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연휴도 금세 지났다.
하루하루 시간은 더디 가는데 지나고 보면 너무 빨리 지나갔다는 생각이다.
명절이라고 해봤자 오고 갈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연락이나 문자도 오지 않는다.
퇴직 이후는 사람 만나는 일도 거의 없고 연락을 주고받는 경우도 드물다.
물론 퇴직한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인간관계나 인맥 ㆍ모임을 만들거나 일을 떠나 인간적인 만남을. 지속할 수 있는지에 따라 퇴직 이후
삶의 질이 달라진다. 그것은 개인의 능력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오십이 훌쩍 넘어 이른. 퇴직으로 사회의 거센 풍파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던 나는 인생 후반부를 탄탄하게 준비할 시기를 놓쳐 안타깝기만 하다.
퇴직 전 세상물정이나 정치경제적 상황에 무지했던 탓에 충동적인 결정을 내렸고 그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부부가 단출하게 두식구뿐인 관계로 여느 평범한 가정에는 미치지 못한다.
의지할 사람도 문제를 상의할 사람도 많지가 않다
내 옆에 가장 가까운 사람을 두고도 그 크고 어려운 결정을 혼자 이기적으로 감정을 실어 판단해 버리고
옆에 사람 말을 듣지 않았다.
그야말로 경거망동이요 안하무인의 태도로 주위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에 뼈저리게 후회가 된다
세상이 끝난 것처럼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겁부터 집어먹고 이성적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도 하고 어떤 땐 분노가 밀려오기도 한다
그것밖에 못했단 말인가ㆍ더 할 수는 없었는가 ㆍ왜 생각을 바꾸지 못했단 말인가ᆢ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뇌어 보면서 쓰디쓴 아픔을 삼키곤 한다.
명절이 끝난 직후라 거리는 매우 한산했다.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나대로 있어야 할 자리로 가야 했다.
대한노인회 분회 소속 어르신들은 일요일만 빼고 거의 매일같이 축구장에 모여 운동을 한다.
그라운드 골프라는 다소 생소한 운동인데 그룹으로 운동장에 간단한 운동 장비들을 설치하고 아침마다 같이 와서 운동을 한다.
내가 아침에 일터에 나오면 사람을 볼 수 있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하나뿐인 광경이다.
몇 시간 후 이 사람들 마저 운동장을 빠저나 가면 그야말로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
그로부터 나는 시간과 싸워야 한다.
화장실 청소 쓰레기치우기 화장지 준비하기 등 이제는 일상적인 일마저 하기 싫거나 미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시간의 공백을 이런 일들로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을 찾아가며 하다 보면 볼에 땀이 흐르고 등뒤는 축축하게 젖기도 한다. 이 정도가 되면 비로소 아 내가 뭔 일이든 하고 있구나 하고 자각하게 된다.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고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한두 시간이 지나면 교대시간이 다가온다.
혼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인데 가끔은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질 때도 많다.
직장을 나오면 다 이렇게 되는 것일까.
교대자와 전화 통화로 짧게 몇마다 건네는 게 전부가 됐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직장 다닐 때와는 너무 다른 환경에 아직도 낯설게만 느껴진다.
무슨 묵언수행이라도 하는 도인이 돼가는 것만 같다.
그 많던 사람들과 스트레스, 복잡한 일 없이 혼자 다니며 하는 일은 좋을 것 같지만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과 좀 더 가깝게 지내고 친절과 호의를 베풀고 남을 배려하고 아껴주고 사랑하며 살지 못한 내가
너무나 못나 보이고 한심스럽다.
주위에 모든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고 세상에는 혼자 남은 것만 같다.
오늘도 정해진 분량의 시간을 채우기에 일부러 오고 갔던 공허한 시간들만 허공에 흩어지고
그렇게 또 날이 저물고 밤이 오기를 기다린다.
글쓴이. 김영석
2026년 2월 19일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