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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a blocker Jun 27. 2023

캐나다에서 심장외과 간호사로 살아가기

뭐부터 시작해야 하나. 지금 캐나다는 정확히 밤 12:10인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지 늙지 않는다고 딸과 남편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잔소리했건만. 지독한 생리전 증후군으로 잠이 오지 않는 것도 이것의 시작이지만 문득 지난 몇몇 시프트 때 우연히 많은 환자를 보내면서 그냥 내 마음의 동요가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심장외과에서의 죽음은 굉장히 미묘하다. 심장을 살리기 위해 입원하고 수술을 받는 만큼 수술환자들은 default full code인데 우리는 심장내과 환자도 받으므로 종종 병이 많이 진행되었거나 말 그대로 희망이 없을 경우 환자와 가족들의 뜻에 따라 DNR(Do Not Resuscitate) 환자들이 있기도 하다. 같은 병동이지만 이 둘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만약에 브런치 작가가 된다면 이런 다른 이들의 죽음에 대해 관심이 1도 없는 남편에게 주저리 이야기 하기보다는 구독자들에게 들려줄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 본다.


지난 3년간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캐나다 심장외과 간호사의 생활은 같은 병원에서 이미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지만 다른 부서에 비해 한정된 영어를 구사하는 곳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영어가 미숙한 나에게 도전 그 자체였으며 아직도 이곳을 못 떠나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이젠 안녕이라 말하고 다른 부서를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의 갈래길에 서 있다. 힘들지만 글과 말로는 표현 못할 이상한 미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치 12시간 근무 후 꼬랑내 나는 내 양말의 냄새를 한번 더 맡아보는 격이랄까…


만약 브런치 작가가 된다면 뭐 심장외과뿐이겠는가… 지난 10년간의 이민 생활과 내가 걸어온 과정, 외국에서 자녀 키우기까지 주제야 이 나라 캔디 컬렉션처럼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때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부모님이 (IMF 비슷한 시기에 대학을 입학했다) 그런 비슷한 과는 문 앞에도 얼쩡거리지 못하게 했던바 관련 전공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교 포기 각서를 쓰고 이 길에 들어선 스무 살의 내가 기억난다. 난 지방 사람이라 서울에 가면 지하철 노선과 빽빽한 서울의 지도만 봐도 숨이 막히던 갓 성년이 된 사람이었는데 캐나다에서 이러고 있으니 사람일은 정말 오래 살고 볼일뿐만 아니라 오래 산만큼 돌아볼 일도 많다.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각서를 쓰고 나오는 나를 말릴 것인가 잘했다고 박수 쳐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아직 모르겠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나만 보고 사는 “자녀”라는 변동수도 있었고…


AI 가 등장하고 앞만 보고 살아가야 하는 요즘 시대라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과거와 지금 현재에 대해 타인과 나누는 것이 뭐 그리 떳떳하지 못한 일인가에 대한 물음도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다는 이유에 한몫을 한 것 같기도 하다. 정신없이 사는 워킹맘의 생활은 한국이나 캐나다나 비슷하겠지만 누군가와 간접적으로나마 공유하며 대부분의 브런치 글이 그렇듯 나만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이 역시 내 인생의 작은 성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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