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 꽃이 피기 시작하던 날 아내와 함께 오산마을에 위치한 중화요리 전문점 '칭춘'을 찾았다. 아내도 나도 중화요리가 당기지는 않았지만 작년 12월 부터 '한번은 꼭 가보자' 하던 곳이 었으므로 일종의 의무감을 안고 오산마을로 향했다.
"이런 곳이 있었나? 왜 그동안 몰랐지?"
오산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꽤 오랜 시간을 달맞이 고개 주민으로 살았던 아내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달맞이 고개 입구와 오산 마을 입구는 불과 신호등 하나 차이지만 아내에게는 초행길이다.
오산 마을의 앞은 엘시티, 뒷편은 래미안과 해운대 힐스테이트 위브로 서울의 강남 사람들처럼 세련된 부산 사람들이 사는 구역이다. 그래서 집값 역시 세련되었다. 나에게 해운대는 유년시절 봄 소풍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곳이었다. 동네 꼬맹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쓸데없이 귀찮게 해도 그저 허허 웃던, 대충입은 낡은 옷이 잘 어울릴만한 뚱뚱한 몸매에 푸근한 인상을 가진 어린이들의 친구 동네 문방구 아저씨 같은 느낌이랄까.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곳에 '무슨무슨 시티'들이 들어섰다. 못 본 사이 우리 해운대 아저씨는 벼락 출세한 것 같다. 이제는 수트와 스포츠카가 잘 어울리는 세련된 스타일에 범접하기 어려운 대형 백화점 사장님이 된 것만 같다. 해운대는 더 이상 나에게 익숙치 않다.
마을의 부동산 값은 세련 되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분위기 만큼은 아직 부산이 남아있다. 동네에 울려 퍼지는 계란 판매 트럭의 메가폰 소리, 길바닥에 펼쳐진 약초방과 옷 가게, 오래되었지만 개성 강한 상가 건물들, 불쾌하지 않을 정도의 은은한 하수구 냄새, 비좁은 아스팔트 골목에 자동차와 오토바이 그리고 사람이 뒤엉켜 움직이는 모습들, 바삐 움직이는 청년들, 봄볕에 꾸벅꾸벅 졸면서도 절묘하게 담배를 태우시는 영감님들 그리고 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하원하는 노란 가방 멘 아기 등등.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상충된 것들이 엉망진창 뒤섞여 묘한 어울림으로 피어난다. 오산 마을은 해운대에 둘러싸인 작은 조각의 부산이다.
한창 이 글을 쓰던 어느 날, 글과 함께 담을만한 사진을 추려내던 아내가 갑자기 네이버 한자 사전을 뒤적이더니 혀를 끌끌차며 나를 툭툭친다.
"에헤이…… 청춘(靑春)이 아니라 순청(醇淸)이었노……"
"갑자기 그기 무슨 말인데?"
못마땅함이 살짝 묻어있는 나의 물음에 아내의 사투리가 조금 진해진다.
"이래 크게 써 있었는데 왜 못봤지? 요기 간판에 적힌 한자 함 봐 보소. 청춘(靑春)이 아니다 아이가. 당신 글 제목 바까야 된다."
사진 속 간판을 보니 과연 아내의 지적대로 '醇淸칭춘'이라고 써져 있었다. 아내는 예리하고 정확한 사람임을 다시금 새삼 깨닫는다. 아내는 세상을 될 수 있으면 정확하게 보려 노력하는 사람인 반면 나는 될 수 있으면 세상을 내 마음대로 보고 해석한다. 칭춘(Qingchun)이란 식당 이름을 아내는 그대로 칭춘이라 불러주었으나 나는 청춘이라 불렀다. 가게에 들어가서까지 청춘 짜장이니 청춘 탕수육이니 하며 주인장 앞에서도 고집스레 청춘을 부르짖었었던것 같다.
비록 식당의 이름을 청춘 혹은 칭춘으로 서로 좋을대로 불렀지만 그 뜻은 청춘(靑春)일거라 생각했었다. 2022년의 푸른 초봄의 우리 부부, 오산 마을 골목을 헤집으며 청춘을 찾아 헤매었다.
(다음화에 계속)
2022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