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누구나 한번 또는 그 이상 꿈을 갖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계속 그 꿈을 좇다 보면 그 꿈을 닮아간다고요.
하지만 어느덧 내가 누구고, 무엇을 잘하거나 못하며,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음을 깨닫는 나이가 될 때 현실에 안주하게 됩니다.
가난하면 꿈도 가난해야 돼?
2010년 개봉한 '맨발의 꿈'의 명대사입니다. 내전의 땅, 동티모르. 한국인 감독이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을 지도하는 내용을 그린 영화입니다. 히로시마 게임에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이 초청됐지만 항공료조차 없어 포기하고자 할 때 또 현실에 안주하라는 주위의 시선에 당당하게 외칩니다. "가난하면 꿈도 가난해야 해?"
가난하면 또 현재의 상황이 녹록지 못하면 다가올 미래도 비슷하게 전개될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가올 미래는 지금 내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매일매일을 그 계획 가운데 알차게 보낸다면 지금 상황과는 다르리라고 봅니다.
저는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머리도 좋지 않고 외모도 못생긴 축에 속합니다.대학도 별 볼 일 없는 곳을 나왔습니다. 하지만 제겐 꿈이 있었고, 환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용기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용기 덕분에 말입니다.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용기
2007년 스물한 살 때 러시아로 여행을 갔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가는 첫 여행이었습니다. 한 때 소비에트연방공화국으로 맹위를 떨치던 국가답게 그 위용은 대단했습니다. 모든 게 신기했고 재미있었습니다. 러시아 대학생들을 만났는데 영어를 할 줄 몰라 많은 교감을 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습니다. 덕분에 영어의 필요성을 깨닫게 됐죠. 또 화려한 러시아의 이면에는 고려인이라는 아픔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고국인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해 타지에서 뿌리내리며 사는 이들 고려인들을 만난 후 많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후 저는 인도, 네팔, 일본, 필리핀, 중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독일, 스페인, 체코, 프랑스 등 13개국 이상을 여행하면서 꿈을 갖고 단단히 다지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 또 잘 사는 나라를 마주하면서 국가 정책을 디자인하는 학자나 정책전문가를 꿈꾸게 됐습니다.
영어도 못하고, 돈도 없는 처량한 청년에겐 국외 여행은 그림의 떡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성공한 사람들이 일관되게 조언하는 내용 중 일치하는 점이 바로 여행이었습니다. 저는 일을 해서 안 입고, 안 먹고, 안 마셔서 마련한 돈으로 여행을 가보자는 용기를 가지고 이를 실현했습니다. 많이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더 넓은 세상에는 더 많이 배울 게 있다는 점이며, 이 또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은 비단 다른 나라로의 여행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나와 타인 간 관계 속으로의 떠남도 여행이며, 더 넓은 세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의 조화도 중요합니다. 나를 인정하고 다독이는 수용이 필요하죠. 죽을 때까지 함께해야 하는 내 자아니까요. 자기와의 부조화는 비전과 더 멀어질 수 있습니다.
괜찮아, 괜찮다는 자기 수용의 용기
저는 제가 싫었습니다. 잘하는 것도 가진 것도,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는 저를 좋아할 만한 이유를 찾는 것이 더 어려웠습니다. 위축됐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주저하게 됐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격적인 말투가 형성됐고, 또 쿨하지 못한 성격 탓에 흥분해서 말해놓고 후회합니다. 내일은 말을 아껴야지, 듣기만 해야지, 자기주장을 내려놓아야지...
사실 지금도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제 자신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그게 저의 비전에 전혀 도움 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기주장이 강한 점을 약점으로 보지 않고 강점으로 승화시키기로 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석사, 박사를 하면서 제 주장을 담은 글을 논문을 썼습니다. 학술지에 여러 편 투고하면서 글쓰기 실력도 자기주장을 잘하는 법에 대해서도 훈련이 됐습니다.
그렇게 저는 자기 수용을 하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더 자세히는 자기 용서입니다. 내가 싫었으나,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으나 나의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할 수 있는 길을 찾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기사를 쓰기로 했습니다. 논문만큼 기사를 쓰는 것도 제겐 자기 수용의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사회정책에 대한 비전이 있었습니다. 더 자세히는 불공정과 정의롭지 못한 차별이 만연한 사회를 개혁하는 것이 저의 꿈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언론사에 기사를 기고하는 것도 제겐 비전을 성취하는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자기 수용이 가능했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제게 만일 열악한 환경과 저의 약점에 갇혀서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용기와 혐오스러운 약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자기 수용, 자기 용서의 과정, 즉 삶을 극복하는 용기가 없었다면 지금 저는 제 비전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