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5년 12월입니다
날씨는 제법 추워졌고,
여기는 확실히 부산보다 쌀쌀하네요.
당신이 있던 12월은 어땠는지 날짜를 찾아
한동안 올려다보지 않았던 사진첩을 들어가 봐요.
2021년 12월의 당신은 제가 사준 체크모자를 쓰고,
작은 집의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네요.
모자도 잠옷도 제가 사준 것을 다 입고 있던 사진들.
그마저도 더 좋은 걸 못 사줬던 그때의 제가
미워지는 마음이 듭니다.
집 앞 시장에서 만 원짜리 몇 장으로 급히 산 것들.
그마저도 좋다고 예쁘다고 했던 당신.
속상하게도 이쯤에는 제대로 된 사진이 없네요.
대부분 당신이 눈을 감고 자는 모습을
제가 눈에 담고 싶어 찍어 남긴 것이 다입니다.
웃는 모습을 더 많이 찍어둘걸.
예전에 그런 말을 했었죠.
“집에만 있는 사람 뭐가 예쁘다고 자꾸 사주노.”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당신은 누구보다 꾸미는 걸 좋아했고
다리가 아파 몇 분 안 되는 산책시간 가지며
제 손잡고 같이 걷는 것을 낙으로 삼았었죠.
그마저도 하루가 다르게 다리 힘이 없어져
계단 하나조차 못 내려가는 날이면
저는 뒤에서 몰래 눈물을 훔쳤습니다.
예쁜 것을 괜히 눈으로 바라보는
당신을 보며 저는 없는 월급 쪼개가며
한 달에 한 번씩 그리 좋은 재질이 아닌 옷과
화장품을 사드렸었죠.
당신은 그런 제게 힘들게 번 돈 쓰지 말라 했지만,
그러면서도 기뻐해주었기에
그게 제가 힘들어도 몇 년 동안 버티며
회사를 다닐 수 있던 이유였어요.
어느 날은 제게 조심스레 부탁을 했었죠.
집 앞 카페에서 같이 사진을 찍는데
머리가 너무 없어 보인다며 부끄럽다고
작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기 바빴죠.
“나 가발 하나 맞춰주면 안되겠나?”
“아.. 알아볼게. 근데 없어도 예쁘다! 괜찮아.”
“아니다, 너무 볼품없어 봬인다..이게 뭐고..“
그 가발이 뭐라고.
지금이야 얼마든지 사드릴 수 있는 건데.
그때의 저는 직장에서 받는 적은 월급으로
병원비, 생활비, 그 외에 갚아나갈 것들에 대해
버거웠기에 제작가발 몇십.. 너무나 큰 금액이었죠.
당신과 나누었던 대화, 그날의 장면이
몇 년이 지나도 두고두고
계속 한 번씩 생각이 납니다.
미안합니다.
그때 그렇게 매번 저에게 잊을만하면
가발을 부탁하던 당신을 실없는 핑계로
이리저리 넘어갔던 저를 용서해 주세요.
당신은 다 알고서 넘어가주었을 거예요.
그럴 수밖에요.
평생을 저에게 바라는 게 없던 당신이
다 해주고 싶던 제 마음 하나 몰랐을까요.
알면서도 힘겹게 부탁하던 그 말이 아파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어 당신을 보러 갔던 날.
누워서 제가 사준 잠옷을 입고
가만히 눈을 감은 모습으로.
내일 먹고 싶은 거 있냐고 물어보던 저를
쳐다도 보지 않은 채로 말했었죠.
“동치미,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랑..미역 무침.”
동치미 국물은 제가 만들지는 못했지만
겨울이라 시장에서 구해달란 뜻이었고,
미역무침은 제가 당신의 작은 어깨너머로
배워서 이젠 눈 감고도 만드는 반찬이었죠.
알겠다고 대답을 한 뒤에
늘 그렇듯 앉아 있다가 저는 집으로 갔고,
그게 저희의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기억이 잘 나질 않아요.
마치 비디오테이프를 빨리 감기 한 듯
제가 괴롭게 소리치던 장면만
순간순간 스쳐 지나갔거든요.
가뜩이나 작은 당신이
더 작아져서 하얀 재가 되는 모습만이.
내가 사랑했던 그 존재가
내 눈앞에서 영영 볼 수 없는 모습이 되었단 현실.
애써 떠올리고 생각하기 싫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는지도 몰라요.
저는 당신이 언제나 있던 그 자리에서
제가 32살이 될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았어요.
어리석던 제가 그걸 당연시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그날이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그때의 대화에 제가 다른 말 않고,
당신을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코로나로 인해 마지막 순간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그저 제가 사준 만 원짜리 분홍색 잠옷을 입은 채
격리되어 혼자 아파하다가 가버린 그 작은 모습이
몇 년 지나도 마음 한구석에서 맴도는 건
지우려고 해도 어쩔 수가 없나 봐요.
왜 저는 이상하게 좋았던 순간보다
제가 못해준 것들만 자꾸 이렇게
편지에 끄적이게 될까요.
분명 읽으면 마음 아파할 당신인걸 알면서.
있잖아요,
요즘의 저는 울지도 않고
웃는 날이 더 많아졌어요.
2021년도 여름쯤이던가요,
배고프니 참외를 먹고 가라던 당신께
그날따라 받은 스트레스로 안 먹는다며
인상을 찌푸리고 뒤돌아서던 제게 말했죠.
“지향아, 웃어야 한다. 짜증 내지 말고.
그래야 웃을 일이 생긴다.”
저는 이해가 안 됬었어요.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고
행복할 일이 없는데 어떻게 웃으라는 건지.
이제는 그 말이 이해가 됩니다.
오히려 저보다 힘들었던 당신이
오직 제 웃는 얼굴을 보려고 귀여운 춤과
사랑스러운 노래를 불러주고
아무런 일도 없는데 항상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이려고 했던 사실을요.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야 행복해지는 건데 말이죠.
저는 당신이 바라던 대로
착하고 저밖에 모르는 다정한 남자와
결혼도 하고 어느덧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게 되었습니다.
생각과 걱정이 많아 쉽게 잠을 못 이루던 제게
늘 내어주던 작은 팔의 무게는 내려놓으세요.
이젠 그 자리를 다정한 남자가
옆에서 저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잘 때 이불을 차는 제게
새벽마다 이불을 덮어주던 습관도,
팔베개를 해주지 않으면 잠을 못 자는 습관도,
춥거나 더우면 제때 확인해 주는 습관도
당신이 좋아했던 제 웃는 얼굴 보려고
노래와 춤을 추며 웃겨주는 모습마저도
마치 그날의 당신이 연상되는 일만 가득해요.
말하지 않아도 당신과 닮아있던 모습을 하는
남편에게 저는 하늘에서 받은 선물이라고
그에게 불러주면 누가 보낸 선물이냐고
묻지 않아도 그는 알고 있습니다.
거기는 어떤가요?
이제는 아프지 않나요?
한동안 저는 당신이 떠난 뒤로 빌었어요.
무교에 사후세계라던지, 환생을 믿진 않아요.
그래도 당신이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비싼걸 잔뜩 갖는 부잣집 딸로,
당신이 좋아하던 멍게도 많이 먹고,
아프지도 않은 튼튼한 몸을 갖고,
당신을 소중히 여기는 곳에서 태어나길.
너무 고생만 하다가 간 것 같아서
순간순간 마음이 시린 적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이기적인 욕심으로 하나 더 빌어봐요.
혹시나 부족한 저와 다시 만나고 싶다면
다음에는 제 자식이나 손주가 되어주길.
이번에는 제 차례예요,
당신에게 받은 사랑을 내려주고 싶거든요.
가끔 힘들거나 슬픈 날도 있어요.
그런 날에 유독 당신이 많이 보고 싶은 것도
제 이기적인 욕심이죠.
작은 품에 안겨 엉엉 울고
‘괜찮다’라는 말이 듣고 싶고,
기억해내려고 해도 이젠 기억도 잘 안나는
다정한 목소리를 찾으려 음성녹음 해둔걸
들으려 하고, 보관함에 있는 당신 사진을 꺼내봐요.
이기적 이게도 그러다가 이내 바쁜 일상 속에서
저는 당신이 또다시 흐려지더군요.
잊는 것보단 마음속에 묻어두고 살아가는 걸
알면서도 괜히 마음이 무거워지면서요.
제 걱정은 너무 하지 말아요.
평생을 했잖아요.
이젠 당신이 떠나간 뒤에 남은 것들이
저를 성장시켜 주고 지켜주고 있어요.
당신에게서 배운 따뜻한 미소와 말 한마디.
사랑이란 것이 무엇인지 말없이도
깨달을 수 있게 한 그 모든 게 당신이었고
저도 그걸 이젠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나눠줄 수 있게 되었거든요.
무엇보다 당신이 그렇게 아끼고
소중해하던 제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게 됐어요.
하늘로 소풍을 간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가 닿길 바라면서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고마웠어요, 사랑합니다.
나의 할머니.
2025년 12월 당신이 많이 보고 싶은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