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대의 단점은 사람을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이다
어릴 적에도 동네 남자아이들은 한두 살 차이만 나도
엄격한 서열이 정해지곤 했는데 그것은 자연스러운 관습이라 해도 될 것이다.
우리도 잘 살아보자고 새마을운동 깃발아래
지붕을 개량하고 동네에는 전깃불이 들어왔다.
면소재지에 위치한 초등학교에 다녔던 나는 그냥 존재감 없는 한 명의 학생에 불과했다. 그러던 내가
공부에 관심을 보인건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공부를 잘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그 시절의 교육방침의 영향일 수도 있겠고
어린 마음에도 공부를 잘해서 두각을 나타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방과 후에 동네친구들은 몰려다니며 놀기 바빴지만
나는 달라야 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중간시험 기말고사를 대비해 열심히 공부에 매달렸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공부에 대한 관심은 더해만 갔다.
6학년이 되어서는 줄곧 성적우등상을 받았고 내 인생도 그럴게 우등으로 꽃 피울 것 같은 착각 아닌
착각을 하곤 했다.
어린 마음에도 학급친구들과 경쟁심리가 일기 시작하였고 그것은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고
소질과 적성을 개발할 나이에 공부라는 함정
빠져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일고의 가치를 두지 않았으니 이러한 편협한 생각은 훗날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학창 시절을 오직 공부만이 절대적인 가치로 여기고
나에 대한 평가는 시험점수 와 성적만이 전부라고
여겼고 그렇게 믿었던 시절이었다.
그 누구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입 학력고사를 치르고 점수를
확인해 보니 지방대도 갈 수 없는 하위 점수를 받았다
침울해진 나는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생각에 고통스러웠으나 포기라는 말대신 재수라는 카드를 꺼내 들고 다시 대학입시에 모든 걸 걸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한 번의 실패로 생긴 상처는 생각보다 컸다.
재수라는 카드는 나에게 오히려 독이 되었으니 오히려
진로를 바꾸거나 산업전선에 뛰어드는 것만 못했다.
그 또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고 그땐 몰랐다.
이 시기에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바꾸었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공부만이 전부였던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더구나 이시절 학교울타리를 나오니 해방감도
있었지만 잘못된 행동으로 미래의 내 인생 발목 잡힐
사건들을 경험하였다가 끝내 말을 못 하여 가슴속 깊이
묻어놓고 내가 돈 벌면 해결할 수 있겠지ᆢ막연하게 결론을 내리고 다시 갈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재수를 하여 대학에 입학했고 또 군대생활도 했지만
내가 어떤 길을 가든 그때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내 앞길에 방해물이 되었다. 그 후로 대학을 자퇴하고
서울하늘 아래서 하릴없이 방황하는 시절을 거치며
벌써 20대 후반에 나이가 되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기를 쓰고 다녔지만 다시는 대학에 돌아가지는 못하였다.
서울 전셋집 집주인은 방한칸에 세 들어 사는 사람에게
친절한 분이었다.
어느 날은 하고 한날 집에만 있는 내가 이상하였던지
뭐 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묻길래 대학 다니다 중퇴하고
집에 있습니다 하였더니 공무원이라도 해보라며 언덕 넘어 사직공원도서관에 가보라며 안내를 해주셨다
그 말이 믿음으로 다가왔다. 주인집 아주머니의 말씀이 귀에 꽂힌것어었다. 그래 공무원이라도 해보자 그때부터 결심하고 공무원 시험준비에 매진하였다.
96년 결과는 9급지방공무원 세무직 합격이었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국가직세무서로 이직을 시도하다가 겁이 많았던 나는 다시 사표와 시험이란
시행착오를 몇 차례나 반복하며 97년 시험에 합격하여
쓰린 경험을 끝내고 공무원생활이 시작되었다.
늦은 나이 32세에 사회 첫발을 내디뎠고 그곳은
동사무소였다.
바뀐 것은 세무직에서 행정직으로 그리고 직장이 A구청에서 B구청으로 바뀐 것뿐이었고 세월만 약 3년 정도를 허비하였다.
99년 1월 드디어 서울 J구청으로부터 발령장을 받았다. 더 이상 내 인생에 사표란 없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9급 3호봉을 시작으로 내게도 공무원란 명함을 걸고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착하고 성실했다.
2004년 공무원에 들어온 지도 4년 정도 지났을 즈음
갑자기 틀에 박힌 생활이 지겨워졌다. 직장을 바꿔보자는 생각으로 교류신청을 했고 운 좋게도 서울 Y구청으로 발령을 받았다.
미혼이었던 나는 개방적이고 도시적인 묘령의 여자에게 끌려 불미스러운 사건들을 자초하였으니 그것은 공무원 가는 길을 고행의 길로 안내하였던 것이다.
퇴직이라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이면에는 이런 일 저런 일을 다 겪어야 했다.
인생 일장춘몽이요, 새옹지마라 하였던가ᆢ
문득 악몽 같았던 그 일들이 떠오를 때마다
숨이 멎을 듯 답답함이 옥죄어 오곤 한다.
이제는 모든 일을 뒤로하고 퇴직 후의 일에만
전념하며 살고 싶다.
글쓴이 김영석
2026년 2월 9일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