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여전히 일주일에 4일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알바에는 완벽하게 적응해서 가슴에 꽂아 놓은 볼펜으로 상자도 거침없이 뜯고, 제품 진열과 상자정리도 착착할 수 있게 되었다. 편의점 안에 딸린 화장실 정리도 하고, 손님들이 달라는 담배도 척척 찾아줄 수 있게 되었고, 어묵도 팔 기 시작했기에 어묵의 다양한 종류도 배울 수 있었다. 폐기 상품도 착착 뽑아내고, 조금 한가하면 먼지도 한 번씩 털고, 공과금 납부나 엽서구매도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회화실력도 많이 늘었고, 다양한 단어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아마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두 달간 일본어만 사용해야 하는 환경에 놓였기에 회화실력이 많이 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노란 고무줄이라던가, 호빵이라는 단어는 편의점에서 처음 배울 수 있었다. 11월에는 주말을 이용해서 홈스테이도 갔다 왔다. 시에서 주기적으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신청받아서 몇 명을 1박 2일간 홈스테이를 할 수 있는 가정과 매치시켜 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요코야마 씨의 댁에서 머물 수 있었다. 일반적인 2층으로 된 가정집이었으며, 저녁으로 일본전골을 먹고 아저씨와 사케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했던 게 기억이 난다. 재밌었던 건 나는 일본어로 말을 하면 아저씨는 한국어로 말을 하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아저씨는 한국어를 공부하고 계셨는데 문법도 정확하고 단어도 많이 알고 계셔서 한국인은 일본어로 말하고, 일본인은 한국어로 말을 해도 대화가 이어지던 상황이 재미있었다. 아주머니는 츠케모노라는 일본의 반찬을 담그는 걸 보여주셨고, 엽서에 그림 그리는 게 취미라면서 나에게도 감이나 낙엽이 그려진 엽서를 몇 장 선물로 주셨었다.
[12월]
12월은 공부로 바쁜 달이었다. 12월 초에는 JLPT시험이 있었고, 스피치 대회도 준비해야 했으며, 시험과 보강이 있었기 때문이다. JLPT시험은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인지 나쁘지 않게 봤고, 아마가사키시에서 하는 스피치대회가 있었다. 그전 스피치 대회를 나는 울어서 망쳐버렸기 때문에, 이번에는 더 잘해야지! 꼭 수상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했고, 이번 스피치 대회의 주제는 [이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이름이 조금 특이한 편이고, 예전에는 그 이름이 싫었지만 이제는 독특해서 좋아한다는 내용의 원고를 작성했고, 열심히 외웠다. (지금도 첫 문장 정도는 외우고 있다.) 시험이랑 스피치로 바쁜 와중에도 18대 대통령 재외국민 투표가 있어서 오사카의 대한민국 총영사관에도 갔다 왔다. 나의 첫 대선투표였고 인증숏도 남겼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티브이 하단에 한국처럼 개표상황이 실시간으로 떠서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덕분에 친구들이랑 카톡 하면서 실시간으로 대선 개표얘기를 할 수 있었다. 12월 중순에는 아라시야마도 다녀왔고 크리스마스날도 통금시간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폐기로 나온 도시락을 몇 개 얻어와서 친구들이랑 나눠먹었던 게 우리의 크리스마스 만찬이었다. 항상 궁금했었던 텐진항 덮밥을 얻어와서 먹었는데 기대만큼 맛있지는 않아서 약간은 실망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가난한 교환학생에게 가리는 음식이란 있을 수 없다!
[1월]
학기도 끝나가고 슬슬 기말고사와 귀국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시기였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 3회씩 하던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귀국준비를 위해서 1월 중순에 그만뒀다. 이제 학기도 끝나가고 슬슬 귀국 준비를 해야 해서요..라고 말하면서 익숙해진 일과 약간은 정이 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웠다. 편의점에서도 나를 잘 봐줬었는지 그만둔다니까 아쉽네..라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했었다. 혼자서 떠난 1박 2일 히로시마 여행! 효고에서 그렇게 멀지도 않았고,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곳이지만 히로시마를 가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히로시마풍 오코노미야키를 먹기 위해서였다. 미야지마 신사는 굳이 들어갈 필요성을 못 느껴서 슥슥슥 걸으면서 저게 그 도리이군, 하면서 지나갔고 굴을 안 좋아하지만 명물이라고 해서 굴튀김도 하나 사 먹어 봤다. 역시 취향은 아니었다. 미센산이였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산 정상을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해서 혼자 식식거리면서 오르다가, 어떤 외국인이 같이 올라가자고 해서 오케이! 해서는 정말 말 한마디 없이 둘 다 열심히 등산을 하고 헤어졌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미야지마 구경을 한 뒤에는 다시 원폭돔도 보고, 박물관에도 들어갔다가 기대했던 히로시마풍 오코노미야키! 맛집이고 뭐고 없이 그냥 숙소 근처의 히로시마 오코노미야키라고 쓰여있는 노포에 들어가서 혼자 두쪽이나 먹고 나왔었다. 1월 마지막주는 학기말 시험과 리포트로 가득 차있었다. 여전히 기숙사는 추워서 내내 학교 컴퓨터실에서 리포트를 작성하고, 기숙사 방에서 장갑 끼고 이불을 잔뜩 두르고 시험공부를 했었다.
[2월]
귀국을 위한 비행기 티켓을 확정해 놓고, 막바지 시험준비와 송별회로 바쁜 달이었다. 그 와중에도 마지막이니까! 하면서 친구랑 야간버스를 타고 도쿄여행도 가보고, 같이 교환학생 하던 4명이서 아리마 온천으로 1박 2일 여행을 가서 료칸에도 머물러봤다. 일본 온천에 대해서 환상이 컸는데, 막상 가보니까 그냥 목욕탕과 큰 차이는 없었지만 그래도 노천온천은 좋구나~ 라는걸 처음 느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