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네 집에는 동물들이 참 많았다.
돼지와 소, 개와 강아지, 고양이와 토끼, 닭과 병아리, 오리까지 있었다.
집 안팎은 늘 동물들 소리로 북적였고, 별이네 집은 마치 작은 동물농장 같았다.
별이네는 대가족이었다.
아버지께서 어느 날 아침 출근하시기 전에 별이와 오빠, 언니들을 불러 모아 놓고 할 일을 나누어 주셨다.
누구는 닭 모이를 주고, 누구는 토끼 물을 갈아 주고, 누구는 마당을 살피는 식이었다.
아버지께서 출근하신 뒤에는 엄마가 별이와 오빠, 언니들 곁에서 동물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하나하나 잘 가르쳐 주셨다.
먹이는 어떻게 주는지, 물은 얼마나 자주 갈아 주어야 하는지, 동물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까지 엄마는 늘 다정하게 알려 주셨다.
국민학교 1학년이 된 별이도 이제 제 몫의 일을 맡게 되었다.
오빠와 작은 언니처럼 역할이 생겼다는 것이 별이는 무척 기뻤다.
‘나도 이제 제법 큰 아이가 되었구나.’
별이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뿌듯해했다.
<별이의 단짝, 나비>
별이네 집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이름은 나비였다.
나비는 줄무늬가 있었고 배는 하얀색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나비는 늘 어디선가 쪼르르 달려와 별이 다리에 몸을 비비곤 했다.
꼬리를 살랑이며 별이 곁을 맴도는 모습이 꼭 “기다렸어” 하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별이는 그런 나비가 참 좋았다.
비록 안고 있으면 목 안에서 “그르렁, 그르렁”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 조금 낯설기도 했지만, 별이는 그 소리조차 나비만의 특별한 말처럼 느껴졌다.
나비는 별이와 노는 것도 무척 좋아했다.
공을 굴리면 재빨리 쫓아가 앞발로 툭툭 건드렸고, 겨울이면 실타래를 굴리며 혼자서도 잘 놀았다.
별이는 그런 나비를 바라보는 시간이 참 즐거웠다.
그런데 어느 날, 별이는 나비의 낯선 모습을 처음 보게 되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별이는 나비가 보이지 않자 평소처럼 나비를 찾았다.
“나비야, 나비 어딨니? 별이 왔어. 빨리 나와 봐.”
한참을 불러도 나비가 보이지 않자 별이는 마루 아래를 슬쩍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별이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윽.... 아니, 이게 뭐야? 나비야, 지금 뭐 하는 거야?”
나비 입가에는 붉은 피가 묻어 있었고, 무언가를 뜯어먹고 있었다.
별이는 너무 놀라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엄마! 나비가 입에 피가 묻어 있고 무얼 뜯어먹어요!
엄마.... 이 앙앙....!”
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별아, 무슨 일이야?”
“엄마, 저기 나비가 있잖아. 쥐를 먹나 봐. 내가 봤어. 나비가 먹는데 쥐꼬리를 봤다고.”
엄마는 놀란 별이를 가만히 바라보며 차분히 말씀하셨다.
“별이가 처음 보았구나. 고양이는 쥐를 잡아먹고살아. 처음 봐서 놀랐구나.”
별이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 얼굴로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왜 엄마가 고등어를 줬어요?”
엄마는 살짝 웃으며 대답하셨다.
“응, 쥐를 맨날 잡을 수는 없잖니. 나비도 배가 고프니까 먹을 걸 줘야지. 별이도 생선 먹지? 나비도 자기 먹이를 잡아먹는 거란다. 이상한 게 아니야. 나비는 우리 사람들에게 참 고마운 동물이야. 쥐가 많으면 안 되잖아?”
별이는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하지만 그날의 별이는 마음이 조금 이상했다.
갑자기 나비가 낯설고 무섭게 느껴졌다.
“이긍, 나비 미워....”
그렇게 말했지만, 그것은 잠 깐 뿐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나비와 함께 놀고 웃고, 꼭 끌어안고 예뻐했다.
어린 마음의 놀람도, 서운함도, 두려움도 사랑 앞에서는 오래 머물지 못했던 것이다.
별이네 집 커다란 마당 한쪽에는 토끼집이 있었다.
오랫동안 키운 것은 아니었지만, 열 마리쯤 되는 토끼들이 오손도손 모여 살고 있었다.
토끼는 늘 깨끗한 물을 마셔야 했다.
그래서 물을 갈아 주는 일은 별이와 작은 언니가 맡았다.
먹이를 주는 일은 오빠와 작은 언니, 그리고 별이의 몫이었다.
별이는 토끼를 참 좋아했다.
빨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당근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다가와 한 번 아삭 물어뜯고는 귀를 쫑긋 세운 채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리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토끼는 앞발로 당근을 꼭 붙잡고 앞니로 오물오물 씹어 먹었다.
그때마다 “아삭, 아삭” 하는 소리가 났다.
별이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당근을 다 먹고 난 뒤에는 배를 보이게 편안히 드러누워 눈을 감기도 했고, 자기 털을 혀로 핥으며 가만히 몸단장을 하기도 했다. 별이는 그런 토끼들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두 사랑스러웠다.
가끔은 토끼장 안으로 들어가 아기 토끼를 조심스럽게 안아 보기도 했다.
작고 따뜻한 몸이 품 안에 들어오면 별이의 마음도 함께 포근해졌다.
그런데 어느 무더운 여름날, 이상한 일이 생겼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바람 한 점 없던 날이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만큼 무더운 오후였다.
별이는 토끼들에게 물이라도 갈아 주려고 토끼장으로 갔다. 그런데 토끼들이 보이지 않았다.
늘 여기저기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토끼들이 그날은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별이는 깜짝 놀라 토끼장을 이리저리 살폈다.
“엄마! 토끼가 도망갔나 봐요! 이상해요. 토끼가 한 마리도 없어요!”
별이는 금방 울상이 되어 다급하게 엄마를 불렀다.
“엄마, 빨리 나와 보세요! 울타리도 문도 닫혀 있는데 토끼가 사라졌어요!”
별이의 가슴은 쿵쾅쿵쾅 뛰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도대체 토끼들은 어디로 갔을까?’
‘토끼가 마술을 부린 걸까?’
‘아니면 누가 우리 집에 와서 데리고 간 걸까?’
별이의 머릿속에는 이상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글썽글썽 맺혔다.
그때 엄마가 토끼장을 천천히 둘러보시다가 말씀하셨다.
“별이야, 토끼는 더운 걸 잘 못 참는단다.
저기 땅이 볼록 올라온 데 보이니?”
별이는 엄마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토끼장 바닥에 흙이 살짝 불룩하게 올라온 곳이 몇 군데 보였다.
“응, 엄마. 저기 보여.”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그래, 그 아래에 토끼들이 굴을 파고 들어가 있는 거야.”
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왜? 토끼가 왜 땅속으로 들어간 거야?”
엄마는 별이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설명해 주셨다.
“별아, 땅속은 시원하고 습기가 있거든.
한여름처럼 더울 때는 토끼들이 그렇게 굴을 파고 들어가 쉬는 거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별이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아휴.... 난 토끼들이 다 도망간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데....”
별이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엄마는 놀란 별이를 품에 꼭 안아 주셨다.
“우리 별이, 토끼가 다 없어진 줄 알고 정말 깜짝 놀랐구나?”
엄마 품은 햇볕보다도 더 따뜻하고 포근했다.
별이는 엄마 품에 안긴 채 금세 안심이 되었다.
엄마는 그 모습이 귀여우셨는지 소리 내어 웃으셨다.
“호호호.”
그러자 별이도 엄마를 따라 금세 웃음을 터뜨렸다.
“까르르, 까르르!”
무섭고 놀랐던 마음은 어느새 웃음 속으로 녹아 사라졌다.
그 후로도 토끼들은 여름 내내 땅을 파고 굴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일이 많았다.
별이는 이제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땅이 살짝 불룩하게 올라온 모습을 보면
‘아, 토끼들이 저 안에서 쉬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빙긋 웃곤 했다.
별이는 동물들과 함께 자라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귀엽기만 한 줄 알았던 고양이에게도 자연의 본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작고 여린 토끼들도 더위를 피하는 자기들만의 지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고 무서웠던 순간마다 늘 엄마가 곁에서 차근차근 설명해 주시고 따뜻하게 안아 주셨다는 것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었다.
엄마께서 놀란 별이를 품에 꼭 안아 주셨을 때의 그 포근함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도 잊히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 웃었던 그날의 웃음소리도 별이의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맑게 울리고 있었다.
마당 가득 동물들이 뛰놀던 그 집, 그 안에서 웃고 울고 놀라며 자라던 어린 별이의 마음속에는
작고도 따뜻한 이야기들이 별빛처럼 오래오래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