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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뛰르 Jul 21. 2024

별바다 아래를 질주하는 말발굽 소리

손민수 베토벤 피아노 콘체르트 전곡 공연

 

  손민수 선생님은 종교다. 열네 살부터 한국예술학교 영재교육원에서 손민수를 사사한 임윤찬, 자기 인생의 모든 것에 영향을 끼쳤다는 스승에 대한 찬사.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도 이보다 놀랍고 강렬한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스승 또한 이에 못지않다. 제자를 두고 존경하는 피아니스트라고 말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에겐 많은 언어가 필요치 않을 듯하다. 피아노를 사이에 두고, 눈짓 몇 번이면 열 손가락에 의중이 전달될 것 같다. 깊은 신뢰감은 완전한 소통을 가능케 할 테니까.


  부천아트센터 개관 1주년을 맞이하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기획되었다. 이 중 눈여겨볼 만한 공연은 단연 손민수와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베토벤 피아노 콘체르토 전곡 무대. 7월 13일과 14일, 양일에 걸쳐 콘서트홀은 손민수 손끝에서 베토벤을 찾으려는 청중으로 가득 찼다.


  다섯 개의 피아노협주곡 중 다수의 청중은 5번을 기다렸을 것이다. ‘황제’로 더 잘 알려진 피아노협주곡이 작품번호 순에 따라 대미를 장식하는 시간을 박제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율하는 오케스트라. 홍콩 출신 지휘자 윌슨 응과 함께 등장하는 피아니스트. 단번에 청중을 사로잡는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도입과 이를 받아내는 힘이 여실히 느껴지는 피아노 선율은 야생마를 떠올리게 했다. 흉부를 오르내리면서 엉덩이와 다리 근육의 형태를 굵은 선으로 그리는, 들판의 초록밖에 담은 적 없는 눈빛을 가진.


  2악장에 이르러서야 내달리기만 하다 다리쉼을 한다. 거칠게 내쉬던 호흡이 안정을 찾고, 무심코 응시한 지평선도 차분하다. 해 질 녘에는 무엇이든 그리워할 만한 것들을 서둘러 만들어야 하는데, 틈을 주지 않고 3악장이 어둠의 장막이 되어 순식간에 덮쳐온다.


  별바다 아래를 질주하는, 길들여지지 않는 말발굽 소리.


  반짝이는 것들을 죄다 건들이면 이런 화음이 탄생할까. 4번까지는 완성도 높은 한 작품을 위한 연습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손민수는 승마복을 착용하지 않았다. 음악을 기들일 의도는 애초에 없었다. 옆에서 함께 달리고, 같은 곳을 그저 바라볼 뿐. 연주 도중 피아노와 의자 거리를 살짝 좁히는 움직임까지 참 침착하다는 느낌.


  건반의 철학자라 불리는 그의 스승 러셀 셔먼도 피아니스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겠지. 임윤찬은 반 클라이번 콩쿠르 준결승전을 앞두고 오늘 연주를 미스터 러셀 셔먼에게 바친다고 했다지. 어린 피아니스트도, 그의 스승도, 스승의 스승도 베토벤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부분이 상당하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무대였다. 위대한 작곡가는 음악을 대하는 태도 내지는 철학을 악보에 숨겨놓은 재주도 남다르겠지.


  사제지간이 결코 수직적이지 않음을 증명하는 손민수. 그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여기에서도 읽어볼 수 있다. 옆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에게 질주 본능을 일깨우는 말발굽 소리가 되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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