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둘 곳

제자리에 있다는 것

by 달난별난

‘제자리에 있다는 것‘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우연히 오평 남짓한, 눈에 띄지 않는 소담한 서점에서 샀는데, 예상과 다르게 상당히 철학적인 내용이라 한 페이지를 읽으면 잠시 쉬며 생각을 정리해야 할 만큼 난해하고 묵직한 구절들로 이뤄져 있다.

오늘날의 세계와 나의 현실과 거기에 놓인 우리의 실존에 대해 끝도 없이 첨예한 질문이 담긴 책이라, 이쁜 표지에 반해서 샀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든 책은 귀한 인연이라는 생각을 하는 나에게 정확한 타이밍에 배달된 책 같기도 하다.


“뿌리내림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는 인간 영혼의 욕구“라고 시몬 베유가 말했듯, 나는 요즘 어떠한 “영혼의 욕구”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천지 마음 둘 곳 하나 없는 영혼의 부유감을 느끼며 실존적 질문들에 골머리를 싸매는 건, 그래서 오히려 희열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고통들이 지금 ‘나’를 이곳에 실존한다는 감각을 일깨우기 때문이리라.

사람에게 제자리에 있다는 감각은 환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평생 아파트 네임벨류로 분류되는 자리다툼에 치열하게 싸우다가 어느새 안주하고, 도태되고, 눈처럼 녹아 사라질 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영혼의 제자리라는 것이 있다면, 서늘하고 포근한 눈처럼 찰나를 수놓다가 아름답게 사라질 수 있다면, 그대로 충분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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