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사서 고생_고구마순

정신수양 마음수련

by 늘품이

남편은 술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바깥 약속이 별로 없는 편이다. 퇴근하면 필사코 집으로 바로 온다. 고로 항상 저녁도 집에서 먹는다.


"밑반찬 잘 먹지도 않는데 이젠 진짜 안 할까 봐. 진짜 늙었나, 만사가 너무 피곤하네."


"그래, 힘든데 하지 마. 대충 먹지 머."


대외적으로 보면 가정적이고 다정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 저녁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선 오히려 '대충' 또는' 아무거나'라고 하는 것이 더 싫다. 메뉴까지 내가 결정을 해야 하니 말이다.


남편은 원래 요구하는 것 없이 주면 주는 대로 잘 먹는 편이다. 물론 입에 안 맞으면 새 모이처럼 먹고, 1시간도 되지 않아 야식 시켜 먹자며 헤헤 웃는다.


'저런 써글!"


요구하는 게 없어서인지 뭔가를 애써서 해주어도 고마워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도대체 무얼 위해 이렇게 늘 힘들게 살림을 하는 것일까! 도대체 왜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퇴근 후 집 근처 시장을 들른다. 고민이 무색하게 이 피곤한 몸은 시장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고구마순이 나오기 시작하는구나! 아니야, 절대 사지 말자. 손에 물들고....... 반찬가게 가서 만들어진 걸로 사자!.'


샀다.

밭에서 막 따온 듯한 고구마순 한 단!

반찬가게의 한 팩 가격으로 고구마순 한 단을 살 수 있으니, 그 가격을 비교할 때에는 나의 노동력과 시간의 가치를 잠시 망각하게 다.


집에 와서야 후회한다. 손에 물들고 손톱은 까매지고 목덜미 아프고 팔 아프고....... 매번 후회하면서 그 찰나의 망각에 매번 같은 고생을 산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 위에 펼쳐 놓는다. 이왕 샀으니 어쩌랴. 천천히 쉬엄쉬엄 하면 된다고 나를 달랜다.


"정신수양이 따로 있나, 하나하나 까면서 마음도 수련하고 머리도 좀 쉬고, 이 또한 수행일지니, 수행이다. 고로 난 또 성장한다........ 에휴!"


헛소리도 참 고급지게 한다. 여하튼!


티브이 보면서 천천히 껍질을 벗기고 있다 보면, 어느덧 작은 아이가 옆으로 다가와 자연스럽게 고구마순을 만지작 거린다. 작년에 몇 번 해봤던 터라 알아본 듯했다. 13살 아이가 12살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아, 옛날에 엄마랑 정말 많이 깠는데. 어떻게 하는 거더라?"


같이 앉아 도란도란 고구마순 껍질을 벗기다 보니 불현듯 나의 어린 시절에 엄마가 만들어 주신 고구마줄기 목걸이가 생각났다.

기억 그대로 작은 아이에게 만들어 걸어 주었더니 재밌어했다.



그저 평범하기만 했던 오래전 일상의 한 자락이 선명하게 튀어 오른다. 잠시 타임슬립 하는 듯했다.


그 시절 엄마와 나의 정서가 40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그 간극이 무색하게 나와 나의 아이에게 포근하게 전이되었다.


행복했다. 말로 하기 아까울 정도로 행복했다.


예상치와는 다른 것에서 마음의 수양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양의 적!




어릴 적 엄마는 늘 일을 다니셨다. 가난했고, 아이들은 넷이나 됐으니 닥치는 대로 했으리라! 일을 안 나가는 날에도 쉬지 못하셨다.

집에 있는 날에는 정아 언니네 채소가게에서 야채를 다거나 기타 가게 일을 도와주시곤 하셨다. 그리고 해 질 녘에 집에 오실 때는 야채 한가득을 가고 오다. 종일 야채를 다듬고, 또 그중에서도 처진 것들을 챙겨 오시는 것이다.

신문지를 펼쳐놓고 엄지와 약지의 지문이 거멓다 못해 반질거릴 때까지 쪽파도 까고, 마늘도 까고, 고구마순도 까고 열무 뿌리를 다듬었다.


'엄마는 맨날 힘들다고 하면서 누가 좋아한다고 맨날 풀떼기 반찬을 저리 할까...... 그럴 시간에 그냥 쉬지!'


그러다가도 슬며시 나는 엄마 옆에 가서 같이 쪽파를 깐다. 첨엔 손 더럽다고 하지 말라 하시던 엄마도, 조 막 한 손으로 꼼지락 거리던 내 손이 귀여워 '요렇게 조렇게' 가르쳐 주신다. 그렇게 엄마를 흉내 내어 보지만 제대로 다듬은 것이 하나라도 있었을까.


어린 시절의 난 그때 왜 그랬을까?

재밌어 보였을까? 호기심인가? 아니면 엄마를 도와주고 싶었을까? 칭찬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흠. 아마도 짐작건대 그냥 옆에 엄마 있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엄마가 지금 고구마순 줄기의 껍질을 벗기고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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