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언니가 일찍 결혼하여 나는 젊은 이모였다.
"얼마 전에 세희가 그런 말을 하더라. 막내 이모가 너무 힘들 것 같다고."
"왜? 너무 가난해서?"
"아니, 어릴 때 본 이모는 화려했대. 옷도 많고 구두도 많고, 엄청 신어봤다던데! 화장품도 얻어가고 그랬다대."
세희는 나와 스무 살 차이 나는 둘째 조카이다. 나의 눈화장을 참 좋아했었다.
"주말에 집에 있던 적이 없는 이모였는데, 지금은 뭐 애들한테 늘 묶여 있으니깐. 그리고 널 위해서 돈 쓰는 걸 못 봤다고. "
절대 그러지 말자 했지만, 누구보다 격렬하게 변했다. 내 주변을 보아도 나처럼 출산 전후가 심하게 다른 사람은 못 본 것 같다.
농담처럼 두 아들을 얻고 난 모든 걸 잃었다고 말하곤 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선 모든 것이 초월 상태이다. 그래서 새삼스러운 감정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작은 아이였던 어린 조카의 눈에 기억되어 있는 내 모습이 그저 반가울 뿐이었다.
같이 사는 사람마저 지금 내 모습이, 원래의 나라고 왜곡된 기억을 갖고 사는데, 조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나의 모습. 그리고 지금을 바라보는 내 조카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재밌고 신기하였다.
이런 게 나이 들어가는구나.
영원히 찬란할 줄 알았던 내 자리엔 어렸던 아이들이 성장하여 메꾸고, 나는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세대로 옮겨가는 단계인가 보다.
'아 그래서 그때 그들이 그런 말들을....... '
전쟁을 치르다시피 반대하는 결혼을 했던 큰 언니.
23살의 나이에 7남매 장남과 결혼을 하였다.
"왜? 아! 왜?"
그 찬란한 나이에 엄마가 되었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실시간으로 언니가 변해가는 모습을 봤다.
우리 큰 언니는 뭐든 잘했다. 좀 더 넉넉한 집안에 태어났으면 좀 더 빛났을 텐데........ 그림도 잘 그리고 글씨마저 얼마나 예쁘게 썼던지!
그런 큰언니가 아이를 등에 업으면서 늘 흰 티에 편한 바지만 입었다. 화장도 하지 않았고 머리는 늘 커트만 했다.
형부가 미운 데에는 굳이 이유가 필요 없었다. 언니의 선택인데 어쩌고 저쩌고 그 따위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늘 아끼고 고생스러워 보였다. 빛을 잃어가는 모습을 실시간을 봤다. 하필 그중에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난 우리 태훈이만 업고 나가면 목이 늘어난 티를 입어도 창피하지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