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찬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날(1971.2.)이었다. 별이 기억에는 아주 생생한데, 그해가 3살이었다고 한다.
저녁 공기에는 차가운 기운이 남아 있었고, 바람은 살살 불어왔다.
저녁밥을 먹기 전 아버지는 늘 그렇듯 호롱불을 들고 방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호롱불 자리에 갖다 두며 불을 붙이셨다.
은은한 불빛이지만 방문을 열고 닫을 때 바람이 살짝 불어오면 호롱불은 흔들흔들 춤을 추었다. 그럴 때마다 검은 그을음이 휘리릭 하다가 스치듯 사라졌다. 별이는 그럴 때마다 작은 귀신이 불빛 끝 검은 연기를 타고 다니는 줄 알았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호롱불은 얌전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그날도 아무렇지 않은 하루의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오늘 저녁 7시에 동네에 전깃불이 들어온다.”"물론 우리 집에도 들어오지."
별이는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잘 몰랐다.
전깃불이 뭔지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지만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아주 큰일이 곧 일어날 것처럼.
사실 며칠 전부터 모르는 아저씨들이 와서 시끌시끌하게 떠들면서 공사를 했다.
안방에도 윗방에도 마루며 부엌에도 선으로 열결 된 유리공 같은 것을 매달아 놓았다.
할머니와 식구들은 저녁밥을 서둘러 먹고 빙 둘러앉아있었다. 일하는 삼촌 세 분도 함께 저녁 먹고 기다리고 있었다. 별이네는 농사일 도와주시는 삼촌 세 분이 사랑채에서 주무시고 다 같이 한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매일 밥상 차리는 엄마는 무척 힘드셨을 텐데, 찌개와 국을 끓여내고, 생선을 구워 내시고, 반찬도 매번 다르게 밥상을 세 개씩 차려 내었다. 엄마는 설거지하느라 바쁘셨고, 다들 무슨 중요한 회의를 하려고 기다리는 듯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일찍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별이네 가족은 중요한 일이 있으면 아버지께서 다 모이라고 하고 가족회의를 하셨다.
마침 그때의 모습과도 같았다. 다들 긴장하고 있는 얼굴빛이었다.
해가 지고 7시가 가까워지자 집 안은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우리 가족은 모두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별이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다. 누가 알아차릴까 봐 두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호롱불 아래에서의 그 어둑한 시간마저
그날은 왠지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반짝!!! 과 동시에
“와아아~!!!”
그 소리는 여태껏 들어 보지 못한 엄청난 함성이었다.
방안의 천장에 달린 전구가 한 번 숨을 쉬듯 깜빡이더니 갑자기 환하게 켜졌다.
“전깃불이다!!!”
우리 집의 함성과 밖에서 들려오는 동네 사람들의 환호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와 아아아 아~~~!!!
별이는 동네 사람들이 다 같이 소리치는 그 함성이 너무도 크게 들려 너무 놀라서 잠시 말을 잃었다.
깜깜하던 방이 거짓말처럼 밝아졌기 때문이다. 해님이 비추는 낮처럼 밝았다.
서로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동안 저녁에는 호롱불 아래 그림자처럼 보이던 얼굴들이 이렇게 생생했나 싶었다.
별이는 너무너무 신기했다. 가족들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웃고,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언니와 박수도 치며 신기해했다.
별이는 멍하니 불빛을 올려다보았다.
“와~~~ 다 보여!!!”
별이의 입에서 저절로 그런 말이 나왔다.
옅은 주황빛의 백열전등은 눈부시지 않았고,
그 빛은 차갑지 않았다.
밝은데 따뜻했고, 낯선데 마음이 놓였다.
“아버지, 저거 만져보고 싶어.”
내 말에 아버지는 웃으시며 별이를 번쩍 안아 올리셨다. 전등 가까이 데려가 주시며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이건 만지면 뜨거워.”
“손 데일 수 있어.”
“가만히 보기만 해.”
아버지 품에 안긴 채 별이는 전등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밝고, 따뜻하고, 마치 우리 집을 따뜻하게 꼭 안아주는 것 같은 빛.
그때 별이는 생각했다.
‘이제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아.’
아무 이유도 없었지만 그렇게 느꼈다.
어린 별이의 마음이 먼저 알아본
어떤 예감 같은 것이었다.
그날 이후 호롱불은 캄캄한 창고로 들어갔다.
안방도, 부엌도 그리고 마루도 모두 전깃불이 환하게 밝히게 되었다. 부엌에서 떨어진 곳의 화장실까지도 전깃불이 켜졌다.
밤은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어둠은 전깃불이 켜지는 순간마다
금세 밀려나곤 했다.
사람들은 밝아진 밤에 익숙해졌고,
아무도 호롱불을 찾지 않았다.
어느 날 낮, 별이는 왜인지 모르게 창고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전기불이 들어오고 한 참 지난 후니 아마도 별이가 7살 쯤 되었을 때다.
누가 부른 것도 아니고, 특별히 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했다.
별이는 창고 문을 살며시 열었다.
낮인데도 창고 안은 어두웠다.
작은 창 하나로 들어오는 빛이 먼지 사이를 비집고 내려와 바닥에 흐릿한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공기는 조용했고, 시간도 잠시 멈춘 것 같았다.
그때, 별이는 한쪽 구석에서 눈에 익은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호롱불이었다.
예전에는 밤마다 우리 집을 밝혀주던 불빛이
이제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조금 기울어진 채, 마치 오래 기다리다 지친 것처럼.
별이는 반가운 마음에 조심조심 다가갔다.
그리고 별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했다.
“호롱불아, 안녕?”
말을 하고 나서야 조금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호롱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조금은 시무룩해 보였다.
별이는 잠시 그 앞에 서서 호롱불을 바라보았다.
낮의 빛 아래서 보니 예전보다 더 작아 보였다.
그동안 우리를 밝혀주던 그 불빛이 아무 말도 없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괜히 마음에 걸렸다.
별이는 호롱불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아주 작게 말했다.
“호롱불아, 미안해.”
“어둡고 춥지?”
“아무도 널 안 찾아서 속상했겠다.”
아무 대답도 없었지만 별이는 계속 말을 걸었다.
“전깃불은 환하고 좋아.”
“그래도 난 꺼질 듯 말 듯하던 네가 좋았어.”
“그동안 고마웠어.”
“가끔 널 보러 올게.”
별이는 호롱불과 조용히 인사를 나눴다.
그 시절의 별이는 사람뿐 아니라 빛과도, 물건과도 마음을 나누는 아이였다.
모든 것에 따뜻한 마음이 있다고 자연스럽게 믿었다.
그때는 몰랐다.
행복이란 것이 어느 날 갑자기 크게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걸.
그저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용히, 그 여름의 마당과 밝아진 방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는 것을.
그날 불빛이 켜진 것은 전깃불만이 아니었다.
별이네 집의 밤과, 가족의 얼굴과, 그리고 별이의 마음 한구석에도 작은 불빛 하나가
천천히 켜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