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당첨

by 민정

봄빛이 솜사탕같이 포근하게 느껴지던 오후가 가고 저녁이다.


딸깍. 형광등조명 버튼을 끈다. 딸깍. 노란 조명등을 돌려 켠다.

거실 한 구석 조명 아래에는 조명만큼이나 따뜻한 목재로 만들어진 Muskoka의자가 있다, 나를 향해 있는 의자를 보며 생각한다.


“아 넌 보기만 해도 너무 예뻐. 하지만 널 이렇게 바라만 봐야 하다니 어쩌면 좋니? 너는 내 엉덩이와 허리를 너무 아프게 해. 내가 너와 거리를 둔다고 해서 너를 아끼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아 줘.”


그리고 앉아 있던 게이밍의자를 한껏 뒤로 젖혀 눕는다. 이렇게 나의 책 읽기 자세는 준비된다.

요즘 부쩍 글쓰기에 관심이 생긴 나는 김신회 작가의 ‘심심과 열심’을 펼쳐든다. 책을 펼치자마자 어김없이 카톡 카톡“ 문자가 온다.


“How was your day babe? “ 다니엘이다.

우리는 서로의 하루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제주도에서 함께 세미나를 하는 선생님들과 계속 해산물을 먹고 있는데, 오늘 저녁은 배가 좀 이상한 것 같다는 다니엘에게 나는 손 씻고 밥 먹었어? 하고 쏘아붙인다. 손 씻기에 대한 나의 강박을 아는 다니엘은 이제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다.

”응 씻었지 “

흙파서 개미 채집하다가 대충 입고 있는 옷에 흙 털고 과자 먹던 시골어린이는, 손 씻기 강박을 가진 어른이 되어버렸다.

아프다는데 쏘아붙여 말해 미안한 나는 편의점에 가서 살 수 있는 약을 사진으로 캡처해 보내준다.

한국사람은 잘 아는 마데카솔, 훼스탈, 활명수 이런 약들을 다니엘은 잘 모를 테니까.

“훼스탈 사 먹어, 많이 아파? “

다행히 배가 많이 아프지는 않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우리의 대화는 나의 꿈얘기로 흐른다.


“사실은 말이야. 오늘 잠깐 낮잠을 잤거든. 낮잠을 자다가 꿈을 꿨는데 말이야


내가 꿈에서 임신을 한 거야. 근데 임신했는지 방금 알았는데, 내 배를 보니까 이미 만삭인 거 있지? 애기가 배안에서 발로 내 배를 꾹꾹 차는 거야. 어이없지 않아?

다니엘은 무서웠겠다라고 답장하며 나를 안심시킨다.

그런 그에게 나는 또 ”응, 완전. 암튼 난 조만간 애 가질 생각 없어.” 하고 선을 긋는다.

다니엘 :“맞아 당분간 애는 없지”

그리곤 둘 다 잠시 침묵한다.

나는 혼자 생각을 한다.

”맞아.. 아기를 키우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우린 지금 애를 키울만한 여건도 능력도 안 되는 것 같아. 아마 아기를 가질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충분한 시기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몰라. “

갑자기 분위기가 가라앉자 나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꿈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런데 말이야. 꿈내용이 궁금한 거야. 그래서 내가 네이버에 물어봤거든. 찾아보니까, 봐봐. 내 꿈이 이렇다는 거야.

“내가 임신한 꿈은 긍정적인 꿈 해몽으로 풀이됩니다. 현재 자신이 목표로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을 암시하는데요. 임신 개월 수에 따라 배가 불러오는데, 만삭에 가까울수록 더욱 좋은 성과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목표로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정말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겠네요.”

다니엘이 활짝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답변한다. “ 정말 좋은 꿈이네 ”


나도 들떠서 “그렇지? 나 아무래도 당장 나가서 로또 하나 사야 할 것 같아. 잠깐만 나 지금 나가서 로또 좀 사 올게.


그리고는 크록스를 끌고 집 앞 편의점으로 간다. 집 앞 편의점에서는 로또를 판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갑자기 이유 없이 마음이 다급해진다.


‘어 안되는데. 나 로또 사야 하는데, 나 로또 1등 되는 꿈 꿨는데, 오늘 안 사면 안 되는데”

그리고 네이버로 집 주위 로또판매점을 검색한다.

다행히 내가 있는 근방 150m 근처에 로또 판매점이 하나 뜬다. 영업종료 8:30 앗! 시계를 보니 8:30이다.


크록스 슬리퍼를 끌며 뛴다. 아 문 닫으면 안 되는데, 나 로또 사야 하는데.

숨이 가빠진다.

크록스가 벗겨질 만큼 열심히 뛰어 도착한 가게는 아직 불이 켜져 있다.

나는 가쁜 숨을 고르고 아무렇지 않은 척 가게 안을 들어간다. 그냥 길 가다 잠시 들렸다는 듯이 차분하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사장님, 저 로또 10000원어치 주세요.” 그리고 아주머니가 묻지도 않았는데 내 꿈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제가 있죠. 꿈을 꿨는데 임신을 해서 만삭인 거예요. 근데 네이버를 보니까 복권을 사라는 거예요. 그래서 사러 왔어요.”


가게 사장님이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시더니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마치 사장님이 그 꿈을 꾸신 것처럼 물개박수를 치기 시작하신다.

“어머어머! 진짜 당첨돼야 할 텐데” 사장님의 물개박수에 신난 나는 한 술 더 떠서 “그렇죠 이거 당첨꿈이죠?”하고 티켓을 건데 받는다.

가게 문을 닫고 나오며 생각한다.

“뭐지? 가게 사장님은 나를 오늘 처음 봤을 텐데 내가 진짜 로또에 당첨되길 바라셨어.

저 물개박수는 내가 본 어느 물개박수보다 진심이었어.”

갑자기 마음이 따뜻해진다.

로또를 사서 집으로 온 나는 다시 다니엘에게 문자를 보낸다.

“나 왔어” 아무래도 이거 1등 당첨 티켓 같은데, 이번 주 토요일에 당첨결과 나오니까, 우리 당첨금 받고 나면

나는 이제부터 그냥 하루종일 책만 읽고 글만 쓸게

그리고 애 몇 명 낳자. 애들도 책 좋아하는 애들로 키우면서, 세계여행도 다니고, 항상 뭐 만들고 그러자.

자기는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니까 그림 그리고

“Yeah. Read, write, draw, play, travel, explore and exercise.”

다니엘이 답변한다.

상상만으로도 너무 행복한 삶인 것 같아 잠시 상상의 세계로 빠진다. 상상의 어느 유럽 호숫가에 있는 나에게 다니엘이 또 카톡문자를 보내온다.


그런데 있잖아. 나는 네가 로또에 당첨되어도 너무 행복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네가 계속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좋겠어. 왜냐하면 너는 글 읽고 책쓸 때 행복해하잖아.

만약에 로또에 당첨되지 않더라도 우리 둘이 그 꿈을 이루는 방법을 만들어 내면 되지.

나는 네가 재능이 많다고 생각하고, 너는 네가 이루고 싶어 하는 어떤 것이든 이룰 수 있다는 걸 진심으로 믿거든.

너는 하던 일을 계속하기만 하면 언젠가 성공할 거야. 그러니까 그냥 꾸준히 하면 돼.”​​​


문자를 보던 나는 잠시 할 말을 잃는다.

어쩌면 나는 이미 로또에 당첨이 된 게 아닐까?

나를 이렇게나 믿어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어쩜 로또당첨보다 더 한 행운이 아닐까? ​

그래 뭐 내가 로또당첨금 몇십억이 통장에 없지. 운이 없어? 어?!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있는데!!!

그까짓 로또 당첨 안된다고 내 꿈을 못 이룰 이유는 뭐야? 세계여행 하면 되지. 그까짓 거.

불과 방금 전만 해도 몇십억의 당첨금을 타면 집을 사고 차를 새로 사고 최고사양의 에어로바이크를 살 수 있다고 들떴던 나는,

돈이 충분히 없어 갖지 못했던 많은 것을 상상하느라 바빴던 나는


지금 바로 여기에서 당첨로또와 카톡문자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꾼 만삭의 꿈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당첨복권에 대해 말해주려던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너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재능과 가능성은 이미 너의 내면에 있다고,

그것을 꺼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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