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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빈 Jan 16. 2022

뭐 먹을래?

선택과 책임에 관하여

현재 운영 중인 매장은 분식 캐주얼 다이닝이라는 취지에 맞게 젊은 손님들이 주를 이룬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메뉴 결정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리를 안내받은 후 기업 분석하는 증권 트레이더처럼 메뉴판을 뚫어지게 보는데, 기다림에 지친 서버가 다른 테이블로 갈 성싶을 때 불러 주문을 진행한다. 

우리가 메뉴 결정할 때, 왜 시간이 지체되는지 스스로 고민했다. 사회학자나 심리학자가 아니라 명료한 분석이 쉽지 않았지만,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영세 자영업자는 3가지 요인으로 분석해 보았다.


장황한 메뉴판



스마트폰


메뉴 결정으로 인해 생기는 책임을 회피




첫 번째의 경우엔 전적으로 매장을 운영하는 오너 책임이다. 대학시절 가독성 좋은 메뉴판과 그렇지 못한 메뉴판에 대해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단지 들은 기억만 있다. 대학 당시 머릿속 대부분은 점심 메뉴나 데이트 생각만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한두 장짜리 메뉴판에도 가독성은 존재한다. 그래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서 만족도를 파악하는 편이다. 두 번째는 스마트폰이다. 매장에 들어선 손님들은 갤러리처럼 매장 구석구석을 찍는데, 그럴 때마다 위생장갑을 벗고 홀로 나가 도슨트가 되곤 한다. 알몸을 보여주는 것만큼 부끄럽지만 애써 태연한 척 티를 감추느라 얼굴은 꽤나 복합적인 표정을 띠곤 한다.


마지막 이유는 메뉴 결정으로 인해 생기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책임은 결정을 잇따른다. 즉슨 메뉴 결정에 있어서 메뉴를 결정하는 사람에게 책임이 뒤따른다는 말이다. 특히 연인이나 동성친구 간 수평적 관계에서 많이 보이는데, 본능적으로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폭탄 돌리기 신경전을 펼친다. 여기서 배려라는 페르소나를 쓰게 된다면 완벽한 채비를 한 셈이다.


"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일까?"


라는 내적 물음으로 고민을 이어나갔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서버나 홀 매니저를 통해 추천 메뉴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대부분 매장 방문이 처음이라 메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메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의 선택은 리스키 하기 때문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 같이 먹는 상대가 있다면, 상대의 추억까지 내가 책임을 짊어져야 하므로 부담이 된다. 결국 실패에 대한 두려움인 셈이다.




우리가 성공의 어머니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뭘까, 현재 대한민국은 지구에서 유일하게 100 만에 피지배 국가에서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실수와 실패는 책임과 처벌"이라는 성장통을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 최근에는 실패 박람회와 같이 실패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크고 작은 행사들이 열리는데, 차차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점의 경제 코너나 자기 계발 코너에서 저명한 기업인들이나 경제학자가    아무 책을 꺼내보아도 공통적으로 적혀있는 내용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다.


불과 얼마 전, 어느 커플 손님이 왔다. 여자 친구가 화장실 간 사이 남자 친구가 주문을 했는데, 여자 친구가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투덜거렸고, 남자 친구가 억울함을 호소하자 분위기가 냉랭해 보였다. 나는 선택과 책임의 문제로 다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 여자 친구가 원하던 메뉴를 만들어 서비스로 냈다. 

사르트르가 설파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하지만 매 선택마다 책임과 실패에 대한 염려를 가지고 인식한다면, 눈치 보는 사회구조는 더욱 견고해 갈 것이다. "비에 젖은 자는 물에 젖지 않는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실패를 호방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의 어머니와 친교 하면 성공과도 친해지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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