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상.

by Doc




서재애서 조용하게 앰프의 전원을 넣는다. LP를 선곡한다. 오전의 음악은 언제나 새롭다. 진공관의 따뜻한 불빛과 색깔..


오늘 선곡은 조성진의 피아노다.

날씨의 변덕이 심한가. 톤압을 조정해 본다. 디스크가 회전하게 시작하고 스피커에서 조용하게 흘러나오는 선율...




차 도구를 준비한다. 말차와 차시 차선 차선꽃이 그리고 나만의 완을 준비한다. 포트에 물을 데우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차호에서 차를 덜어낸다. 말차의 풋풋한 내음이 서재에 퍼지기 시작한다. 완을 데운다. 한번 두번 세번. 온도가 올라오자 온기가 손가락에 전달된다. 퇴수하자 아지랭이가 피어 오른다.


코끝에 말차의 내음 손끝에 완의 따스함이 공존한다완에 물을 붙는다. 물을 타고 퍼지는 말차의 진녹색 역시 오전은 고이차다. 입에 갗다 댄다. 말차의 진한 풋픗함이 입안을 스민다. 강렬하면서도 진한 맛과 풋풋함 속에 숨겨있는 우마미가 퍼져 나간다.



고레가 고레가 맛차다.


서재에서 편지지를 꺼낸다. 할 이야기가 많은 경우나 의미가 되는 이야기를 동료나 선후배 연구자들에게 들었을 경우, 차 한 사발에서 흘러나오는 영감의 여운을 기록에는 항상 펜을 꺼낸다. 그리고 글을 쓴다. 공간 속의 시간 시간 속의 공간 그리고 이 장소인 서재는 아무도 침범이 불가능한 나만의 휴식 장소다.


달항아리와 앰프 그리고 수 많은 완들이 아지랭이와 말차의 향을 느끼며 나를 바라본다. 내 손은 펜을 잡고 있지만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레 글을 써 내려간다.



글을 쓴다는 것은 펜을 손끝에 쥐고 손목을 바르게 하여 전신의 힘을 손목에 전달한다. 머리로 부터 어깨로 부터 전달된 것이 손가락의 끝을 타고 일단 끊기고. 그 기세는 단단한 대를 뛰어넘어 중심인 펜끝에 모이다. 이때 팬은 쓰는 사람의 생각이나 힘 이상의 그 무엇인가를 수용하게 되고 종이와 펜과 손은 큰 세계로써 공명한다. 손가락 끝의 이미지 명령을 헤쳐나가 얼마나 미지의 타지와 겨를 수 있는가가 쓰는 사람의 역량이 된다. 멋진 펜의 모습은 쓴다는 것의 새로운 의미를 가르치고 있는 것같이 생각된다.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자기 저신이 해 보지 않았던 미지로에의 탐구이며, 무한이다. 즉 해보지 않않기에 특별함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 무한에 세계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은 바라보는 시각 즉 시선의 정립이며, 이는 자기 자신의 격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와 태도이다.



다산은 이것을 차도에서 풀고 있으며 추사와 초의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세와 태도는 바라보는 것에 대한 그 시선에 대한 바름을 이 시작을 가져다 준다 할 수 있다. 차담을 통해서 나는 타에게 타는 나에게로의 마음을 전하며, 보통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기록하는 글과 전하는 글은 그 의미가 조금은 다르다. 글쓰기는 이 기록을 어떻게 나누어 내는가에서 시작이된다. 마음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기록은 개인적 사초와 전하는 서신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내 경우에는 기록하는 글인 사초와 전하는 글인 서신의 융합을 사용한다. 이것은 나의 내공의 격을 일상과 더블어 타인 상대방에게 전하고 싶을 때 글로 풀어내는 것인데 내 격을 수양하는데 있어 안성맟춤이다.


전한다는 것은 마음을 소소하게 풀어내는 행위이다.




非人不傳 비인부전.

전하고 싶다고 아무한테나 전달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나와 대면하고 있는 타 즉 상대방의 결이 맞는 경우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전하는데, 마음은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격이 형성된 지인들에게만 풀어내는 나만의 관계 형성법이라 할 수 있다.




의미의 전달은 격의 전달이며 이는 마음을 부른다.


마음으로 전하는 내용은 나는 타에게 타는 나에게로 향한다. 이것은 결이 맞는 타에게로의 전달이며 마음의 공감으로만 해석이 가능하다. 내 지인들은 내 마음과 공명하는 타들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의미가 없는 일방적인 전달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글을 말과 다르다. 말을 사라지지만 글을 남는다. 그러하기에 글로써 전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유형화된 자기색깔의 내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글에 있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 한다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내공을 타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는 내공의 결이 맞지 않으면 결코 순행할 수 없다.


順行 순행 순행의 사전적 의미는 1. 차례대로 나아감. 2. 거스르지 아니하고 행함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결국 순행 이라는 것은 막힘이 없이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이동하는 것이다. 이것에 있어 결이 부합한다는 것은 그 상질과 상향의 힘이 맞는 것을 말한다.


글에 있어서 성질과 힘이 부활한다는 것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새로움이 있는가 하는 여부이며 이것에는 기본적인 사항에 대한 내용이 뒷바침 되어야 오롯이 그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자세이다.


머리로 부터 표현된 힘이 제대로 어께로부터 윗팔과 아래팔 그리고 손목과 손가락에 전달되기 위해서는 지니고 있는 내공이 그대로 생각하는 힘 그대로 전달되어야 한다.


이 전달에 있어서 글을 쓰는 사람의 기본 역량이 제대로 형성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기본 역량은 얼마나 보았는가 무엇을 보았는가 어떻게 보았는가에서 시작된다 할 수 있다.


재미있는 표현을 하자면 무협에서 이야기 하는 정도와 마도. 2가지의 방향성으로 표현을 해 본다면. 정도의 바른 길 이것이 바르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마만큼 공간 속에시의 시간의 소모가 될터이지만, 노력과 고생이 없는 길은 없다고 생각한다. 마도처럼 처음의 속성 그 내공은 빠르게 형성이 되나. 익히면 익힐수록 부작용이 향상되는 것처럼. 시간의 공간에서 제대로의 내공을 글을 쓰는 마음을 담는 표현을 배우고 익히기 위해서는 정도의 바른 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길은 외롭고 힘들다. 또한 타에 의한 인정이 언제 가능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타지와 나와의 무한 그리고 그 여백에로의 내공을 그 격을 전달하고 공유하며 공감하고 싶은 심연의 갈망이자 욕구이자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타자에게로의 자유로운 소통 이 작은 소망하나가 그리워지는 현재의 지금. 지금의 오늘이다.



격을 만둘어 나아가는 이의 태도 이는 태를 형성한다. 태도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노력하는 나는 항상 이것에 힘쓰고 있다.


1. 말끝이 다르다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많이 아는 쪽이다. 깊은 공부는 겸손한 어휘를 만든다.


2. 논쟁을 하지 않는다


말로 이기려 하지 않는다.

깊은 사람일수록 생각보다 묻고, 다른 쪽을 이해하려 든다.


3. 감정으로 싸우지 않는다


말이 막히는 순간에도 소리 대신 기준으로 버틴다.

감정을 다스리는 건 지적 훈련의 가장 실용적인 증거다.


4. 이야기를 잘 듣는다


말을 끊지 않고 상대의 맥락을 기다린다. 듣는 기술엔 공부의 연습이 들어 있다.


5. 겉말보다 숨은 뜻을 본다


단어에 반응하지 않고 의도에 반응한다. 겉에 휘둘리지 않고, 말 뒤에 숨어 있는 맥락을 읽는다.


가방 끈의 진짜 차이는 지식이 아니라 '태도'에서 드러난다. 내가 꾸준하게 배우고 학습하며 익히는 이유다.


배운 사람은 말조차 단정하게 한다. 틀릴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말이 부드럽고, 표정은 단단하다.


나이가 보통 지천을 넘으면 스펙보다 말투가 기억에 남고, 학력보다 반응이 무게를 만든다. 주변의 교수 동료들을 비롯한 선배 연구자들을 보면 그러하다. 지천을 넘긴 깊이 배운 사람은 상대의 말에 덜 흥분하고, 자기 기준을 쉽게 무너뜨리지 않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결국 삶의 품격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에서 갈린다.

아는 척은 배움의 흉내고, 침착함은 배움의 결과다.


인생은 태도에 달려 있다. 격의 성장은 태도를 만든다. 즉 태를 형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사소한 일에도 그 이유를 찾으려 한다. 이 일이 벌어진 게 무슨 뜻일까, 혹시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는 걸까 하고 고민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유를 찾는 게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삶은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니다. 어떤 태도로 사느 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우연히 길에서 누군가를 만났다고 해서, 그 만남이 무조건 특별한 의미를 가져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소중하게 만드는 건 타인 그대의 선택이다. 또한 나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너무 깊이 고민하지도, 아무렇지 않게 흘려 보내지도 마라.


세상은 정해진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 자세 그 격의 태도에 따라 끝없이 변화한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화하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지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자세 그리고 그 태도의 격에 달려 있다 할 수 있다.


격은 나를 완성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한이며 여백이다. 이것은 또한 공이다. 공은 없음이다. 나는 타와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공 즉 없음에 대한 의미를 말차를 통해 배웠다. 공의 미학은 현실을 살고 있는 타에게는 실천하기 힘든 것들 중 하나이다.



생을 살아내며 하루 하루의 시간 그리고 공간이 주는 의미를 재해석하는 삶을 스치는 깊은 의미로 지내고 있는 나에게는 공이란 무한이며 공간이다. 그러하기에 없음의 의미 잃는다는 의미 삶과 죽음의 의미를 어떤 타들보다 깊게 이해하고 있다.


누구든 잃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나 스스로가 아닌 타 즉 사람들은 계절처럼 변화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나는 모든 것일 수 있지만, 내일의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는 나 없이 못산다고 이야기를 하는 상대방인 타 하지만 다음날에는 니가 아무것도 아닌 타 인것 처럼 행동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리란 희귀하고 신뢰라는 것이 깨지기 쉬운 것이 요즘의 현대 세상이다. 영원할 것이라는 약속에는 유통 기한이라는 것이 존재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타인 상대방으로 부터 배웠다.


이길 때는 나와 함께 웃지만 내가 고생할 때에는 나인 상대방은 나와 함께 있지 않고 사라지지. 상황이 좋을 때는 나를 사랑해도 어려워지면 떠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 즉 타가 지닌 속성 중 하나이다.


그러하니

누군가에 삶에 포함되기를 바라지마라. 절대 쫓아가거나 타에게 강요하지 마라. 나 자신 스스로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스스로의 격을 키워 성장해 나아가야 한다.



나의 가치를 아는 타와 교류하라.


진짜는 머무를 것이고 가짜는 떠나가겠지. 격을 만들어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은 그러한 것이다. 나 스스로가 타인 상대방에 있어서의 대화 그 대화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이에 대한 나와 타의 격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대화는 중요하고 대화가 중요한 것은 양양된 공간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 태도를 태를 형성시켜 준 것이 나에게는 바로 차 였다. 그러하기에 내 주변의 나와 더불어 존재하는 차인들은 소중하고 소중할 수 밖에 없다. 격의 태를 만들어 준 말차 한사발의 미학론이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차를 마신다는 것은 그러한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항상 기록한다. 그리고 학습

하며 배운다. 차를 배우며 선생님들과의 차담,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우리의 술과의 콜라보. 내가 차를 함으로써 말차를 함으로써 느끼는 차맛의 기쁨과 기록하고 전하는 것에 대한 글쓰기 그 중에서도 특히 서신은 나와 타자로와의 연결이며 은밀한대화다.


은밀한 연결하나 그리고 하츠무카시가 그리운 현재의 지금 오늘의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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