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무렵 오래간만의 커피 타임.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후배 하나가 선배는 어떻게 그리 한결같은지 무재칠시(無財七施)의 덕목을 잘 지니고 있는 것 같아서 부럽고 존경한다는 말이 나왔다.
순간, 헐.. 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말을 어디서 듣게 되었는가 반문했고, 후배는 조부님께 전해 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른 후배들은 갑자기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하고 구래서 나는 그 유래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재칠시(無財七施)는 재물이 없어도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일곱 가지의 타에게 전하는 방법 즉 마음을 나누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원래 고려 팔만대장경 중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전하는 이야기이다. 뜻은 상기와 같다.
佛說有七種布施,不必損失財物,卻可以獲得廣大的異熟果報。
第一種布施是「眼施」:常常以柔和恭敬的眼神來觀視父母、師長,以及出家、在家的修行人,而不是以輕慢鄙視的惡眼來觀視他們,這樣的布施就名為眼施。捨壽後再受身時,會得清淨眼;未來成佛即得天眼與佛眼,是名第一種布施的果報。
안시(眼施) : 호의를 담은 부드럽고 온화한 눈빛으로 사람을 보는 것이다.
第二種布施是「和顏悅色施」:對於父母、師長、出家修行人與在家修行人,不應顯現皺眉嫌惡的表情面貌,而是應該常面帶笑容。這樣布施的人,當他捨壽後,未來世受身時容貌端正;未來成佛時,能得真金色光,是名第二種布施的果報。
화안시(和顔施) : 부드럽고 정다운 눈빛과 미소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第三種布施是「言辭施」:對於父母、師長、出家修行人與在家修行人,凡有所言說皆是溫言軟語,不口出暴厲惡言。這樣布施的人,他捨壽以後,未來世受身時,他將言辭善辯而了達;凡是他所言說的話語,眾人普皆信受;未來成佛更得四種無礙的辯才,是名第三種布施的果報。
언시(言施) : 사랑의 말, 칭찬, 위로, 격려, 양보, 부드러운 말 등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로 타를 대하는 것이다.
第四種布施是「身施」:與父母、師長、出家修行人與在家修行人相會時,必定起身迎接,並且禮拜問訊,是名身施。這樣布施的人,他捨壽之後,於未來世受身時,即得身材高大且相貌端正之身量,並且是人人看見皆恭敬歡喜之色身;未來成佛時身量如尼拘陀樹,無見頂者,是名第四種布施的果報。
신시(身施) : 몸으로 타를 돕는 행위, 예를 들어 짐을 들어주거나 일을 돕는 것이다.
第五種布施是「心施」:雖然以如上所說的布施來供養敬田,但若心不和善,就不能稱為真正的布施;應該以發自深切的至誠、至善之心來行供養,如此才是心施。這樣布施的人,他捨壽以後,於未來世受身時,會得智慧明了心、不愚癡狂亂心;未來成佛時得一切種智心,如是名為心施,這是第五種布施的果報。
심시(心施) : 착하고 어진 마음, 따뜻한 마음으로 상대인 타를 대하는 것이다.
第六種布施是「床座施」:若看見父母、師長、出家修行人與在家修行人,能夠親手安置座椅,讓他們可以安隱得坐,乃至將自己坐著的座椅恭敬地讓給這些福田坐,是為床座施。這樣布施的人,於他捨壽後,在未來世受身時,會常常得到尊貴的七寶床座;未來成佛時得師子法座,如是名為第六種布施的果報。
좌시(床座施) :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다.
第七種布施是「房舍施」:對於父母、師長、出家修行人與在家修行人,使他們於自己的房屋宅舍之中,可以順暢的行來坐臥,即名房舍施。這樣布施的人,他於捨壽之後,未來世受身時,可得自然宮殿、舍宅的果報受用;未來成佛時得諸種禪定及無量三昧功德屋宅,如是名為第七種布施的果報。
방사시 (房舍施) 사람을 방에 재워주는 것을 말한다.
원래 이것은 다도의 차담에서 차도를 주도하는 선생님과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문구이다. 차를 한다는 것은 마음을 전하고 나눈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며 자기 자신의 수양은 물론 자세와 태도를 이야기한다. 이는 타에게로의 전(傳)이 어떠해야 한다는 깊은 성찰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의 격(格)의 전달은 스스로에 대한 마음이자 무한의 전달이다. 그러하기에 이 격(格)이야말로 자신 스스로라고 말할 수 있다.
무엇을 전할 것인가? 어떻게 전 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학다. 전(傳)한다는 것은 단순한 전달의 의미 이상의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기 스스로에 대한 마음일 수도 있으며 어떠한 성과 일수도 있다. 무형과 무형의 것들을 포함한 전(傳)이다. 또한 사회 구성원인 개인으로서의 나를 표현해 주는 기본적인 의미로서의 전(傳)이다. 그러하기에 이 표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할 수 있다.
무재칠시(無財七施)에서 중요한 것은 무재(無財) 즉 직역하면 재물이 없는 사회적인 가준으로 재물은 매우 중요한 기쥰의 하나가 되는데 이 가치가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중심(中心)은 바로 시(施)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전한다는 것은 베풀 시(施)가 먼저의 순서라는 것이다. 나눔의 마음이 우선적인 기본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을 윤택하고 잘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모범이 되는 것을 실천하고 실행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선행 중 하나가 바로 시(施)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기본 형성의 근본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 이것은 시(施)룰 내포한 기본이라는 것이다.
현대 요즘 사회에서 이 베플 시(施)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진정성을 내포하고 있는 마음의 전달이라는 것은 어쩌면 나 스스로도 타에게도 수용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스스로에 대한 것이 아닌 내가 아닌 타에게로 전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그 순수성과 의미가 진실되어야 한다. 그리고 베플면 돌아오게 되는 이 인과에 대해서도 기대하는 바가 나와 타가 다른 즉 관점의 차이가 생겨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사회 구조화 되어 있다.
선하다는 것 베푼다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 요즘의 지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작의 관계 이 자세와 태도가 스스로를 비롯한 타에게 제대로 연결되어지기 위한 것으로서 이 무재칠시(無財七施)의 새로운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이것을 내 말차 선생님으로부터 들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 현재의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다. 다도애서 말하는즉 우라센케의 일기일회( 一期一會)의 시작은 바로 이 시(施)가 원류이다.
인정이라는 것, 나 스스로가 아닌 타에게로의 자연스러운 인정의 시작은 이 베플 시(施)에서 시작되며 이것은 타에게로의 연결의 출발이 된다. 또한 이것은 바라볼 시(視)하고는 다르지만 동일한 의미가 있다.
어떻게 자연스럽게 베풀며 바라볼 것인가의 이 시의 다른 차이가 타 즉 상대방의 인정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며, 이는 자기 자신의 격으로 표현된다.
내가 타인 상대방에게 후배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심시와 언시의 자세, 그리고 안시와 화안시의 태도 이것의 조화로움 때문이었을까.. 기본의 틀은 시시(施視)로 부터 출발했으며 이에 대한 배움은 다도(茶道)였다.
말차(抹茶)를 몰랐다면 이 배움을 스치고 지나갔으리라 아니 몰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후배들을 비롯한 내가 자향(志向)하고 있는 과수요원으로서의 바라볼 시(視)는 일반적이지 않다. 그러하기에 늘 타에게로의 다른 시시(施視)가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교류 공감 그리고 공유를 통하여 새로운 것과의 크나한 세계를 자신만의 것으로 채화시킬 수 있는 기술과 품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시(施視)의 차이가 공간속의 시간 시간 속의 공간인 오늘의 장소에서 불현듯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시시(施視)의 미학(美學)은 나에게서 출발하여 타에게로의 완성이다. 이것은 다시 타에게서 나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이 의미의 의미룰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오늘의 작은 커피 시간은 현재 나의 위치 그리고 현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