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입학식(노란 반코트와 빨간 구두)

by 글향기

별이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언니 옆에서 공부를 했다.

일곱 살 어느 날부터였다.

아버지는 퇴근하시고, 저녁 식사 후 공책을 펼쳐 놓고 숙제를 내주셨다.

“오늘은 낱말 다섯 번씩 써 보자.”

“그리고 더하기, 빼기 문제도 풀어 보렴.”

아버지의 글씨는 또박또박했다. 별이는 그 글씨를 따라 천천히 연필을 움직였다. 낮에는 늘 바쁜 엄마가 틈나는 대로 별이 옆에 앉아서 공부를 봐주셨다.

“여기 조금 삐뚤어졌네. 다시 한번 써 볼까?”

“받아쓰기해 보자.”

엄마가 한자, 한자 낱말을 불러 주면 별이는 혀를 살짝 내밀고 집중해서 글자를 적었다.

저녁이 되면 퇴근하고 오신 아버지가 숙제를 검사하셨다. 검사 후 꼭 아버지 사인을 해주셨다. 그 사인이 너무 신기하기도 했다. 별이도 아버지처럼 어른이 되면 멋진 사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별이 참 잘했네.”

그 말 한마디에 별이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때는 시골이라 학습지가 있는지도 몰랐다. 공책이 교과서였고, 아버지의 숙제가 문제집이었다. 별이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고 매일매일 공부했다.

어느 날 외갓집에 갔다. 외갓집은 같은 동네라 별이는 작은 언니와 자주 놀러 갔다.

그날도 외사촌 언니와 술래잡기를 하다가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별이는 그 자리에서 눈이 동그래졌다.

화장실 벽에 종이가 반쯤 잘린 채 걸려 있었다. 시험 문제 같은 글이 쓰여 있는 종이였다. 별이가 어릴 적에는 신문지나 종이를 구겨 부드럽게 만들어 쓰던 시절이었다.


별이는 무심코 그 종이를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어?”

그 종이는 시험지였다. 문제도 있고,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도 그려져 있고, 점수가 쓰여 있었다. 100점도 있고, 90점도 있었다. 맨 위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외사촌 언니 이름, 그리고 별이와 같은 날 생일인 같은 나이인 외사촌 남자아이 이름.

그 종이 위에는 굵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매일 학습지’

별이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이게 뭐지?"

알고 보니 매일 우편으로 배달되는 학습지였다. 외사촌 언니와 친구는 그것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별이는 문화 충격을 받은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리는 아버지가 공책에 써 주시는데....’

집에 돌아와도 그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외갓집은 서울에도 집이 두개나 있다던데....매일 학습지로 공부하는구나.' 하지만 별이는 아버지가 숙제 내주는 게 더 좋았다. 그 이야기를 엄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꺼내지 않았다. 작은 언니에게조차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그냥 조용히 마음속에 담아 두었다.


드디어 국민학교에 들어갈 날이 다가왔다.

엄마와 아버지는 별이 입학 준비로 바빴다. 입학식 전날, 엄마가 옷걸이에 걸린 코트를 보여 주셨다. 노란 개나리색 반코트였다. 보기만 해도 눈이 부셨다.

“별아, 한 번 입어 볼래?”

별이는 아직 속에 얇은 내복을 입고 흰 블라우스를 입은 후 코트를 입어 보았다. 그런데 소매가 길었다.

“엄마, 옷이 너무 커요.”

엄마는 웃으며 소매를 한 번 접어 주셨다.

“이 정도는 입어야 내년에도 입지.”

별이는 거울을 보았다. 소매가 접힌 노란 코트가 꽤 멋져 보였다.

“응, 엄마. 마음에 들어요.”

별이는 코트를 벗었다가 또 입어 보고, 또 입어 보았다. 그러다 바닥에 놓인 구두를 보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빨간 구두였다.

“엄마! 구두가 너무 예뻐요. 신고 자고 싶어요.”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내일 학교 갈 때 실컷 신어. 방 안에서는 신발 안 신는 거야.”

하지만 별이는 참지 못했다. 빨간 구두를 신고 방과 마루를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돌아다녔다.

밤이 되자 별이는 그 구두를 가슴에 꼭 안고 잠이 들었다. 학교 가는 게 좋아서인지, 새 옷과 새 구두가 좋아서인지 별이의 마음은 풍선처럼 둥실 떠 있었다.


입학식 날 아침이 되었다. 봄 햇살이 따스하게 비취고 있었지만 봄바람은 차가웠다.

아버지는 출근하셨고, 엄마가 별이 손을 잡고 작은 언니랑 같이 학교에 데려갔다.

엄마는 보라색 벨벳 한복을 입고 긴 코트를 걸쳤다. 햇살 속에서 엄마는 참 곱게 보였다.

별이는 노란 반코트를 입었, 엄마가 별이 가슴에 흰 손수건을 옷핀으로 달아주셨다.

운동장에 줄을 서자 바람이 차갑게 불었다. 코끝이 시려 콧물이 찡 하고 나왔다.

그때였다. 앞쪽에서 누군가 크게 울고 있었다.

"엉엉~~~ 엉!!"

별이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보았다. 우리 동네 남자아이였다.

아침에도 엄마 등에 업혀 울면서 학교에 왔던 그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의 엄마는 할머니 같았다. 형들이 많고 막내라고 했다. 학교 가기 싫다고 우는 거라고 했다. 친구들이 놀려도 계속 울었다.

콧물이 흘러내리자 노란 콧물을 소매로 쓱 닦았다.

별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1학년이 울다니....코를 옷으로 닦다니 드러워라.’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 창피하기도 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있었다. 교실에 들어가 보니 그 울던 친구가 같은 반이었다.

‘왜 내가 창피하지....’ 다행히 짝꿍은 아니었다. 별이는 그것만으로도 안심했다.

잠시 후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다. 출석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별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이름을 불렸다. 아무도 대답을 안 했다. 별이는 깜짝 놀랐다.

‘어? 내 이름이 아닌데? 내 이름은 왜 안 부르지’

"선생님이 이름 안 부른 사람 있나?"하고 물어보셨다.

별이는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교실이 조용해졌다.

“저는 '주석'이가 아니고 '별'입니다. 이름이 이상해요.”

또박또박 말했다.

선생님은 잠시 놀란 듯 별이를 보더니 부드럽게 웃으셨다. 담임 선생님은 나이가 많으셔서 할아버지 같았다.

“그래? 별이라고? 선생님이 교무실 가서 다시 확인해 볼게. 걱정하지 마.”

선생님이 교과서 뒤에 이름을 적어 주셨는데 거기에도 그 이름이 적혀 있었다.

“네! 선생님, 제 이름은 별입니다!” "책에 다 이름 적었는데, 미안하구나."

별이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애써 속 마음을 숨기느라 힘들었다. '어떻게 학생 이름을 잘 못 적을 수가 있을까? 우리 담임 선생님 할아버지 같아서 내 이름 잘 기억 못 하시나 봐. 아휴, 답답해.' 별이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기 전 엄마가 기다리고 계셨다. 별이는 교과서를 가방 가득 넣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학교에서 자꾸 내 이름을 주석이라고 불러요. 난 별인데....”

엄마는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고 나왔다.

“별아, 걱정하지 마. 이름 다시 고쳐 주신대.”

그 말을 듣자 별이는 속상했던 마음이 풀리고 금세 웃었다.

(아버지께서 면사무소에 가셔서 이름을 확인해 보니 학교에서 부른 이름이 주민등록에 올라와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도 너무 이상해서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호적 담당자가 이름이 독특해서 잘 못 듣고 그렇게 적었다고 해서 바로 정정해 주셨다고 하셨다. 그 후로 담임 선생님은 별이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 주셨다. 우리 어릴 적에는 이름이 잘 못 올라가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교과서를 하나씩 펼쳐 보았다. 아버지와 엄마는 달력을 뒤집어 하얀 면으로 책을 정성껏 싸 주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맨 뒤에 굵은 펜으로 이렇게 적어 주셨다.

00 국민학교

1학년 1반

아버지는 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별이 학교 가면 재미있게 잘 다닐 거야.”

엄마도 환하게 웃었다. 별이도 아버지와 엄마의 그 웃음이 너무 좋아서 별이의 마음도 같이 환해졌다.

지금도 별이는 그날을 떠올리면 입가에 조용히 미소가 번진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