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나 무엇이든 처음은 가족 안에서 경험합니다. 나를 향한 사랑의 눈빛, 나로 인한 기쁨, 미소, 염려, 눈물, 탄식 그리고 충만함. 나의 입맛, 예절, 언어의 습관과 태도, 분위기, 세계관, 종교관은 대부분 가족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내 삶을 가득 채운 밀도는 9할이 가족으로부터의 유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가족력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DNA, 외모, 신체 조건, 질환, 끼, 그 외 좋고 나쁜 건 일정 정도 대대로 물려받는 것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저는 보호종료아동입니다. 얼마 전부터 국가에서는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좀 낯선 용어를 사용하더군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무엇으로 불리든 간에 말입니다. 부모의 양육을 받지 못하고 보육원이라는 시설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일찍 이혼하셨습니다. 그만큼 좋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제 삶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족 내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제가 보육원에서 자랄 때만 해도 폭력이 잦았습니다. 노동도 많이 했고요. 절망스러웠습니다. 사춘기 때 자존감이 바닥을 쳤습니다. 어찌어찌 고3까지 마치고 퇴소해서 대학에 갔고 취업을 해서 결혼까지 했습니다. 제 외모는 못생긴 축에 속하고 키도 크지 않은 편입니다. 지능지수도 탁월한 편이 아니라서 중학생 때까지 부진아로 낙인찍히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네요. 사실 부모님께서는 그리 뛰어난 DNA의 소유자들이 아니므로 자식인 저 또한 뛰어난 유산을 물려받지 못한 게 아닌가 또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어머니는 어떻게든 자식들 도우시려고 모텔 청소, 찜질방 청소, 지금은 간병일 하시면서 지내십니다. 문제는 아버지 같습니다. 알콜릭에 탁월한 공격성까지 내재하셔서 언제 어디서든 공경력 만렙 소유자딥게 알콜이 채워지면 무시무시한 전사로 돌변해 주위를 초토화시킵니다. 몰론, 저와 사이는 좋지 않습니다. 제 아내에게도 무례하게 구셔서 단절했습니다. 제겐 아내와 아들이 더 소중합니다.
괴로웠습니다. 자식 된 도리를 하지 못하고 불효하고 있으니, 넌 나쁜 놈이라는 죄책감이 너무나 컸습니다. 사실 그 짐은 여전히 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에 잠겨 있을 때가 많습니다. 무엇이 옳은 길인가? 아버지와 화해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내에게 잘 이야기해볼까? 등등. 어느 날 대학생 때 보았던 영화가 떠올라 다시 봤습니다.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바로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입니다. 역시 간절히 원하고 바라면 살 길이 열립니다. 무의식 속에 잠재돼 있던 위로의 단어가 고민하고 아파하니 제 자신에게 답이 되어 찾아온 것입니다.
It's not your fault(너의 잘못이 아니야)
영화 굿 윌 헌팅
제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가족의 밀도는 일차적으로 부모님이 많드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과 아내를 지키기로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바꿀 수 없지만 제 가족은 제가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 원가족으로부터 충만한 사랑과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해 가족의 밀도가 부정적인 것들로 채워졌지만, 저는 제 가족에게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고, 그걸 실천하였습니다.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동시에 가장 무서워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가족을 통해 우리 인생에 채울 수 있는 의미는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 다단하고 오묘합니다. 애증관계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너무 소중하고 사랑하는 만큼 증오도 깊습니다. 만일 제가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지 못했다면 제가 꾸린 제 가족은 어떤 밀도로 지금과 미래를 채웠을까요?
아버지가 용서를 구하길 그래서 서로 화해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용서란, 상대방이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을 때 비로소 성립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뉘우치지 않는다면, 화해는 성립될 구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가족은 소중합니다. 하지만 충만한 애정, 보살핌, 위로, 용서, 공감, 이해가 상호작용 해야 하는 가족이 제 기능을 못하여 인생을 망치려 든다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용기와 함께 삶을 지키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박차고 나와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당신이 살고 우리가 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