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빡머리 별이의 용기

by 글향기

별이가 다섯 살에서 한 살 더 먹은, 여섯 살이 되던 그해 여름이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비가 자주 내렸다. 장마가 시작되면 동네 냇물은 금세 불어나고, 다리 아래는 찰랑찰랑 소리를 내며 금방이라도 넘칠 것처럼 출렁거렸다.

비바람에 우산이 망가진 날도 여러 번이었다.

그래도 별이는 여름이 싫지 않았다.

언니와 함께 집을 나서면 바로 앞에 있는 작은 다리로 가서 노는 시간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다리 아래에는 동네 아줌마들이 빨래를 하던 빨래터가 있었고, 물이 맑을 때면 바위 사이로 물고기 그림자가 살짝 보이기도 했다.

별이는 난간에 몸을 기대고, 아래로 흐르는 물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걸 좋아했다.

“저 물속으로 들어가면, 어디로 갈까?”

“저렇게 흘러가면 끝에는 뭐가 있을까?”

커다란 바위 사이로 물이 빙글빙글 소용돌이치며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에서 작은 모험이 시작되는 것만 같았다. 별이는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운 아이였다.


그날도 다리 위에는 동네 아이들이 모여 시끌시끌 웃고 떠들고 있었다.

별이는 늘 그렇듯 바위가 내려다 보이는 다리 난간 위에서 살짝 몸을 흔들며,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뒤에서 누군가가 별이를 밀었다.

“으악ㅡㅡ!”

갑자기 몸이 앞으로 쏠리며, 별이는 허공으로 떨어졌다.

세상이 한순간에 뒤집히는 것 같았다.

"쿵!!!"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눈앞이 하얘졌다.

누군가가 다급하게 별이를 업고 달리는 느낌이 잠깐 스쳤다.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곧,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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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깊은 잠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위잉~~~~윙~~~!!”

차 소리 같기도 하고, 바람 소리 같기도 했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 사이로, 별이가 가장 잘 아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 눈 좀 떠 봐!! 별이야~~~”

엄마였다.

“아가, 우리 별이야, 엄마 좀 봐! 제발....”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울음이 묻어 있었다.

별이는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몹시 무거웠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소리가 들렸다.

"오늘 밤 별이가 오줌을 못 누면 영영 바보가 된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랬는데, 별이야 눈 좀 떠 봐라."

그 소리는 꿈결인지, 스르르 또 잠이 들었다.

몇 번을 비몽사몽으로 헤매는 시간을 보냈다.
"나, 오줌 마려워.’ 작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셨다.

“엄마, 나 오줌!!” 목소리가 잘 안 나오는데, 용기를 내서 더 큰 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이었다.

“어머, 어머! 우리 아기 살아났어요! 우리 별이가 살아 있어요!”

엄마는 별이를 꼭 안고, 울면서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별이를 번쩍 안아 화장실로 데려갔다.

그날 밤, 엄마의 품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불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별이는 천천히 눈을 떴다. 머리가 이상하게 시원했다.

손으로 머리를 만져보는 순간,

“아앙―! 싫어! 내 머리~~~~!!

나 남자 아니야! 나 여자야!”

별이는 갑자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엄마! 내 머리 어디 갔어! 내 머리카락 붙여 줘! 붙여 놔!”

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엄마는 별이를 안고 조용히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별아, 다친 데를 치료하려면 머리를 잘라야 했어. 수술 안 하고 이렇게 잘 깨어난 게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지 몰라.”

엄마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눈에는 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우리 별이, 참 고마운 아이야.”

별이는 빡빡이 머리가 싫어서 훌쩍이며 엄마 품에 얼굴을 묻었다.



나중에야 별이는 알게 되었다. 외삼촌이 별이를 업고, 숨이 차도록 달리고 또 달려 아랫마을 한의원에 데리고 갔는데, 의식이 없어서 더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께서는 출근을 하셔서 나중에 알게 되어 큰 병원에 입원할 때 아버지께서 데리고 왔다고 했다. 버스 몇 번 갈아타고 그렇게 이곳에 오게 되었다는 것을.


"외삼촌이 나를 업고 달리셨다고?"

늘 말이 적고, 조용히 웃기만 하시던 외삼촌이 떠올랐다. 외삼촌은 공부를 많이 하셨다고 들었다. 그 시골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왔다고 했는데, 그때 별이는 대학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였다.

별이는 마음속으로 살며시 말했다.

"고마워요. 외삼촌,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아버지 고마워요."

그리고 또 한 사람. 세상에 하나뿐인 사랑하는 엄마!!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밤새 곁을 떠나지 않고, 별이의 손을 꼭 잡고 울며 기도하던 엄마.

엄마는 별이의 짧아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별아, 머리는 다시 자라.

손톱이 자라듯이, 머리도 꼭 다시 자라.

지금은 그냥.... 잘 먹고, 잘 쉬고, 빨리 힘내자.”

별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난 여자 맞아. 머리는 다시 자라겠지.’

그리고 마음속으로 작은 약속을 했다.

"엄마가 웃게~~~!! 나, 빨리 건강해질 거야."

며칠이 지나고, 별이는 다시 씩씩하게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천천히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아프긴 했지만, 참고 치료도 잘 받았다.

거울 속에 비친 빡빡한 머리의 별이는 조금 낯설고 싫었지만,

엄마가 웃으며 말해 주었다.

“우리 별이, 지금도 참 예쁘다.”

그 말 한마디에, 별이의 마음이 환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머리는 정말로 다시 자라났다.

별이는 다시 웃고, 다시 뛰고, 다시 상상을 하는 아이가 되었다.

다리 위에 서서 흐르는 물을 바라볼 때면, 별이는 가끔 그날을 떠올린다.

자신을 살려 준 사람들의 숨 가쁜 발걸음과, 자신을 놓지 않았던 엄마의 따뜻한 손을.

별이는 오늘도 조용히 마음속으로 말한다.

“고마워요. 나를 지켜 줘서!! 나를 다시 살게 해 줘서.”

그리고 작은 별이는, 사랑 속에서 다시 자란 머리카락처럼, 사랑 속에서 천천히,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