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지쳐있을 수 없다.
번아웃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다.
달리기를 하다가 숨이 벅차오르는 순간이 있다.
목에서 비릿한 피맛이 나는 그 순간 말이다.
그깟 달리기야 너무 힘들 땐 쉬면 그만이다.
회사 생활은 단거리 달리기인지 장거리 달리기인지 알 수 없다.
내가 앞으로 어느 정도 이곳에서 일을 할지도 확실하지 않을뿐더러,
마음만 먹으면 내일 당장이라도 관둘 수 있는 곳이다.
이렇게 모호한 곳에서 번아웃에 빠진 사람에게 퇴사라는 선택지는 웬만해서는 떠오르지 않는다.
'잠깐만 바쁜 거야.'
'시간이 지나 한층 성장해 있을 미래의 나를 생각해 봐.'
'다들 하기 싫은 일 하면서 살아가고 있어.'
'왜 나만 유독 힘들까?'
힘듦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다.
달리기가 좋은 점은 목표에 도달하면 끝난다는 점이다.
게다가 목표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미리 알 수도 있다.
경쟁 상대가 얼마나 나보다 빠르건 끝이 언젠지도 알 수 있다.
궂은 날씨에는 심지어 취소된다.
회사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에 두려움이 있는 것이 아니다.
번아웃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힘든 상황에서 미래를 꿈꾸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다.
나는 예전부터 혼자 감당하기 벅찬 상황이 벌어지면, 주변 지인보다 전문가에 도움을 받았다.
전문가와의 상담은 좋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무관계한, 나를 쉬이 판단하지도 않는 사람
판단하다 하더라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을 것이고, 나와 맞지 않는다면 다른 전문가를 찾으면 그만이다.
"항우울제를 먹어야 할 것 같아요."
회사생활이 벅차다는 얘기를 하고 들은 말이다.
동의했다.
내가 흔히 겪는 증상은 크게 두 가지였다.
1) 호흡이 가빠지는 증상
나를 유독 괴롭게 하는 상사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사는 나를 꽤나 마음에 들어 했고, 나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폭력적이었다.
그는 내가 하는 선택은 지지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을 설렁설렁 들었다.
오롯이 나의 생각으로 선택을 하여 일을 추진하는 것이 힘들 때, 의견을 구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할 일을 하며, 너의 선택을 믿기 때문에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휴가를 다녀와서 오랜만에 만난 나를 보며 반가워 나의 의자를 마구 쳤다.
그때 나는 바퀴 달린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기 때문에 쉽게 중심을 잃었다.
나의 부탁에 장난 섞인 표정을 띠며 나를 흘겨보며 부탁을 거절했다.
하지만 그것은 장난이었기 때문에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요청을 들어줬다.
이러한 상황이 나에겐 벅찬 상황이 되었고, 결국 그와 함께 일할 때면 호흡이 가빠져 몰래 비상약을 먹고 왔다.
비상약을 먹으면 나른해지고 잠이 온다는 부작용이 있었는데, 덕분에 업무 효율이 떨어졌다.
이후에는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가도 과호흡이 왔기 때문에 고생깨나 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이 알려준 방법인 숨 참기로 상황을 타파했다.
2) 눈물이 차오르는 증상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울컥하는 순간이 많았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것도 눈물이 차올라 주위 사람들이 놀란 일이 많았다.
이는 나에게 수치심을 주었다.
이유와 상황은 그때그때 달랐다.
하지만 자그마한 일에도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다행히 감정이 격해져 누구랑 싸우는 상황은 없었다.
나는 참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억울한 일이 있어도 꾹 참으며 괜찮다는 말로 상황을 마무리했다.
이 두 가지의 증상이 같은 시기에 발현되었기 때문에 힘들었다.
다행히도 항우울제를 먹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증상은 많이 완화가 되었다.
역시, 나는 간단히 눈물을 흘리거나 쉽게 호흡이 가빠지는 사람은 아닌가 보다.
퇴사 후에도 내 삶은 이어진다.
그러므로 퇴사를 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몸과 마음이 필요하다.
오롯이 내가 책임지는 나의 삶을 존속하기 위해서는 건강관리가 필수다.
언제까지 이 상황이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언제까지 지쳐있을 수는 없다.
끝나지 않는 터널 속에 있는 기분이라고 하더라도, 터널의 끝은 분명 있으니 그 빛을 기다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그러니까 괜찮을 것이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기쁨의 상황도 끝이나 왔듯이 이 혼란한 상황도 끝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