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끝나고 국민학교 1학년 2학기가 시작되었을 때였다.
별이네 반에는 새 담임 선생님이 오셨다.
나이가 많으셨던 김00 선생님은 퇴직하셨고, 이번에는 젊은 남자 선생님이 오셨다.
별이는 2학기 학교생활도 무척 즐겁게 했다.
학교에 다녀와 책가방을 내려놓으면, 별이의 마음은 금세 집 안팎으로 뛰어다니는 동물들에게로 향하곤 했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도 재미있지만, 집으로 돌아와 동물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별이네 집에는 여러 동물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별이가 유난히 좋아하는 동물이 있다. 바로 오리 가족이다. 흰색 오리지만 아주 흰색이 아닌 약간 누리끼리한 흰색의 오리들이었다.
아빠 오리, 엄마 오리, 그리고 아기 오리 다섯 마리. 오리 가족은 언제 보아도 참 정겨웠다. 별이는 오리를 볼 때마다 신기한 것이 참 많다고 생각했다.
귀엽기도 했지만, 오리들의 행동들이 너무 재미있고 신기할 뿐이었다. 특별히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는 점도 좋았다.
다른 동물들처럼 늘 먹이를 챙기고 물을 갈아 주지 않아도, 오리들은 아침저녁으로 냇가에만 데려다주면 스스로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랐다.
< 뒤뚱뒤뚱, 오리 가족의 행진 >
아침밥을 먹고 나면 별이는 오리들을 냇가로 데려가는 일을 했다. 살살 나무 막대기를 들고 앞에서 걸어가면 대장인 아빠 오리가 먼저 뒤뚱뒤뚱 걸어 나왔다.
아빠 오리가 앞장서면 그 바로 뒤로 엄마 오리가 따라나섰다. 그리고 그 뒤를 첫째 오리, 둘째 오리, 셋째 오리, 넷째 오리, 막내 오리가 졸졸 따라왔다.
“꽥꽥, 꽥!”
오리들의 목소리는 예쁜 노랫소리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별이에게는 그 소리마저 정겹게 들렸다.
가끔은 시끄럽게 "꽥꽤괙"거리기도 했고, 또 가끔은 조용히 낮은 목소리로 “꽥, 꽥” 하고 말하듯 울기도 했다.
나란히 줄지어 걸어 나가는 오리 가족의 모습은 너무나 귀여웠다.
특히 맨 뒤에서 짧은 다리로 열심히 따라오는 막내 오리는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별이는 그 모습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따라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별이도 뒤뚱뒤뚱 오리처럼 걷는 흉내를 내며 깔깔 웃곤 했다.
정말 오리들은 걷는 모습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웃게 만들었다.
대장 오리를 바라보며 별이는 맨 앞에서 씩씩하게 걸어가는 아빠 오리를 볼 때마다 괜히 마음이 든든해졌다.
“역시 대장 오리는 달라. 너무 멋져!”
별이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아빠 오리는 늘 맨 앞에서 길을 이끌었다.
엄마 오리는 그 뒤를 따라가면서도 가끔씩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 아기 오리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살피는 것 같았다.
별이는 그 모습을 보며 이상하게도 아버지와 엄마가 떠오르곤 했다.
집안에서든, 바깥일에서든 늘 앞장서서 가족을 이끄시는 아버지 모습과 닮아 보였기 때문이다. 또 가족을 두루두루 살피시는 엄마의 모습이 꼭 엄마 오리 모습 같았다.
별이는 어린 마음에도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어디서든 아빠가 대장처럼 잘 이끌어 주면 가족들은 참 행복하겠구나.’
'가족을 살피는 엄마가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괜찮을 거야. 엄마는 해결사니까.'
그러면서 별이 마음속 어딘가에는 또 하나의 생각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나도 나중에 아빠 오리처럼, 우리 아버지처럼 무슨 일이든 앞장서서 척척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또 엄마 오리처럼 가족을 사랑으로 잘 보살펴야지!!'
그 생각은 별이도 모르는 사이, 아주 조금씩 별이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아갔다.
< 냇가에서 하루를 보내는 오리들 >
별이네 집에서 골목으로 조금만 나가면 바로 작은 다리가 있다.
밖으로 나가거나 학교에 가려면 그 다리를 꼭 건너야 했다.
다리 아래쪽에는 동네 사람들이 빨래를 하던 넓은 빨래터가 있고, 냇가에는 늘 맑은 물이 졸졸 흘렀다.
그 물은 동네 맨 꼭대기 저수지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이었다. 저수지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별이는 그곳에 언젠가는 가보고 싶은 곳이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는 냇가로 내려가는 작은 계단이 하나 있다.
조금 가파르고 좁은 계단이었지만, 오리 가족은 그 길도 익숙하다는 듯 잘 내려갔다.
대장인 아빠 오리가 먼저 뒤뚱뒤뚱 계단을 내려가면 그 뒤를 엄마 오리와 아기 오리들이 졸졸 따라 내려갔다. 그리고 나면 오리 가족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오리들은 냇물 위를 둥둥 떠다니며 하루 종일 놀았다.
냇가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도 하고, 물 위를 미끄러지듯 헤엄치기도 했다.
별이네 동네 사람들은 동네를 세 군데로 나누어 불렀다.
처음 시작되는 곳은 아랫동네, 별이네 집이 있는 가운데는 가운데 동네, 맨 위쪽은 윗동네라고 불렀다.
오리들은 그 냇가를 따라 이리저리 윗동네, 가운데 동네, 아랫동네로 오가며 놀았다.
별이는 가끔 냇가에 쪼그리고 앉아 오리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곤 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오리들은 참 신기한 동물이다.
어느 날이었다.
별이는 물 위에 둥둥 떠 있던 오리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물 위에서 한가롭게 노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오리는 자꾸 고개를 앞으로 쭉 내밀고 물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꼭 무언가를 찾고 있는 사람처럼 아주 진지한 얼굴이었다.
냇물은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맑은 물속에서는 작은 물고기들이 쏙쏙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푹!”
오리가 갑자기 부리를 물속으로 깊이 넣었다.
별이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시 뒤, 오리의 부리 끝에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잡혀 있는 것이 보였다.
물고기는 꼬리를 파닥파닥 흔들며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었다.
별이는 너무 신기해서 숨도 크게 쉬지 못한 채 바라보았다.
오리는 잡은 물고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부리를 몇 번 움직이더니, 이내 꿀꺽 삼켜 버렸다. 그것을 바라보던 별이도 동시에 함께 "꿀꺽"하고 침을 크게 삼켰다.
방금 전까지는 그저 귀엽고 둥실둥실 떠다니던 오리였는데, 그 순간만큼은 아주 멋진 사냥꾼처럼 보였다.
“와~~~ 오리도 이렇게 물고기를 잡아먹는구나!”
별이는 속으로 놀라며 생각했다.
그냥 귀엽기만 한 줄 알았던 오리가 자기 힘으로 먹이를 찾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괜히 대단하고 멋져 보였다.
별이는 오리가 헤엄칠 때 발을 얼마나 열심히 움직이는 지도 유심히 보았다.
‘저렇게 계속 헤엄치면 배고프겠다.’
하고 생각하면, 오리는 정말로 물고기를 잡아먹고 다시 또 유유히 헤엄을 쳤다.
오리들은 물 위에서 노는 것만으로도 참 바빠 보였다.
똑똑한 것 같다가도, 조금은 답답한 오리들 신기한 것은, 해 질 무렵이 되면 오리들이 처음 내려갔던 바로 그 냇가 근처에서 다시 놀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시간을 아는 것처럼 저녁이 되면 늘 별이네 집 앞 냇가 쪽으로 돌아와 있다.
그런데도 한 가지는 늘 이상했다.
오리들은 집으로 알아서 돌아오지는 못했다.
별이네 집에서 키우는 개 바둑이(갈색 점이 있던 발바리)는 집 밖으로 나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도 시간이 되면 알아서 집으로 들어왔다.
목줄을 하지 않아도, 바둑이는 별이네 집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런데 오리들은 달랐다.
맨날 같은 길로 냇가를 나갔다가, 같은 길로 돌아와도 어째서인지 냇가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오지 않았고, 스스로 대문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 작은 언니나 별이가 다시 오리들을 데리러 나가야 했다.
오리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일은 나중에 별이가 혼자 맡는 날도 많아졌다.
그럴 때면 별이는 오리들 뒤를 따라오며 혼잣말을 하곤 했다.
“아니, 자기 집도 못 찾네?”
“어제도 그제도 데리고 왔는데, 왜 아직도 몰라? 바보 아냐?”
조금 답답하기도 하고, 조금 웃기기도 했다.
아침저녁으로 매일 해야 하는 일이니 가끔은 귀찮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 엄마는 늘 웃으며 말씀하셨다.
“우리 별이는 오리 귀엽다고 너무 좋아하잖아? 그럼 얼른 집으로 데리고 와야지.”
그러면 별이는 괜히 웃음이 나면서도 다시 오리들 뒤를 졸졸 따라 걸었다.
귀엽다고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커서, 결국 늘 오리들을 정성껏 데리고 왔다.
< 별이가 사랑한 오리들 >
별이는 오리가 참 좋았다.
냇가에서 알아서 잘 놀아서 좋았고,
토끼처럼 물을 따로 갈아 주지 않아도 되고, 먹이를 따로 챙겨 주지 않아도 스스로 잘 살아가는 모습이 좋았다.
뒤뚱뒤뚱 걷는 모습도 좋았고,
“꽥꽥 꽥!” 하고 울어대는 소리도 이상하게 정겨웠다.
아주 가끔은 아빠 오리가 낮게 날아오르기도 했다.
멀리 높이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물 위를 스치듯 낮게 날아가는 그 모습은 정말 멋있다. 날아가 듯 날다가 차르르 물을 스치며 내려오는 모습은 너무 멋졌다.
그럴 때면 별이는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역시 우리 집 오리는 멋져!”
마치 자랑스러운 친구를 바라보는 것처럼 별이는 흐뭇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오리들은 별이 마음속에 아주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별이는 가끔 꿈속에서도 오리 가족을 만났다.
꿈속에서 별이는 오리들과 함께 냇가를 헤엄치기도 하고, 아빠 오리처럼 날개가 생겨 냇가 위를 “슈웅~~~!!” 하고 낮게 날아다니기도 했다.
양쪽 날개를 퍼덕이며 낮게 날다가 조금씩 위로 올라가는 그 순간의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하고 즐거워서, 계속 날고만 싶었다.
오리들과 신나게 노는 꿈을 꾸고 나면, 이상하게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고 좋은 일들만 생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별이는 오리들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별이는 매일 오리들을 데리고 냇가로 나갔다.
냇가에서 오리들이 헤엄치고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 그 시간은, 별이에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저 즐겁고, 마냥 좋기만 한 시간이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냇가에 나가지 않았다.
눈이 많이 내리는 아주 추운 겨울에도 오리들은 오리 둥지에서 쉬었다.
하지만 해님이 비치는 겨울날에는, 오리들은 얼음이 깨진 냇가에서도 추운 줄 모르고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다.
별이는 너무 추워서 오래 바라보지는 못했다.
겨울에는 냇가에 데려다주고 얼른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저녁 무렵에는 엄마가 오리들을 데리고 오기도 했고, 일하시는 삼촌들이 대신 데리고 들어오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별이는 왠지 조금 오리들에게 미안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오리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심하곤 했다.
그리고 별이는 2학년이 되었다.
계절은 그렇게 조금씩 흘러갔다.
찬바람이 불고, 겨울이 지나고, 다시 따스한 햇살이 마당을 비추는 봄이 오면 별이는 또다시 오리 가족과 함께 냇가로 걸어 나갈 것이다.
아빠 오리가 앞장서고, 엄마 오리가 그 뒤를 따르고, 아기 오리들이 졸졸 뒤를 따라가고,
그 뒤를 별이와 동생 둘이 뒤뚱뒤뚱 따라 걸을 것이다.
“꽥꽥 꽥!”
오리 소리를 흉내 내며 깔깔 웃던 그 아이는 그렇게 하루하루 자라났다.
그리고 어느새 별이는 2학년이 되었다.
하지만 별이의 마음속에는 냇가를 따라 걸어가던 오리 가족의 뒤뚱뒤뚱한 걸음과, 반짝이는 물 위를 헤엄치던 그 평화로운 풍경이 오래오래 따뜻하게 남아 있다.
어쩌면 별이의 어린 시절은 바로 그런 풍경 속에서 조용히, 다정하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