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별이는 새 교과서를 몇 번이나 펼쳐 보았다.
책장 사이로 은은한 잉크 냄새가 났다.
“엄마, 이것 봐요.”
별이가 그림을 가리키자 엄마는 미소로 답했다.
그때, 아버지가 연필을 깎기 시작했다.
"샤악샤악" 나무를 깎는 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나무향이 별이 코 끝으로 스쳤다.
뾰족해진 연필 끝을 바라보며 별이는 괜히 마음까지 반짝이는 기분이 들었다.
연두빛 물방울무늬 필통 안에는 연필 두 자루와 지우개 하나, 그리고 검정, 파랑과 빨강 색연필이 가지런히 놓였다.
“자, 별이 필통이다.”
별이는 한참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가만히 가슴에 꼭 안았다.
다음 날 아침, 별이는 누구보다 먼저 눈을 떴다.
교실에서 필통을 열고 아버지가 깎아 준 연필을 꺼내 들었다.
"사각사각!!" 처음으로 공책에 글자를 적는 순간, 별이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이게 학교구나.’ 첫 수업 시간,
선생님은 칸이 큰 공책에 색연필로 글씨를 쓰라고 하셨다.
연필보다 둔한 느낌이었지만 넓은 칸에 글씨를 채우는 일은 또 다른 재미였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별이는 연필을 한 번 더 만져 보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퇴근하시는 아버지를 기다렸다가 제일 먼저 달려갔다.
“아버지, 오늘 연필 썼어요.” 아버지는 웃었고, 별이는 그 웃음이 더 반가웠다.
그날 밤, 필통을 가방에 넣으며 별이는 생각했다.
'내일은 또 어떤 일들이 시작될까? ' 별이의 학교 생활은 날마다 새롭고 신기했다.
글자를 잘 모르는 친구들 사이에서 별이는 국어책을 또박또박 읽었다. 이미 선행학습을 하고 왔기에 학교 공부는 너무 쉬웠고 재미있었다.
받아쓰기는 집에서 엄마랑 아버지와 할 때보다 더 콩닥콩닥 재미있었다.
받아쓰기는 날마다 100점을 받았고, 마음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아침마다 오빠와 작은언니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하는 길도 즐거웠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이던 어느 날, 기다리던 봄소풍 소식이 들려왔다.
별이는 그동안 오빠와 언니가 소풍 갈 때마다 김밥과 과자를 챙겨 가는 모습을 부러워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별이의 차례가 온 것이었다.
1학년이 된 4월 어느 봄날, 학교에서 봄소풍 이야기가 나왔다.
“봄소풍 장소는 십이폭포!! 우리는 걸어서 간다.”
아이들은 설렜지만 “비가 오면 못 간다”는 말에 별이의 마음도 금세 조용해졌다.
그날 밤, 별이는 두 손을 모았다.
“하나님, 내일 소풍 가는 날입니다. 비가 오지 않게 해 주세요.”
다음 날 아침, 세상은 안개로 가득했지만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별아, 안개 낀 날은 곧 맑아지니 걱정하지 마.”
그 한마디에 별이의 마음도 환해졌다.
운동장에서 왁작지껄 떠들며 웃는 소리를 뒤로하고 학교를 출발한 아이들은 돌다리와 논길, 산길을 지나 끝없이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쏴아아~~~ 쏴아아~!”
산속 깊은 곳에서 시원한 물소리가 터져 나왔다.
말로만 듣던 그 "십이폭포"였다.
점심 전, 장기자랑 시간이 시작되었다.
“별이 나와 볼까?”
갑작스러운 선생님의 말에 별이는 잠시 놀랐지만 이내 용기를 내어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과수원 길!!” 작지만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끝까지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모여있던 학생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잘했어.” 선생님은 연필 한 타스를 건네주셨다.
별이의 얼굴에 기쁨이 환하게 번졌다.
기다리던 점심시간, 엄마가 정성스럽게 싸 주신 김밥을 들고 오빠와 언니와 함께 선생님께도 잘 전해 드렸다.
들기름 향기가 고소하게 퍼졌고, 김밥은 유난히 더 맛있었다.
보물 찾기에서는 작은 종이를 찾아 또 한 번 웃었고, 하나를 더 찾아 친구에게 나누어 주니 마음이 더 따뜻해졌다. 참으로 즐거운 하루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은 달랐다. 발바닥이 따끔거리고,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그때 오빠가 가방을 들어주고, 담임 선생님이 손을 잡아 주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별이는 다시 한 걸음 내디뎠다.
집에 돌아온 별이는 엄마와 할머니께 하루를 쏟아내듯 이야기하다가 이내 깊이 잠들었다. 잠결에 느껴지는 따뜻한 손길.
“우리 별이, 오늘 큰 경험 했구나.”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였다.
별이는 잠결에도 살짝 웃었다.
폭포 소리와 친구들의 웃음소리, 따뜻한 봄바람이 마음속에 조용히 머물렀다.
그날 밤, 별이의 꿈속에서는 맑은 물소리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별이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꿈속에서 다시 한번 속삭였다.
‘또 가고 싶다. 소풍!!’
가을이 오면 다시 떠날 소풍을 기다리며, 별이의 눈은 다음 날도 초롱초롱 빛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학교는 이제 별이에게 행복이 밀려오는 곳으로 매일이 기다려지는 가장 즐거운 이야기 속 세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