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 근로자

by 김영석

나는 지금 누구인가? 스스로 물어보고 답해본다 기간제근로자입니다. 그럼 그전에는 누구였는가?

전에는 구청에서 근무하던 공무원이었고요ᆢ

그렇다 신분계급으로 말하자면 공무원이었다가 기간제근로자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24년 이제막 가을로 접어든 어느날 이었다.

면접관은 내 이력서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화장실 청소도 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요?묻는다

"예, 할 수 있습니다! "

정규직직장도 아닌데 퇴직하고 세상밖으로 나와보니 재취업은 꿈도 못 꾸겠고 알바 일자리도 무척 힘들었다. 기간제근로자 모집 공고문을 접하고 이것이야말로 나를 위한 일자리일지 모른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바로 접수를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전직 공무원이라면 공공기관에서 시행하는 채용시스템에 나름 익숙하기에 곧바로 서류를 차근차근 구비하고 자소서도 작성하여 떨리는 심정으로 재취업 일자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사실 직업교육을 받아 자격증을 손에 쥐면 취업의 기회는 주어지기 때문에 우선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그 중 제일 인기가 많은 건 전기자격증이다.

학창 시절 줄곧 문과 출신인 내가 전기나 수학 같은 공부를 50대 중반 나이에 다시 할 수 있을까? 망설였지만 무조건 중장년 재취업 교육학습을 수강하고 시험에 합격하는 것만이 재취업 전선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어쨌든 전기자격증 취득에는 실패했지만 상대적으로 쉬운 조경자격증은 한 번에 합격하였다.

기간제 근로자 최종합격이라는 전화를 받고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공직에서 나온 지 무려 2년이나 지나서 다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공직에 다닐 때 말로만 듣던 기간제를 내가 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실업자로 남아 잉여인간이 되긴 싫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고

얼마 안 되지만 수입도 다시 생기니 연금에도 보태고 저축도 조금씩 할 수 있다는 계획이 생겼다.

기간제 일자리를 시작한지 한두 달도 안되어 너무 힘들다는 생각에 그만둘까 라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때마다 참아야지 하고 미음을 다독이며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헤쳐나갔다. 그러나 현장일이 서투른 나로서는 분명 한계가 있어보였다.

한번은 무거운 돌을 치우고 길을 넓히려는 생각으로 하지말라는 일을 벌이다가

돌에 손가락이 끼이는 산재사고를 당하였다.

순간 현기증이 몰려 와서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겨우 병원응급실에 도착하니

응급처치를 받고 다음날 수술대에 올랐다.

괜찮을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뒤로하고

3일간의 입원치료가 끝나자 또다시 재활이라는 고개를

넘어야 했다. 병원에서 만난 동료 반장님이 다치면 나만 손해야 라는 말을 듣고 내심 얼마나 속상하였던지 모른다. 누가시킨 것도 아니고 무리한 작업이 산재사고로 이어진 거였다.

이렇게 냉정한 사회가 있단 말인가? 이게 현실이구나 생각하니 억울하기도 하고 괜한 일을 했으니 나를 탓할 수밖에ᆢ

퇴직하고 벌써 수술을 두번이나 하었다.

안전원칙을 지키지 않은 내 잘못이라는 것을 사고가 나고 후에야 알게 되었다.

우선 일보다도 텃세라는 벽을 넘어야만 했다. 지역텃세라는 힘의 우위에 눌려 허리를 굽신거려야만 하였다.

무조건 한수 접고 들어가야했고 보이는 일은 무엇이든 먼저 나서서 해야 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포세식 화장실 청소는 특히 힘들었다 이용한 사람들이 남긴 흔적들을 뒷처리를 한다는게 여간해선 하기 힘들었다

처음 몇달 동안은 밥을 못먹을 정도 신경이 쓰였다. 쓰레기 수거 같은 익숙한 일도 알이서 척척 해낼 정도가 되어야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일을 시작한지 벌써 일 년이 지났고 두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다. 새해가 시작되니 이제는 끝이 보인다.

요즘 나에겐 새로운 습관하나가 생겼다.

달력을 보며 기간제가 끝나는 날을

손꼽아 세어보는 일이 하루 일과처럼 되어버렸다.

기간제에 들어와서 몸고생 마음고생을 다시하게 되었지만

아침에 눈을뜨니 갈 데가 있어 좋다는 긍정마인드로 남은 날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글쓴이 김영석


2026년 2월 5일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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