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마당은 강이 되고....

by 글향기

한낮의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던 여름이었다.

땡볕 아래 땅은 쩍쩍 갈라지고, 풀은 제 키를 이기지 못할 만큼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면 뜨거운 공기가 목 안까지 타고 내려왔다.


그해 여름 비가 자주 내렸다. 별이는 비 오는 날은 신난다고 혼자 좋아했다. 별이만의 재미난 놀이가 있기 때문이다.

비는 아침부터 쉬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마당은 어느새 작은 개울이 되어 있었고,

닭장 앞에는 동그란 물웅덩이가 생겼다.

별이는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동그란 물결이 퍼졌다. 그 물결이 자꾸만 재미있어서 별이는 장화를 신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첨벙"

"첨벙"

흙탕물이 장화에 튀어 올랐다.

치마 끝이 젖는 것도 몰랐다.

비는 머리카락을 타고 이마로 흘러내렸지만

별이는 꼭 비와 친구가 된 것처럼 마당을 돌아다녔다.

작은 물길을 따라 걸어가 보기도 하고, 일부러 더 깊은 웅덩이를 골라 발을 넣어 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장화 속에서 철퍽철퍽 소리가 났다.

“내가 물고기야.”

별이는 혼자 중얼거리며 웃었다.

한참을 그렇게 놀다가 부엌 쪽을 바라보았다.

부엌문 틈 사이로 따뜻한 김이 나는 것이 보였다.

그 안에서는 엄마가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배도 고파졌다.

부엌 뜰로 올라오려는데 발이 무거웠다.

장화 속으로 물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겨우 뜰에 닿았을 때였다.

장화는 이미 흙탕물에 잠겨 있었고 발은 퉁퉁 불어 있었다.

“다 젖었네. 장화가 안 벗겨져.”

별이는 장화 목을 잡고 힘껏 당겼다.

쭈우욱~~~~

미끄러졌다.

다시 잡았다.

두 손에 힘을 주고 얼굴을 찡그렸다.

“끙끙.... 에잇~~~!!”

그 순간

쏘옥!!!

장화 속에 숨어 있던 발이 빠져나왔다.

별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버렸다.

그리고 자기 발을 내려다보았다.

하얗게 퉁퉁 불어 있었다.

주름이 꼬물꼬물 잡혀 있었다.

발가락은 서로 끌어 안 듯이 꼭 붙어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낯설고 우스워서 별이는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푸하하하! 내 발이 할머니 손 같아!”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빗소리 사이로 별이의 웃음이 또르르 굴러갔다.


그때 부엌문이 열렸다.

따뜻한 김과 함께 엄마가 얼굴을 내밀었다.

“어머, 우리 별이! 비 다 맞았네.”

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쪼글쪼글해진 발을 번쩍 들어 보였다.

엄마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같이 웃기 시작했다.

“발이 물속에서 오래 놀다 나왔구나.”

엄마는 수건을 가져와 별이의 젖은 머리를 먼저 감싸 주었다.

엄마의 따뜻한 손이 발을 감싸자 간질간질한 느낌이 올라왔다.

별이는 웃음을 멈추고 엄마의 무릎에 기대앉았다.

부엌에서는 된장찌개 냄새가 났다.

"보글보글" 냄비에서 끓는 소리가 들렸다.

빗소리는 여전히 처마 끝에서 똑, 똑 떨어지고 있었다.

벗겨진 장화는 뜰 한쪽에 쓰러져 비를 맞으며 쉬고 있었다.


별이는 생각했다.

비 오는 날은 온몸이 젖고 장화 속에 발이 꼭 갇혀 버리기도 하지만, 이렇게 따뜻한 부엌으로 들어와 엄마 무릎에 기대앉아

수건으로 발을 닦는 시간이 있어서 좋았다.

조금 전까지는 장화가 벗겨지지 않아 속상했는데 지금은 그 일마저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말했다.

“우리 별이, 다음에는 물웅덩이에서 조금만 놀자.”

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다음에 비가 오면 또 장화를 신고 나가

첨벙첨벙 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장화 속에서 발이 쏘옥 빠져나오던 그 순간과 자기 발을 보고 마음껏 웃던 그 시간이 너무나 반짝였기 때문이었다.

그날 오후 비가 그치고 마당에 엷은 햇살이 내려왔을 때 별이의 장화 속에도 작은 햇빛이 들어와 말라 가고 있었다.

별이는 마루에 앉아 맨발을 흔들며 생각했다.

오늘은 비와 놀았고, 장화와 싸웠고, 웃음을 하나 얻은 날이었다.

그래서 별이는 알게 되었다.

아주 젖어 버린 날에도 마음속에는 따뜻한 이야기가 하나씩 생긴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날은 꼭 동화책 속 한 장면처럼

오래오래 남는다는 것도.


그런데 별이가 여섯 살이던 그해 여름은 조금 달랐다.

어느 날부터인가 하늘이 구멍난 듯 비가 쏟아졌다. 퍼붓는 빗줄기에 더위는 싸악 물러갔고, 오히려 으슬으슬 춥기까지 했다.

별이네 집 마당은 골목보다 낮았다.

비만 오면 골목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길고 긴 골목은 언덕처럼 완만히 올라가 있었는데, 그 끝에서부터 흘러내린 물은 빠져나갈 곳을 찾지 못하고 전부 별이네 집으로 몰려들었다.


하늘색 커다란 대문 틈 사이로 흙탕물이 밀려 들어오면, 마당은 금세 작은 강이 되었다.

어른들 눈에는 그저 마당이었겠지만, 여섯 살 별이에게는 작은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 세상은 비가 오는 날이면 순식간에 두려운 물의 나라로 변해버렸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하수구 구멍이 있었다.

별이 얼굴만큼 커 보이던 그 구멍으로 물이 소용돌이치며 빨려 들어갔다. 물살이 세질 때면, 별이는 괜히 그 근처를 바라보지도 못했다. 혹시라도 자신이 휘말려 들어갈까 봐, 작은 심장이 쿵쿵 뛰었다.

골목길에서 놀다가 너무 무서워 집으로 돌아온 별이는 순간 너무 놀랐다.

그날도 비가 오니 웅덩이 찾아 물놀이하다가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 골목길에 있는 별이네 집 행랑채 처마밑에서 비를 피했다. 엄청나게 쏟아진 비를 처음 본 별이는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하늘에 구멍이 났나?"

별이는 너무 무서워 눈물이 날뻔했다.

그렇게 한차례 비가 마구 퍼붓더니 이내 가랑비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별이는 오돌오돌 떨리는 손으로 우산을 꽉 잡고 골목길 집 앞 행랑채에서 대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발은 이미 푹 빠졌다.

질척한 흙이 장화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다리는 자꾸만 흔들거렸고, 물은 무릎 위까지 차올랐다. 우리 집 마당인데도, 꼭 큰 강을 건너는 기분이었다.

한 발.

또 한 발.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으며 천천히 걸었다. 어린아이 혼자 건너기엔 깊고 넓은 강물이었다. 넘어지면 큰일이라는 걸, 별이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겨우 겨우 부엌 뜰에 닿았을 때였다.

장화는 이미 흙탕물에 잠겨 있었고, 그 속에서 오래 붙들려 있던 발은 퉁퉁 불어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낯설었다.

“다 젖었네. 장화가 안 벗겨져.”

별이는 아무도 듣지 않는데 혼잣말을 하며 장화 목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축축한 고무가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한 번 잡아당겼다가 미끄러지고, 다시 힘을 주어 끙끙거리다가 숨을 몰아쉬었다.

“끙끙!! 에잇~~~!!”

그 순간, !! 하는 소리와 함께 장화 속에 갇혀 있던 발이 쏘옥 빠져나왔다.

작고 하얗게 불어버린 발.

물에 오래 담가 두었던 두부처럼 말랑말랑해진 발가락들.

주름이 잔뜩 잡혀 할머니 손등 같기도 했다.

별이는 한참 동안 그 발을 내려다보았다.

비를 맞으며 뛰어오던 길, 미끄러져 넘어진 순간, 흙탕물이 첨벙거리던 소리, 그 모든 것이 아직도 발끝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갑자기,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졌다.

“내 발, 왜 이래!”

"깔깔깔~~~~"

부엌 뜰에 웃음이 번졌다.

빗소리 사이로,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사이로, 별이의 웃음이 동그랗게 굴러갔다.


젖은 옷은 몸에 달라붙어 불편했고, 머리카락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따뜻했다.

장화 속에 갇혀 있던 발을 꺼내는 일은

꼭 작은 모험을 끝낸 것 같았다.

비를 뚫고 집까지 돌아온 것,

강물 같은 마당을 혼자서 걸어온 것,

혼자 힘으로 장화를 벗어낸 것,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스스로 웃어버린 것까지....

그날의 별이는 자기 삶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작은 의문이 맴돌았다.

‘우리 집은 왜 비만 오면 강이 되는 걸까?’

장마라는 말을 아직 몰랐던 별이는 혼자 중얼거렸다.

“여름 싫어. 무서워! 비는 안 좋아.”

비는 무섭게 쏟아졌고, 하수구는 요란하게 물을 삼켰다. 마당은 물결로 출렁였다. 세상이 전부 흙빛으로 변한 것만 같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비가 그치고 해님이 얼굴을 내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당은 순식간에 제 모습을 되찾았다. 흙탕물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바닥은 마치 누가 깨끗이 쓸어놓은 듯 말끔해졌다.

조금 전까지 강물이었던 곳이 다시 놀이터가 되었다.

무서웠던 하수구는 그저 조용한 구멍이 되었다.

별이는 그 신기함 앞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아, 물은 우리 집으로 쏟아져 들어 오지만 머물지는 않는구나.

무섭게 차올라도, 결국은 빠져나가는구나.

여섯 살 아이는 알지 못했지만, 그 여름의 마당은 조용히 한 가지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세상이 온통 물에 잠긴 것 같아도 해님은 다시 떠오르고, 마당은 다시 마르고, 아이의 웃음도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그래서 별이의 여름은 무섭고도 신기한,

두려움과 웃음이 함께 자라던 계절로 오래 마음에 남았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