제야 화색을 했다. 밥 위에 얹을 변변한 찬은 없어도 탈없이 세 식구가 밥상에 앉아 있다는 것 만으로 든든했고 안심이 되었다.


밥상을 물리고 나면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는다. 맑은 물에 비친 얼굴은 바닷가 김발에 붙은 김처럼 까맣게 그을려 활짝 웃을 때 드러나는 이가 유난히 희었다.


따뜻한 밤을 위하여 군불을 지키는 것도 정남이의 몫이었다. 어머니의 이부자리 밑에 손을 넣어본다.


“그래, 그래. 됐다. 이제 자자.”


어머니 품처럼 따뜻함이 느껴지면 그제야 이불속으로 파고들어 어머니 젖가슴을 만지면 더이상 부러울 것이 없는 순간이 된다.


섬의 하루는 늘 바다로 나갔다가, 바다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살을 부비며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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