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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빈 Jan 22. 2022

침묵은 환대다

편함이 만드는 불편함, 불편함이 만드는 편함.

대구의 한 브랜드 신발 매장은 매번 방문 할 때마다 나한테 늘 같은 인상을 준다. 일행과 함께 입구에 들어설 때마다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크게 인사하며, 어떤 신발을 찾는지, 누가 신는지, 꼬치꼬치 캐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잠시 둘러보러 왔어요"라고 멋쩍은 대답을 해야만 한다. 물론 성향에 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잠시 둘러보러 왔다고 얘기를 꺼냈을 때는, 둘러볼 시간인 "잠시"라는 시간을 할 당 받는 게 잠재적 소비자의 권리 중 하나라고 사료한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눈길을 주지도 않은 제품을 매만지며 제품의 기능적인 요소와 미적인 요소에 대해 브리핑을 하기 시작한다. 직원은 달라져도 매번 내게 하는 접객 방식은 같았다. 아마 매장 직원 교육 방침이지 않나 싶다.



사실 이런 환대가 불편함을 주는 경우는 종종 있다. 내 친구의 경우는, 자주 가는 국밥 가게에서 서비스로 음료수를 주자 다시는 그 가게를 가지 않는다고 한다. 본인은 그냥 단순하게 매장에 방문하는 손님 중 일개가 되고 싶은데, 그 가게에서는 내 친구에게 특별함이라는 칭호를 부여하는 것이다.



7년 전, 지금은 유행이 훨씬 지난 비엔나 커피가 대구에 막 생겼을 무렵이다. 지인을 통해 비엔나 커피를 처음 접했는데, 놀라운건 비엔나커피의 맛보다도 매장주인의 태도였다. 주문과 계산이라는 커뮤니케이션이 무색할 만큼, 그는 침묵을 유지했고 제스쳐와 고개가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매장은 인산인해였고, 늘 대기열을 유지했으며, 아는사람만 아는 커피 맛집이였다.




이와 같은 경우는 생각보다 주위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나는 신발 매장과 국밥 가게를 반면교사 삼아 지나친 환대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음을 감지했다. 최근 1인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많아진 혼밥러들은 식당이라는 퍼블릭 한 공간 내에서도 개인만의 사적 공간을 할당받기를 원한다. 내가 좋아하는 건축가인 유현준 교수의 저서에 따르면, 카페에서 구석을 선호하는 이유는 본인이 감시받지 않으면 타인을 감시할 수 있고, 개인적인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와 상통하는 이유라 고추했다. 그들은 그렇게 할당받은 개인의 공간 속에서 유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식사를 보면서 영상을 먹는다.



나는 비엔나 커피숍만큼은 시니컬하지는 않지만, 적당함이라는 주관적 기준을 토대로 때때로 침묵을 유지하며 고객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주 4일 오던 중학생 혼밥 손님이 있었는데, 매일 같은 자리에서 자습서 펴놓고 밥 먹는 모습이 짠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해서 어느 날 참다 참다 못참아서 말없이 음료수를 건넸는데, 그 이튿날, 그 학생의 엄마가 매장을 방문해 내게 커피로 감사를 표했다. 이유인즉슨 그 학생이 내성적이라 누가 말 거는 것을 두려워해 늘 혼자 밥을 먹는데, 방해 안 받고 서비스를 줬다면서 엄마에게 자랑을 한 것이었다. 나는 침묵의 환대 덕분에 기쁨으로 목을 축일 수 있었다.


환대의 정의는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함"이다. 환호와 큰 인사만이 정의 속 반가움의 표현은 아닐 수 도 있다. 어쩌면 편한 게 불편한 것이고, 불편한 것이 편한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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