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북적거리는 서울시청광장. 12,500명이 달리는 큰 대회로 나와 엄마는 하프를 뛰기 위해 아침일찍 채비를 하고 나왔다. 알람을 듣고 일어날땐 뭔가 잘풀릴거 같은 가벼운 마음이 들어 으쌰하며 나왔는데 막상 대회장을 오니 걱정과 불안이 앞섰다. 나의 목표는 두시간. 이유는 딱 떨어지는 깔끔한 숫자니깐. 가끔은 별 의미없는 이유로 목표를 갖기도 한다. 그렇지만 두시간이면 540으로 뛰어야하는데, 난 요 근래 600이하로 뛰어본적이 없었다. 단 5km도 600이 어려운 내가 21km를 뛰어야한다니, 목표를 정하면 이뤄야하는 성격을 가진 나를 잘 알아서 부담감이 넘쳐흘렀다. 에너지는 전날, 당일날 먹은 음식으로 충분히 뛸수 있음을 확신했다. 문제는 내 두 다리였다. 어느정도 뛰면 다리가 굳어버려서 달려가지질 않는데 그게 보통 10km 넘어서 왔었다. 지난 3월 경기하프마라톤에서는 비참한 마일리지임에도 불구하고 다리가 굴러가길래 얼떨결에 1시간 59분 36초라는 PB를 얻었다. 하지만 오늘은 느낌이 좀 달랐다. 지하철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만 올라가는데 모래주머니를 단것처럼 무거웠다. 불안한 마음에 평소에 안하는 스트레칭을 한시간동안 해줬다. 팔도 돌리고 다리도 차면서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스트레칭을 전부 따라했다.
그렇게 시작한 대회, 결국 엄마를 쫓아가지 못하고 나만의 페이스를 찾아서 홀로 달렸다. 역시나 찾아온 10km귀신, 다리가 무뎌져 600 이하로 도저히 뛸수 없는 시기가 찾아왔다. 생각보다 일찍 찾아온 이놈때문에 두시간이라는 목표는 진작에 삭제됐다. 목표 수정, 절대 걷지 않기 그리고 후회없이 최선을 다하기. 긴 거리를 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멘탈이기에 목표가 필수적이었다. 애플워치에서는 평균 속력이 느리다고 알람이 와댔다. 알아 안다고! 알람이 다섯번 울리면 한두번은 이악물고 속도를 올렸으나 얼마 못가 이놈은 다시 잔소리를 하댄다.
그리고 18km, 3km가 남은 시점이었다. 분명 그전까지는 아무생각없이 뛰어서 금방 온듯했는데 3km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인식하자마자 언제 끝나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10km같은 3km를 마주했다. 각자 크루원을 응원하는 응원요정들은 거의 다왔다며 소리질러준다. 하지만 그런 외침들이 나를 더 힘들게 했었다. 다왔다며!! 다왔는데 왜 아직 19km인거야! 누군가를 응원하러 와준 사람들 덕에 어느때는 정말 힘이 팍 나고 이렇게 멘탈이 흔들릴때는 노이즈캔슬링이 절실해진다. 이렇게 이기적일수가 있을까. 골인지점은 아무리 달려도 나오지않아 눈물이 조금씩 나려고할때 뒤에서 들려오는 작은 외침이 들렸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정말 작게 본인에게 속삭이며 누가봐도 지쳐보이는 자세로 뛰어가는 또래 여자분을 만났다. 맞아, 내가 이 감동 때문에 마라톤하는거지, 죽도록 뛰다보면 내가 왜 뛰고있으며 왜 이렇게 힘들게까지 뛰어야하는지 답을 못찾으면 포기할까라는 생각까지 도달한다. 딱 그런 시점에 마주한 또래 여자분덕에 아주 미세하게 남아있던 체력(이런걸 젖먹던 힘까지 라고 하나요?)을 끌어올려 다리를 굴렸다.
2시간 5분 18초, 평균페이스 556로 걷지않고 오로지 뛰며 후회없이 최선을 다한 레이스가 끝이 났다. 이보다 더 잘 뛸수 없다고 장담한 레이스라 골인지점에 들어가니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하지만 여기서 울면 주책바가지에 기록은 두시간이나 넘었으면서 우는게 민망해서 이 악물고 꾹 참았다. 이제 내가 넘볼 수 없는 기록을 가진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도 개같이 힘들었지만 뛰고난 뒤 이 감정들이 감사하고 행복하다며 울먹이셨다. 아마 우린 또 새로운 대회 신청을 하겠지.
어느덧 마라톤을 나간지 2년이 되었다. 사실 러닝을 거의 하지않고 대회만 쫌쫌따리로 나가는 상황이지만 한번씩 마라톤을 나가면 미뤄뒀던 단체생활 및 외부활동을 하고 온 듯하다. 그리고 그속에서 마주하는 감동들과 생각들과 마인드컨트롤, 나와의 대화 등 절대 일상생활에서는 만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또 다시 대회신청을 누르게 된다. 이제 남은건 한달뒤 jtbc 풀마라톤이다. 이제 벼락치기 마일리지 쌓기 밖에는 답이 없다. 10월 남은 기간 동안에는 집밥을 해먹으며 마일리지를 쌓는게 큰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