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식당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발걸음을 떼려는 찰나 아내가 나의 팔을 말없이 잡아 끌었다. 아내는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지도를 읽고 있다. 길을 헤메일 때면 아내는 일단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자신이 처한 위치를 파악한다. 그리고 목적지의 위치와 최적의 경로를 확인한 다음에야 방향을 정해 발걸음을 뗀다. 아내는 헤매이는 법이 없다.
반면에 나는 길을 잃어버리기 일수였다. 도무지 멈추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지도 따위 확인할 시간에 발걸음을 재촉하는 편이 낫다는 기적의 논리로 무장한 채 일단 발걸음부터 떼고 본다. 그것이 옳은 방향이든 잘못된 방향이든 상관없었다. 직감상 목적지가 있을 것만 같은 곳을 향해 언제나 확신을 가지고 나아갔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조차도 한참을 헤매어야만 했었다. 돌이켜보면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이 나로 인해 헤매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번에도 아내 덕분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잠깐이지만 아마도 아내는 앞으로 더 이상 나에게 헤맬 기회를 주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중화요리 칭춘(醇淸): 맑고 그윽한 맛’
하얀 벽에 걸린 메탈 재질 간판이 과연 맑고 그윽한 느낌을 주는 것만 같다. 나처럼 식당 이름을 착각했던 사람들은 단호한 느낌마저 받을지도 모르겠다.
“또 어느 생각의 바다에서 유영 중 인고? 여보, 이제 그만 들어가시지요.”
입구 문고리에 손을 얹고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아내의 말에 흠칫 놀라 황망히 식당문을 열었다. 우렁찬 인사소리가 주방으로부터 들려온다. 주방은 오픈형 주방으로 주인장의 요리하는 모습을 안팎으로 볼 수 있다. 오픈형 주방은 실력과 청결에 자신 있는 가게만이 할 수 있다고 주워들은 적이 있다. 실력과 청결에 자신 있다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일하는 모습이 노출되는 것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만 같기도 한데 이곳의 주인장은 그런 모습까지도 맑고 투명하게 보여주고 싶나 보다. 아내와 나는 가게 맨 끝 가장자리에 앉았다. 식당안의 적당한 어두침침함 그리고 통유리창 밖으로 넘실거리는 하얀 봄빛이 어우러져 묘한 아늑함을 자아낸다.
청바지에 남색 셔츠와 남색 앞치마를 두른 젊은 종업원이 차와 간단한 찬거리 그리고 메뉴판을 내어주었다. 흘깃 주방을 둘러보니 가게 주인장 역시 남색 셔츠에 남색 앞치마를 두르고 연신 바쁘게 팬을 흔들고 있다. 유니폼도 유니폼이지만 특별히 푹 눌러쓴 남색 중절모 때문일까 왠지 주방장 역시 젊어 보인다. 그리고 이런 나의 추측은 식사가 나올때 즈음엔 확신이 되어버렸다. 글을 쓰는 지금의 나의 기억속에 칭춘의 주방장은 30대 초반의 젊은 분이다.
“이 가게는 참 특이하네.”
가게를 둘러보던 아내가 정적을 깨며 소감을 말했다. 아내는 디자인이나 구조가 같은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특이하다는 말을 쓴다.
“왜? 식당 분위기가 당신 취향이랑 안 맞나?”
“아니, 그게 아니고 인테리어부터 그릇이랑 메뉴판까지 가게가 느낌이 전반적으로 참 특이하다고.”
‘특이하다’라는 말과는 다르게 ‘참 특이하다’ 라는 아내의 말은 칭찬의 의미인가 보다.
“뭔가 전체적으로 방향성이라 해야 하나? 가게 사장님 개성이 확실하신 것 같아.”
“음……”
아내의 소감을 듣고 나자 내 머릿속에서 가게 문전부터 받았던 형언하기 힘들었던 이질적 느낌의 조각들이 결합되며 결정적 질문이 떠올랐다.
‘중화요리가 어떻게 맑고 투명할 수 있단 말인가?’
중화요리라 함은 불과 기름으로 빚어내는 것으로써 기름기가 주는 근본적인 느끼함을 화력이 주는 강렬한 맛으로 덮어내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주방에는 새카맣게 그을린 팬과 여기저기 지워지지 않는 기름때 자국이 있어야 할 게다. 이 모든 느낌을 잘 나타내는 것이 중국집 간판이라 생각한다. 으레 검게 칠이 된 나무 간판에 양각으로 새겨진 식당이름 위에 흰 칠이 되었으며 간판 모서리는 빨간색 천으로 장식 되어있는 그런 일반적이 중국집의 간판 말이다. 그런데 칭춘의 모든 요소는 내가 갖고 있는 중국집 가게에 대한 선입견과 정반대이니 참으로 특이하다.
나는 칭춘을 일반 중식당이 아닌 퓨전 중식당이라 내 멋대로 단정짓고는 의기양양하게 아내에게 중식당에 대한 고찰을 장황히 늘어놓았다. 아내는 애정 어린 미소를 띈 채 나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었다.
“당신 말을 듣고 보니 왠지 그럴 것 같네. 그런데 아직 아직 식사도 나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노? 일단은 먹어보고 확신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다. 청결함을 추구하는 이 가게 사장님의 철학이나 개성이 담겨 있을 수도 있는거고 당신이 자주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사장님의 꿈을 현실에서 그려 나가고 있는 걸수도 있고 그러니까……”
아내가 말 끝을 흐렸다. 게다가 아내의 어조는 조심스러우면서도 완곡하다. 우리가 처음 연애를 시작할 무렵 나는 아내를 ‘기 쎈 누나’라 장난삼아 부르곤 했다. 아내의 외관이 강해 보이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지만 철두철미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모습을 좋아했기에 애정을 담아 그리 불렀었다. 어디서든 누구 앞에 서든 차분하면서도 주눅들지 않는 아내의 자신감은 억지스러운 포장이 아니었고 나는 그런 아내에게 곧장 빠져 들었다. 비유나 은유를 섞거나 돌려 말하는 법 없이 정확하게 전달하던 사람이 언제부터인지 나와 대화할 때면 나의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처음에 나는 그것을 단순한 의구심으로 치부해버렸었다. 아내처럼 선이 굵은 사람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 아내는 자주 말끝을 흐린다.
아내가 자신 답지 못하게 되는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은 아마도 내 탓일 게다. 연애 시절부터 지금까지 본의 아니게 그녀를 무던히 괴롭혀 왔다. 아내는 내가 가지고 있는 ADHD와 그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강박과 우울 등의 각종 증세들을 정면에서 끌어안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들을 사랑할수록 사람들은 지쳐갔다. 아내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고야 말 것이라는 강박이 머리속에 똬리를 틀자 입이 마르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체온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만 메뉴판을 덮어버렸다. 도저히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최대한 침착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배 많이 고프나? 아무래도 다음에 올까?”
“어, 나는 많이 고파. 지금 먹자 여보. 기분이 다운된다고 자꾸 안 먹고 그러면 안된다.”
그러나 아내는 이미 나의 기분 변화를 알아차렸다. 아내의 센스에 감탄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그간 아내에게 쌓아 올린 히스테리의 결과물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 하는 건지 헷갈렸지만 일단 아내에게 사과하기로 마음먹었다. 수 없이 많은 사과와 양해를 사람들에게 구했지만 이러한 행위는 도무지 익숙해 지지가 않는다. 매번 낯설면서도 괴롭다.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투나 음색 그리고 제스처는 어떻게 할지 등등을 머릿속에 그리며 우물쭈물 하는 찰나 아내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자자 그만하고, 여기 봐바라, 메뉴판을 펼쳐줘서 못 봤는데 메뉴판 표지가 당신 좋아하는 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 표지다!”
아내는 내 두 손을 잡은 채로 우리가 함께 보았던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내의 온기 덕분에 차가웠던 몸이 다시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아내의 배려에 밀려 스멀스멀 빠져나간 강박적인 생각과 죄책감의 빈자리로 허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문득 메뉴판의 표지가 중경삼림이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화에 계속)
2022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