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
출산 후 육아로 인해 동네 지박령으로 살다가 12년 만에 다시 사회로 나왔다.
나는 경제 개념이 없었고, 남편은 책임감이 없었다.
남편은 개인 사업을 했었으므로 소득이 들쑥날쑥했다.
100만 원의 생활비가 필요하다고 할지라도 본인이 50만 원을 벌었으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지,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절대 다른 노력을 더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100만 원 이상을 버는 달이 많으냐고 물어본다면 네버! 네버! 그냥 평균 소득이 50만 원 정도라고 하겠다.
그럼 소득이 50만 원이니 최대한 아끼고 아껴서 50만 원으로 생활을 했느냐,라고 하면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일단 100만 원을 생활비로 사용했다. 중간중간 양가 도움을 받긴 했지만 보증금은 점점 줄어들었다.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투잡을 하며 몸을 혹사할 수는 없다는 남편이었고, 애초에 남편의 수입으로 생활비를 설계하는 내가 아니었다. 너무 한심해 보일 것이라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이상을 생각하지 않았다.
남편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으며, 내가 당장 나가서 돈을 벌어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 이것을 타파하기 위해 고민을 하다 보면 결국 싸움으로 끝이었다. 물론 해결 방안에 근접도 하지 못하고 감정만 으그러질 뿐이었다. 그 뒤로는 그저 싸움을 피하기 위해 애썼다.
싸움은 양육에 크나큰 문제가 생겼다. 싸움으로 인해 내 감정이 으그러지면, 너무 힘들었다. 그 상태로 아무렇지 않게 아이를 대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참기 시작했다. 그나마 참는 게 제일 쉬웠다. 그래서 난 친구들 사이에서 인내의 아이콘으로 거듭나게 된다.
어찌 되었건, 둘 다 모질라서 그런지 지금껏 이혼은 안 하고 함께 살고 있다. (물론 이 표현은 나름대로 내가 정상적인 컨디션일 때 책임을 분배하려는 겸손의 표현이지 절대 사실은 아니다)
아이들이 저학년을 마치고 막내가 4학년이 들어갈 무렵,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다. 쓸 수 있는 돈은 다 쓰고 땅겨 쓸 수 있는 돈도 다 쓴 듯했다.
난....... 최강거지가 되었다.
삶의 질에서야 큰 차이가 있었겠냐만은, 거주 공간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다들 집을 늘려 가는 동안 나는 전세 보증금마저 줄여 이사를 다녔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간혹, 내가 만약 직장을 계속 다녔더라면, 남편을 들들 볶아 한 푼이라도 더 벌게 했더라면, 이란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는 이유는 아이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낸 대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한정된 시간을 그렇게 아늑하게 보냈는데 무엇인들 후회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제사 취직을 할 수 있으려나:"
아이들도 이제는 손이 가지 않을 만큼 키워 놨으니 돈을 벌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젠 정말 벌어야 했다. 마음먹고 이력서를 제출하기까지도 여러 달이 걸렸다. 마음은 먹었지만, 자신 없었다. 과연 취직을 할 수 있을지,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 예전처럼 사무직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고객센터라도 가야지."
주변의 우려와 걱정을 헤치고 일단 여기저기에 이력서를 날려 보았다. 물론, 예상대로 답변은 없었다. 일반 회사의 인바운드 관련 업무도, 실제로 상담업무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 이상의 경력단절과 초등생의 아이들, 반백살을 향하는 나이. 거기에 스펙은커녕, 흔하디 흔한 일반사무직의 경력뿐인 아줌마를 채용 할리가 만무했다.
'내가 고용주라고 해도 안 뽑지. 굳이...... 왜.......'
그나마 무조건적으로 기회를 제공해 주는 곳은 금융계 고객센터였다. 카드사나 은행은 언제나 열려있었다.
처음 간 곳은 **카드 고객센터. 건물이 으리으리했으며 사무실도 엄청 컸다. 티브이에서 보던 그런 분위기의 고객센터!
면접 형식이긴 했지만, 교육담당자가 몇 가지 형식적인 질문 후 어떻게 교육이 이루어지고, 투입되면 어떻게 일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 안내해 주었다. 나만 오케이 한다면 바로 출근해도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보여준 교육자료의 양은 어마무시했다.
'저 많은 양을 숙지해야 한다고? 헐!"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었다. 진상 고객들의 대응에 관한 스트레스에 대한 멘털만 단속하고 왔는데, 저 많은 양을 배워야 한다니....... 자신이 없었다.
아니 어이가 없었다. 그 돈 받고....... 쩝!
고객센터는 나의 최후의 보루였지만 가지 않기로 했다. 역시 포기는 신속했다.
쉼 없이 이력서를 날렸으나, 영 결과가 좋지 못하여 정마롤 몸을 쓰는 일을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즈음 다행히 취직이 되었다. 아웃소싱을 통한 파견직이었다, 근무지는 제법 규모가 있는 중견업체였으며, 내가 맡은 업무는 개인사업자 세무 관련 플랫폼에 관한 문의와 안내에 관한 업무였다. 전문 고객센터가 아니었기 때문에 전화를 받는 말투나 형식도 자유로웠다.
그렇게 오랜 경력 단절이 중단되었다.
물론 다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차차 그 이야기들은 나올 것이며, 현재는 파견직 2년을 마치고 본 회사의 계약직으로 전환이 되었다. 운이 좋았다.
내세울 것 없다고 생각한 지난날의 세무 업무 관련 경력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공백의 기간이 길었던 만큼 업무적인 면이나, 사람들과의 관계, 변한 회사 안의 분위기들 등. 시행착오도 많았으며, 적응하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추후 많은 부분에서 얘기하게 될 것 같다.
지금은 내 자리를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 같다. 없으면 안 되는 인재 까지는 아니지만 그만둔다고 했을 때 팀장이 골치 꽤나 아플 정도의 자리는 확보했다.
실무적인 지식 면에선 부서 팀장 보다도 우월한 면도 있고, 실제로 개인사업체를 관리했었고, 세무 관련 업무를 주로 했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이 아무리 고학력의 정규직이든 뭐든 간에 주눅 들지 않을 수 있다. (처음엔 개발자들이라고 해서, 많이 초라해했었다)
운이 좋았다.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던 것도, 지금의 이 회사도.
회사라는 곳은 매일 행복을 하나씩 주는데, 그것은 바로 퇴근이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 더군다나 내일은 금요일이니깐!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본 인스타그램 한 장면이 뇌리에 박혔다. CEO인가? 임원인가? 여하튼 풀 내용은 모르겠고, 껄껄 웃으면서 뒷담 하듯이 이야기하는 짤이었다.
" 근데 참 곤란한 게, 그런 애들이 꼭 회사에서 지가 일을 잘하는 줄 안다는 게 문제야. 껄껄껄."
흠.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