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
번아웃을 가장 잘 표현하는 속담이다.
옛 어르신들의 표현력에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록 딱 들어맞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번아웃은 한 번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작은 사건과 큰 사건의 반복이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나도 그런 소소한 일이 쌓였다.
그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분명히 이상하다고 느꼈을 사건이 여러 개 있었다.
건강검진 결과를 받았다.
직장인이라면 의무로 수행해야 하는 직장인 건강검진.
입사 후 3년 반이 지난 어느 날, 평소와는 조금 다른 결과를 받았다.
[상담/확인 필요]
이 말은 즉, 전문 병원을 방문하여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내가 들었던 생각은 한 가지였다.
'아 귀찮아...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신경 쓰이게.. 병원 또 가야 하네.'
병원을 다시 알아보는 것부터, 예약까지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여름에 받은 결과를 듣고 병원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3개월이었다.
나름 건강을 끔찍이 여기기 때문에 의사 약력, 위치 등을 샅샅이 살펴 마음에 드는 병원을 찾았다.
새하얀 병원에서 기다리고, 초음파를 진행할 때도 같은 검사를 다른 병원에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말 그대로 무념무상.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달랐다.
바쁘게 딸깍딸깍 한 손으로는 키보드같이 생긴 기구를 만지고, 다른 한 손으로는 초음파 기계로 바쁘게 문질렀다.
"여기 한 번 보시겠어요?"
화면에는 빨간색 점이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건강검진에서 발견된 것이 이거 같은데, 빨간색으로 나오면 딱딱하다는 의미예요.
보통 악성일 때 딱딱하거든요.
게다가 혈관이 3개나 이어져있어서... 보이시죠? 피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거?
조직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이때 내가 들었던 생각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온 김에 오늘 조직검사까지 다 해치워야겠다.'
조직검사까지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미래를 상상했다.
'암보험 들어놓길 잘했다.'
'만약 악성이라고 하면 3개월은 쉴 수 있겠지?'
'3개월 동안 그럼 할머니집에서 쉴까? 그래도 병원은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해야겠지?'
'그럼 3개월 동안 글도 쓰고 사진도 찍으면서 살아야겠다.'
'차를 장기대여하면 좀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겠다. 한 달에 얼마지?'
위화감이 느껴지시나요?
저는 제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기까지 하루 정도 걸렸습니다.
참고로 결과는 다행히도 양성이었다.
보통 출근길에 교통사고 나는 상상을 하면 번아웃이라고 하던데, 비슷한 상황이 아녔으려나 싶다.
번아웃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번아웃은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