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저에게 바라던 것은 저의 행복이죠.
“네가 착한 남자와 결혼하는 게 소원이다.”
잠이 옅게 들랑 말랑한 상태의
제 얼굴을 가만히 만지며 그런 말을 했었죠.
결혼 따위는 안 한다고 꿋꿋하게
고집부리던 제 등 뒤로 그런 말을 했었죠.
“난 결혼 안 하고 혼자서 살 거야.”
“지향이 네가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는 거 보고 죽어야 하는데..
할미 예쁜 한복 입혀주야지~?”
“그런 소리 하지 마!”
할머니가 괜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할아버지, 아빠만 봐도
치가 떨리는데 무슨 결혼을 하라는 건지.
모진 제 대답에도 그저 웃으면서
그래도 결혼은 해야 제가 행복해질 거라고 했어요.
타고난 몸도 약하고 마음도 여리니
저를 지켜줄 남자를 만나서 편하게 살라고요.
“에구.. 그리고 돈 많고 다 필요 없다.
착하고 성실한 남자 만나면 된다.”
“모르지~그러다가 바람피울 수도 있는데.”
“너만 바라보는 남자가 있을 거다..
너무 섣불리 안 한다고 하지 마라.
나는 지향이 네가 이 할미가 준 사랑보다
더 많이 받고 행복하게 걱정 없이 살면 좋겠다..”
“할머니 마음은 알겠지만,
몰라.. 흥. 결혼은 안 해.”
고집불통인 저는 어째 그렇게
끝까지 빈말이라도 하겠다는 말을 못 했을까요.
지금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의 저는
결혼에 대한 불신이 컸기에
어쩔 수가 없던 그때의 제 가치관이 밉네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건데 말이죠.
“결혼할 사람이야. 어때? 착해 보여?
나한테 되게 잘해주고 나밖에 몰라.”
그때 처음 인사 드리러 갔던 날 기억하나요?
추운 납골당 안에서 저희를 반겼지요.
지금의 남편이 남자친구였던 시절
각자를 키워주셨던 조부모님을 함께 뵈러 갔었죠.
네 분 모두 살아계셨다면 한없이
따뜻한 품으로 안아주셨겠죠?
사진 속 너머로 눈이 휘어지게
함박웃음을 짓는 얼굴이 보여요.
제가 사랑했던 그 다정한 목소리로
“이제 이 할미 걱정은 없다. 예쁘게 잘 살아라.”
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결혼하는 날,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자줏빛 한복을 입고 계신 모습을 상상했어요.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은 순식간에
흘러가서 그렇게 힘들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결혼식 당일이 되고
생각보다 긴장이 되면서.. 조금 힘들었는데
더 힘들었던 건 이 자리에 할머니가
안 계시다는 사실이 슬프게 다가오더라고요.
“조금만 더 살아계시지..
아니, 내가 더 빨리 결혼했으면..
그럼 나 예쁜 드레스 입은 것도 보고
할머니도 예쁜 한복 입혀드렸을 건데.”
사실 할머니가 더 계셨으면
아픈 고통 속에 살아있을 거란 걸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도 좋은 날이니 울지는 않았어요.
수많은 하객들 앞을 바라보는 순간
그 가운데 환하게 웃고 계시는
할머니의 얼굴이 잠깐 보였다면
그건 저의 간절했던 착각일까요?
아니면 정말 제 결혼식을 보러
잠깐 나들이를 나오신 걸까요?
저는 지금 착한 남자와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할머니가 말하신 착한 남자와의 결혼이란 뜻은
그저 제가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일보다
웃을 일이 더 많은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었단 것을.
제가 행복한 게 본인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좋은 남편을 만났으니
할머니, 당신의 소원 하나는 이뤄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