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많이 아프고 나는 [엄마에게 간다]
잠에서 깼다. 눈을 뜨는 시간이 창 밖이 환하다. 아마 6시쯤 되었을 것이다. 해가 길어질수록 일찍 눈이 떠지는 것이 자연스럽고, 언제부턴가 그랬었는데, 반대가 되었다. 점점 눈이 떠지는 시간이 늦어지고, 몸을 일으켜서 일어나는 것도 오래 걸린다.
엄마 간병하러 와서 한두 달까지는 모든 게 빨랐다. 바짝 군기가 들었달까. 새벽 같이 눈을 뜨고, 눈을 뜨기 무
섭게 벌떡 일어나서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어릴 때 학교 끝나고 집에 올 때 엄마, 하고 불러댔었다. 엄마 어디 안 가, 하면서 나를 반겨줬었고, 엄마가 집에 없을 땐 그렇게 허전할 수 없었다.
엄마, 일어났어?
엄마가 뜨면
잘 잤어?
눈 꿈뻑꿈뻑하면
일어날까?
이불 아래로 다리를 꼼지작걸라치면
화장실 갈래?
쉴새 없이 말을 걸었다.
이제는 아니다.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흔들어 깨워도 눈을 뜨지 않는 날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말이 준다. 엄마에게 가는 시간도 점점 느려진다. 엄마에게 가기가 두렵다. 아니 싫다.
엄마에게 가지 않고 휴대폰 속으로 들어간다. 처음엔 그동안 바빠서 못 봤던 것들, 나름 관심 있었던 주제 아니면 양자역학 같은, 궁금했으나 엄두가 안 나 보지 못했던 영상들을 찾아 봤는데 언제부턴가 뭘 봐도 집중이 안 된다. 몇번을 반복해서 봐도 머리 속에 남는 것이 없다. 이제는 주제고 뭐고 뭐가 뭔지 모르지만 보면 하염없이 시간은 잘 가는 영상들을 본다. 재미도 없고, 보고 나서는 뭘 봤는지도 기억에 남지 않는 것들을 소비하면서 엄마에게 가는 시간을 지연시킨다.
오줌이 마렵다. 참을 만큼 참는다. 참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에 밭에 가 봐야지. 딱히 할 일은 없지만.
어제 저녁 아빠가 나 들으라고 딱 내가 들을 수 있는 만큼만 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예전 같으면 아빠가 자리를 비우면 엄마 곁에 내가 있어야 했다. 아이를 초등학교 때까지는 절대 아이를 혼자 두지 않았다. 남편과 내가 교대로 아이를 지켰고, 둘 다 안 되면 친구에게 부탁하고, 그것도 안 될 것 같으면 멀리 있는 부모님이라도 불러서 옆에 지키고 있게 했다. 엄마에게도 그렇게 했다. 지금은 아니다. 엄마 옆에 있는 시간을 줄이고 싶어서, 버티고 버티다가 아랫배가 당겨서 아플 때까지 참다가 정말 못 참겠다 싶을 때 문을 박차고 나간다.
참았던 오줌을 쏟아낸다. 내 속에 잔뜩 쌓인 것도 쏟아내고 싶다. 그리고 오줌과 함께 쏴아~하고 쏟아지는 물에 흘려보내고 싶다. 순식간에 내 눈앞에 사라지게, 누가 내 속엣 것들을 보지 않게. 아니 어쩌면 내가 저 변기 물과 함께 사라지고 싶다.
세수를 한다. 원래 난 잘 씻지 않는다. 집에 있을 때는 며칠이고 씻지 않았다. 씻지 않아도 되니까 코로나 시기에 재택근무를 좋아했다. 그런 내가 엄마를 간병하면서는 매일매일 꼬박꼬박 씻는다. 세수는 매일 하고, 이틀에 한 번 머리 감고 샤워를 한다. 그렇게 씻지 않으면 폐인이 될 것 같아서다. 이미 마음은 폐허가 된 지 오래다. 마음은 씻을 수 없으니까 얼굴이라도 씻어보는 거다. 세수하다보면 마음도 씻어질 수도 있으니까. 미지근한 물로 먼저 씻는다. 세수를 했는데도 몸이 뜨뜨미지근하다. 밤새 편안했을 리 없는 몸이 고작 수도꼭지에서 아무때고 흘러나오는 값싼 물 따위로 달래질 리 없다. 이제 찬물로 헹군다. 정신이 바짝 들기를 기대하면서.
이제는 엄마에게 가야 한다. 지금도 안 가면 나는 사이코패스일지도 모른다. 효녀 코스프레는 두 달 만에 포기했고, 이후 가끔 엄마에게 막말도 하고 못 되게 굴고, 가끔 나쁜 생각도 하는 딸이지만 그래도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지. 거실에 홀로 누워있는 엄마에게 다가간다. 엄마가 거기 누워 있다. 염을 하면 저런 모양이 될까? 바람이라도 들어갈새라 이불로 정성스럽게 몸을 감싸놓아서 염을 한 것 같다. 엄마 얼굴을 들여다본다.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누워있다. 예전에는 혹시 죽은 거 아닌가 하면서 들여다보는 걸로도 부족해서 엄마 얼굴에 귀를 갖다 대고 숨소리를 들어야 안심하고 그랬다. 이젠 그러지 않는다. 엄마가 살아있다는 것을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다. 엄마가 죽었을 지도 모르고, 엄마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더라도 예전처럼 다행이라고 느끼지 않을 것 같다. 이젠 죽어도 할 수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이럴 바엔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엄마가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방에 들어와서 다시 눕는다.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어제 바꾼 요가 얇은지 등이 차가워서 다시 모로 누웠다가 다시 등을 대고 누웠다가를 반복한다. 그러고 보니 방바닥 절절 끓고 두꺼운 겨울 요를 깔았던 겨울에 집에 왔는데 벌써 봄이 됐다. 히트택을 입고 솜이불을 덮고 자다가 이제는 가벼운 이불을 덥고 잔다. 엄마의 시공간은 어딘지 모르겠고, 나는 바로 엄마 옆. 엄마 옆에 있다 보니 나의 시공간도 뒤틀린다. 삐리리, 번호 키 누르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밭에 갔던 아빠가 왔다. 이젠 나도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