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자서전
아버지의 굽은 등이 초라해 보이는 날이 있었어요. 어떤 풍랑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살아오신 분이라 어느 날 눈이 띈 뒷모습이 낯설었지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버지라고 왜 두렵지 않았을까? 매일밤 깊은 잠에 이르지 못하고 가족들이 눈뜨기 전, 새벽달을 보며 홀로 일터로 나갔던 것은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구요. 당신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더 오랜 시간 몸을 사리지 않고 일하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아버지는 1949년 유복자로 태어났어요. 그때 가난하지 않았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너도 나도 다 그랬던 시절이라 매번 다음 끼니를 걱정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배움의 욕구를 참아야 하는 것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배움을 잇지 못하는 가난을 자식에게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었대요.
그래서 배우고 싶다는 것이 있다면 절대 외면하지 않으셨지요. 철없는 자식들은 배움에 큰 욕구도 없으면서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대학도 다니고 대학원도 나왔지요.
'힘들게 공부시켰더니 머리커져서 지 잘난 줄 알고 산다더라.' 꼭 제 말 같아요. 공부하고 취직하고 일하느라 너무 바빠서 감사함을 잊고 지냈어요. 그러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더 바삐 지냈어요. '자식새끼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는 말을 들을 때 뜨끔합니다. 나 살기 힘들다고 부모님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문득 우리가 함께할 시간이 점점 줄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가끔 친정에 방문하면 무릎통증에 신음하는 아버지의 다리를 주물러드리며 옛날이야기를 듣곤 해요. 아버지의 역사가 한 편의 소설같이 재미있더라구요. 결코 재미있지 않았을 시간이었겠지만 고통은 빛이 바라고, 추억은 더욱 선명해지는지 참 맛깔난 입담으로 풀어내셔요. 저는 그 이야기가 계속 듣고 싶었어요. 아버지의 눈빛이 가장 빛나는 시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다음은, 그다음은~~ 이라며 계속 졸랐어요. 아버지가 추억 속에서 잠시 행복하게 머무는 것 같았거든요.
아버지만큼의 입담은 없지만 그 이야기를 글로 옮겨보자고 마음먹은 지는 꽤 되었는데 쉽게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올 초 내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글로 써 드리겠다고 선언해 버리고 말았네요. 2025년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 와서야 더 이상 미루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 일단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우리 아버지의 이야기는 또 누군가의 아버지 이야기겠지요. 그리고 우리의 살아 숨 쉬는 역사의 한 장면일 거예요. 이 브런치북이 마무리되어 갈 때쯤이면 내가 아버지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아버지도 저도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