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박인 여름

by 황혼


벽에 기대어 한참을 서 있었다.


어느덧 따뜻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데도

나는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조차 잊은 채,

그 자리에 붙박인 것처럼.


초여름의 문턱이었다.

가로수엔 연둣빛이 완연했고, 햇살은 하루 종일 고르게 퍼져 있었다.

사람들은 소매를 걷고, 어딘가로 경쾌하게 걸음을 옮겼지만,

나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길 위에 가볍게 드리운 그림자처럼, 나의 존재도 바닥에 얇게 깔려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누구의 시선에도 잡히지 않는, 무심한 풍경의 일부처럼.


특별히 기대를 걸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어느 날, 문은 조용히 닫혔다.

그 이후로 나는 손잡이만 바라보며 서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안에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손끝에 남겨진 온기마저 사라져갔다.

문 너머의 풍경은 이미 다른 계절일 것이다.

아마 거기선 햇살도 좀 더 가볍게 웃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직, 마지막 문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미 끝난 장면을 붙들고, 들리지 않는 기척에 귀를 기울이며.


한때 따뜻했던 무언가는 이제 단어조차 되지 않는다.

말로는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자리, 그 너머에 오래 머물렀던 것들.

침묵이 길어지면서, 감정의 윤곽도 흐릿해졌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흘러가는 하루들이 쌓여갈수록,

내 안의 풍경은 점점 낯설어졌다.


소음은 멀어졌고, 침묵만이 또렷하게 다가왔다.

투명해지는 감각.

존재가 점차 빛을 잃고, 고요 속에 스며드는 느낌.

잔잔한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말 대신 조용히 시선을 내린다.


나는 오늘도 그 문 앞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닫힌 지 오래된 문,

더 이상 누구도 오가지 않는 그곳.

어디선가 지워졌을 풍경.

하지만 아직도 나에겐 닫히지 않은 장면들…


손끝으로 문을 쓰다듬으며

여전히 떠나지 못한 어떤 마음의 자락을,

오늘도 조용히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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