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준비나 잘하세요"
2019년쯤 나는 서울모구청에서 일선 주민센터로
발령을 받았다.
그전에는 현수막을 제거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한 번은 팀원 모두가 길거리에 불법현수막을 남김없이
철거하라는 명을 받아 현장으로 집합하였다.
한참 작업을 시작하려고 차에서 내려 현수막을 찾느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아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현수막을 제거하는 장비를 잘못해서 남자직원 한 명이 사고가 난 것이다.
동행했던 팀장님이 급히 택시를 잡고 인근 대형병원으로 이송조치하였으나 이 날 사고로 나는
팀 내에서 무능한 직원으로 낙인찍히는 좋지 못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다친 직원은 상처가 얼굴 쪽이긴 해도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어서 며칠 만에 직장으로 정상복귀하였다.
주민센터에 도착하니 이번에도 제일 힘든 민원대업무로 배치되었다.
공무원 하는 동안 줄곧 맡았던 일인데 이제는 회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별다른 경력이나 인맥이 없던 나는 별 수없어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그런 내가 좀 불편해 보였던지 주민센터 동장님은 사석에서 나를 보때마다 '퇴직 준비나 잘하세요 '는 말을 자주 하곤 하였다.
그때마나 나는 내가 벌써 퇴직할 때가 다가오나? 하는
반문을 하며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그래서 나는 퇴직준비를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라고 물어보니 '전기자격증'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생뚱맞게도 퇴직이니 전기자격증이니를 왜 나에게 거론하는 것일까ㆍ 나에겐 퇴직도 먼 훗날의 얘기였고
주민센터에서 괜찮은 자리 나 하나 안 줄까 하고 내심
바라고 있는데 찬물을 끼얹는 말을 들으니 도무지 이해를 못 하였다.
그러나 그때 동장님은 분명 앞날을 보는 눈이 있었다
그 후로 2년 반 거짓말처럼 나는 직장에서 퇴직하였다.
퇴직 후 처음 한두 달은 해방감도 있고 지낼만하였다
6개월 정도 지나니 여기저기 좀이 쑤셨다.
무엇이든 해야만 살 것 같았다. 그래서 근로복지 공단을 찾아갔고 내일배움 카드라는 것을 받아 직업훈련교육을 또 찾아다녔다.
재취업을 향한 열정이 남아있던지라 조경, 전기분야
등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알아봤지만 연말이라 그런지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교육이 없었다.
마냥 기다릴 수만 없다는 생각에 엉뚱하게도 시흥시에 소재하는 직업교육학교에서 모집하는 쇠를 깎는 밀링ㆍ선반교육 6개월 과정을 신청하였다.
금속산업 공장에서나 필요한 직업교육을 신청했던 것이고 나중에 알고 보니 중장년을 대상으로 하는 특화된 직업교육은 다른 과정이 따로 있었는데 알지 못하였다. 5개월쯤 되었을 때 80% 수강조건이 충족되어 미리 수료하고 다음 단계로 인천에 소재하는 조경학원에 등록하였다. 확실히 여기는 정년 또는 퇴직자들로 북쩍거렸다. 그렇게 하여 조경자격증을 취득하였고 나는 여기에 만족을 못해 다시 군포시 소재 서울남부기술학교에 전기반에 입학하고 말았다.
주말반으로 토ㆍ일요일만 8시간씩 교육을 받는 조건으로 서울시예산으로써 전액 무료였다.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나는 전기자격증 취득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3개월 쯤되는 과정으로 주말에 집에서 장거리를 차로
달려 교육을 받으려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두 번 결석을 하면서도 종강을 맞이했고 이제 시험에 합격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자격시험에서 나는 근소한 차이로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전기자격증은 퇴직자들의 재취업의 관문을 열수 있는 고시나 마찬가지였다.
자영업자ㆍ재직자ㆍ정년퇴직자들로 구성된 우리 반은 20명 중 17~8명이 합격하였다.
불합격의 쓴 고배를 마시고 나는 와신상담으로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하고 분통을 삼켜야 했다
그 후 나에게 차아온 암이라는 손님과 투병이라는
길 위에서 자격증 공부는 잠시 잊어버려야 했다
생사의 갈림길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나니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을 순 없었다.
그래도 할 일을 찾아야 했다. 허드레 일이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기간제일을 선택했고. 그것은
전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였다.
나쁜 선택은 또 나쁜 선택을 불러오는 것만 같았다.
조기퇴직이란 나쁜 선택 끝에 기간제라는 나쁜 선택을
또 붙들게 된건만 같았다.
제도권밖에서 하루 종일 우렁각시처럼 일을 한들 누가 알아주지 않았다. 마치 공직시절 못다 한 열정을 여기에
쏟아붓기라도 하듯이ᆢ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환멸과 멸시 조롱 섞인 어조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슨 권한로 당신 맘대로 해! 하는 면박뿐이었다.
담당공무원의 말 한마디에 먹고사는 일이 다렸다는 것은 한 달 두 달 시간이 가면서 알게 되었다.
육칠십이 다된 사람들이 예 예 하며 굽신거리는 이유를 나도 알게 되었고 그들과 똑같이 되어갔다.
여기서 탈출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가장 쉬운 생각은
자격증이었다. 그것도 전기자격증으로ᆢ
이 자격증만 있으면 당장 내일 일라도 새 인생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퇴직한 지 4년이 되어가는데 전기자격증을
손에 쥐지 못했다는 것은 이미 지나간 버스였다.
집 내방 한편에 산더미 같이 쌓인 수험서를 보면서 이쯤 해서 과감히 미련을 버리기로 맘먹었다.
수험서는 비싼 돈을 주고 샀기에 버리기 아까워서 아파트홈피에 올리니 금방 가져가겠다는 톡을 받았다
그나마 다행이다 재활용품이 될뻔한 책들이 새 주인을 찾았으니ᆢ
그리고 조용히 나에게 말해보았다
이제 내 인생에 전기자격증은 없는 거라고ᆢ
글쓴이 김영석
2026년 2월 13일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