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구조 바꾸기

by 혹독한에세이

내일은 2025년 하반기 첫 하프대회, 서울레이스를 달리는 날이다. 재작년부터 마라톤은 엄마와 항상 같이 나간다. 서울에서 대회가 열리는 만큼 전날 엄마는 서울 자취방으로 오셔서 주무시고 다음날 여섯시에 나가 함께 서울을 달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대회를 위해 엄마가 오는날이었고, 추석 연휴동안 본가에 있었던 터라 저녁에 엄마차타고 같이 올라오냐 아님 아침일찍 나혼자 올라오냐 고민이 되었다.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먼저 올라가서 집 구조를 싹 바꾸고 싶었다.

나는 어떤 마음가짐을 할땐 보통 집구조를 바꾼다.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해보자는 의지의 몸부림이었다. 9월부터 자취방이 너무도 싫었다. 마치 해야할일이 쌓여있는 창고를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되도록 집에 있지 않으려고 새로생긴 집앞 스터디카페 회원권도 끊을 만큼 집에 있기 싫었다. 집에 있을때는 둘중 하나였다. 잠만 자고 있는 상태이거나 맨정신이 아니거나. 추석 연휴를 맞이하기 일주일전쯤이었나 너무도 감정들이 버거운 나머지 처음 이자카야에가서 혼술을 했고 만취한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기억이 안날정도로 마셨는지 다음날 일어나보니 1층에는(복층 자취살이 중이며 1층은 거실, 2층은 침실로 사용중이다) 온갖 물건들이 흩뿌려져 있으며 옷은 사방에 던져져있었다. 그리고 뭘 쏟은건지 끈적거리는 액체들이 바닥에 말라붙어있었다. 좌절스러운 사실은 그 지경을 본상태로 치우지 못한채 출근을 해야했다. 술이 덜 깼나 절대 택시는 소비하지 않는 나인데 출근길에 택시를 탔다. 그리고 어찌어찌 버틴 퇴근길에도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 집 문을 열자 총체적 난국의 우리집이 보였고 도둑이 들었나 이 상태 집꼬라지는 누가 만들거냐며 그와중에 남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치울 힘이 없던건지 현타가 왔던건지 끈적거리는 액체만 대충 닦고 흐린눈을 장착하고 2층 침실로 올라가 또다시 티비만 보았다.

그리고 또 맞이한 아침, 더이상 청소를 미룰 수 없었기에 꾸역꾸역 일어나 눈에 보이는 것들을 치웠다. 이름모를 액체들이 어디까지 흘러갔는지 몰라 쇼파까지 들어 본의아닌 대청소를 했다. 미뤄뒀던 세탁기도 돌리고 환기도 시키면서 잊혀졌던 양키캔들까지 켰다. 그리고 연휴를 맞이하러 본가로 떠났다.

일주일의 연휴는 쏜살같이 지나갔다. 아 진짜 그집 들어가기싫은데, 언제는 자취방이 너무나 좋다가도 언제는 잠자는 시간 빼고는 있고싶지 않다. 이 주기는 보통 6개월단위로 찾아온다. 지금은 너무 들어가기 싫은 주기다. 하지만 어쩔수 있나 현실을 마주하려면 첫단계는 자취방 들어가기였기에 마음가짐을 달리 가져봤다. 첫번째 스텝은 이불빨래하기 였다. 난생처음 무인세탁소에 가보였다. 뭔 놈의 빨래비가 만원이나 할까 아주 살짝 스치긴 했지만 생각보다 좋았던 세탁소 냄새를 마주하며 세탁비를 과감하게 결제했다.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집구조를 바꿨다. 본래 책상이 유리창을 바라보았던 구조를 벽을 바라보는 구조로 바꾸는게 목표였다. 유리창을 바라보면 개방감덕분에 공부가 잘될줄 알았지만 집중만 분산시킨다는 생체실험을 통해 역시 책상은 벽을 바라봐야한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그렇게 세시간이 흘렀고, 걱정과 달리 깨나 마음에 드는 배치로 완성시켰다. 마침 엄마도 도착하셨다. 엄마의 첫마디는 역시 책상은 벽을 바라봐야한다고 하신다. 기획자의 의도를 단숨에 파악하시더니 세시간의 노동이 헛되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엄마는 내일 하프를 위해 카보로딩을 해야한다며 토레타 열통과 파스타 소스, 옥수수캔을 잔뜩 싸오셨다. 유튜브에서 저녁으로 파스타를 먹고 한시간뒤 옥수수캔을 먹으면 다음날 에너지가 축척된다고 배우셨단다. 그리고 중간중간 토레타를 끊임없이 섭취해야한다는것도 빼먹지 않으셨다. 재작년 원래 마라톤전날 떡볶이를 먹어야하는 징크스를 가진 나를 보시며 비웃던게 엊그제 같은데 나보다 더하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귀엽기도 했다. 마라톤 세계로 이끈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소소한 목표를 가지면서 채워나가는것보다 재밌는 인생게임은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평소에 10km는 거뜬하게 뛰시니 걱정이 안되지만, 내가 걱정이다. 저번주에 21km 연습할때 거의 열번은 쉰듯한데 내일 쉬지않고 달릴 수 있을까. 잘할걸 알지만 걱정되는건 당연함이다. 과연 내일 나의 글에서는 어떤 감정이 담고있을까 궁금해진다.

작가의 이전글쉬어도 되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