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5시

by 혹독한에세이

어제의 기록


팀이 바뀐 뒤로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 누가들으면 개꿀 위치라고 생각하겠지만 일욕심이 많은 나는 업무시간이 연속된 현타의 시간이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인가. 팀이 해체되고 나서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내가 맡았던 프로젝트도 다른 팀에게 넘어갔다. 물론 나도 옮겨진 팀이 있긴하다. 하지만 본래 굴러가던 업무방식이 있어 내가 투입하기엔 애매한 시기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나빼고 분주해보이는 회사를 보면 빨리 탈출해서 날 알아봐주는 다른 회사를 찾아야 하는데 하며 조급해진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메일함에 들어가 지원했던 기업에서 통보가 왔는지 확인한다. 그렇게 다가온 마의 3시 30분. 내가 가장 공포스러워하는 시간이다. 뭔가 많이 앉아있었고 할 것도 다 한거같은데 아직도 퇴근시간이 두시간반이나 남은 것이다. 그렇게 4시 50분까지는 10분마다 시계를 확인하는 듯 하다.


도저히 할게 없어 다이어리를 꺼내 <퇴근 후 할 일>을 적어본다.

-다이소 들리기 -대파 손질해서 냉동실에 넣어주기 –미역국 남은 거 해치우기 –글쓰고 책읽기

완벽한 계획들이다. 하지만 나에게 공포의 5시가 남아있다. 공포의 5시란 회사사람들이 술이 고파지는 시간이다. 전날 과음을 했다 해도 5시만 되면 귀신같이 술 먹을 동지를 찾는다. 나는 항상 권유받는 포지션이다. 난 누구에게 절대 먼저 먹자 하지 않는다. 거절당하는게 무서워서다. 다섯시 전에는 나도 오늘은 절대 술을 먹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누군가 꼬셔도 난 거절할거라는 다짐을 한다. 하지만 또 누군가 저녁을 먹자하면 그럴까,,?하며 넘어가는게 나다.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기 싫은 이런 내가 밉기도 하다. 오늘은 누가 나를 꼬실까. 그래, 누가 꼬신다해도 난 오늘 꼭 미역국을 먹어야겠어.


오후 4시 39분, 남자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오늘 나 야근 안하면 저녁먹을까?”

꼰대같은 상사를 만나 의미없는 야근을 줄곧하는 남자친구가 마침 야근도 안할거같고 놀고싶기도 한지 나에게 연락을 보냈다. 아 어쩌지 오늘은 미역국 먹어야하는데. 근데 비도 내려서 러닝도 못하고, 삼겹살도 안먹은지 꽤 된거 같은데? 막창도 좀 땡기기도하고.. 남자친구와 만나면 보통은 술안주를 먹는다 삼겹살, 막창, 회 보통 세가지를 돌려먹는데 꼭 퇴근하면 그렇게 생각나는 메뉴이다. 그래도 월요일부터 소주를 먹으면 일주일이 길어지니깐 거절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난 오늘 집밥해먹을생각이었으니깐.

“담에 놀자~ 미역국 해둔거 먹어야해”

“놀아줘!!!!!!!!!!!!!!!!!놀고싶어!!!!!!!!!!”

펑소에 나보고 놀고싶다는 말을 잘 안하는 남자친구가 완강하게 말하니 대쪽같이 흔들리고 말았다. 심지어 집앞에 막창,냉삼을 동시에 구워먹을 수 있는 식당이 새로 생기기까지 했었다. 새로 생긴 식당은 보통 질이 좋고 친절하며 식재료의 질도 좋아 새로생긴 집이면 믿고 가보곤한다. 근데 심지어 리뷰이벤트로 치즈계란찜에 소주한병을 준다하니 안갈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결국 우린 막창과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집에 돌아와 대파를 썰며 눈물을 흘리며 생각해봤다. 난 왜 저녁제안을 거절하지 못할까. 텅 빈 집에 혼자 들어가기 싫어서? 좁은 집이 답답해서?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서? 내가 거절당하는 게 싫으니 거절하고 싶지 않아서? 열이면 아홉은 거절하지 못하는 나는 분명 어딘가 결핍이 있는 게 분명했다. 과거에는 외로워서 라는 결론을 내었지만 단일적인 외로움은 아닐 것이다. 근데 뭔 놈의 대파는 이렇게 눈이 매울까 눈물 콧물이 뚝뚝 흐르며 나름 철학적인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내일의 나는 공포의 5시를 잘 견뎌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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