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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웅 Dec 20. 2022

삶의 밀도#6

비전(1): 실력(생명이 있는)

 첩보물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인상 깊게 봤던 영화는 제이슨 본 시리즈, 베를린, 더블 타겟 등입니다. 스릴 있는 전개의 매력에 이끌린 것도 사실이지만, 본질은 바로 ‘실력’입니다.


 저는 자본주의의 순기능을 인정합니다. 물론, 부작용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비판하는 것이 저의 업입니다. 저는 사회복지학 박사, 국회 비서관, 지금은 지방의회 정책지원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의원의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냐고 물으신다면? 낯부끄럽지만 ‘사회 정의’에 일정 부분 기여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경쟁에서 이기는 실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지는 바로, 경쟁은 중요한 것이고, 경쟁에서 이기려면 실력이 필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인정합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실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이든 잘하는 것이 하나 있어야 하며, 이를 통해 먹고살 수 있게 됩니다.


  다시 첩보물로 돌아가서 이야기하자면, 보통 주인공은 정치권력, 자본 권력, 범죄 권력에 의해 이용을 당합니다. 추후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용을 한 세력에게 통쾌하게 복수를 시전 합니다. 제대로 뼈를 때립니다.


 



“복수도 실력이 있어야 가능해”





 20대 중후반까지는 단순히 스릴과 통쾌함에 매료돼 첩보물에 푹 빠졌는데요, 30대에 접어들고 나서는 복수를 하고 싶어도 실력이 없으면 못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너무나 서글펐습니다. 왜 나는 실력이 없어서 이 모양으로 사는 것일까? 부와 권세 명예도 없을까? 한탄했습니다.


 실력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힘들고 지쳐도 학위 과정을 끝까지 마치자고 다짐하면서 박사학위까지 마쳤습니다. 너무 괴로웠지만, 국회에서 살아남자고 다짐하면서 독하게 지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성장했습니다. 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고, 특정 분야의 지식을 섭렵했습니다. 학술지에 논문도 여러 편 게재했습니다. 너무나 신났습니다. 글 쓰는 일은 나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돌진했습니다.


 그렇게 실력을 쌓고 잠시 숨을 고르고 보니, 내가 왜 이렇게 실력을 쌓고 싶은 것일까?라는 공상에 빠졌습니다. 그러면서, 아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보육원에서 핍박받던 그 시절로 말입니다.


 


“너는 구제불능이야, 재활용도 못해”


 


 저는 공구를 다루는 일을 잘 못합니다. 농사와 잡일을 많이 시켰던 보육원에서 저는 사실 구제불능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필요한 능력이 결여된 인간에 불과했기 때문이죠. 왜 그동안 내가 쫓기듯 살았나 싶었는데, 과거의 아픔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제불능, 재활용도 못하는 쓸모없는 인간에서 너무나 쓸모 있는 인간으로 신분을 탈바꿈하고 싶었나 봅니다. 이런 동기에서 시작된 실력 쌓기는 사실 저를 많이 도운 것은 사실입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얘기했죠. 열등감은 인간을 성장시키는 동력이 된다고 말입니다. 즉, 열등감은 인간에게 우월성을 추구하게 하므로 열등감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흥미로운 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저의 성장 동력은 열등감이었습니다. 덕분에 지금 나름 먹고는 삽니다.


 


“생명이 있는 실력 쌓기”



 

 하지만 구제 불능 인간이라는 평가에서 정말 실력 있는 인간이라는 재평가를 받고 싶은 과거의 아픈 기억에서부터 출발한 저의 실력 쌓기는 생명이 있는 ‘실력 쌓기’ 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괴로웠습니다. 아팠습니다. 심리적으로 위축되었고, 매 순간 분노하며 살았습니다.



 생명이 있는 실력 쌓기란, 노력의 과정이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지만 실력을 쌓고자 하는 동기가 분노와 열등감, 아픈 과거가 아닌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나도 성장하고, 남도 성장시키는 긍정적 상호작용의 과정을 통한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분노로 점철된 실력 쌓기 과정은 많은 상처를 주고받기 마련입니다. 이미 분노가 가득한 열등감 덩어리인 제가 어디엔가 혈안이 돼 실력을 쌓으려고 동분서주한다면, 사람은 그저 수단이요, 관계는 지나가는 과정이요, 결과는 오로지 무언가 이루었다는 성취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남을까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결과물만 남았습니다.


 비전을 제대로, 잘 이루기 위해서는 생명을 살리고 나도 사는 실력 쌓기 과정이 필수입니다. 그리고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선한 영향력 말이죠. 경쟁 체제도 인정하면서 나도 성장하고 남도 성장시키는 최적의 결과를 낳아야 합니다.


 과거와 남, 사회 탓만 하는 한 실력도 쌓을 수 없고, 비전도 이룰 수 없습니다. 삶의 밀도는 비전이 얼마나 잘 세워져 있고, 비전을 이루려는 노력 속에서 나도 성장하고 남도 성장시키는 고통스러운 과정에 충실해야만 그 농도가 진할 수 있고, 빽빽하게 채울 수 있겠죠.


 지난 시간들이 후회스럽습니다.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쌓아온 실력, 비전과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지만, 남은 건 사실 아무것도 없는 빈 껍데기와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건사해야 할 가족도 있고, 아직 젊기에 이제부터라도 과거의 아픔에서부터 자유하고자 하는 잘못된 동기에서 벗어나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비전을 펼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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