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사과가 접수될까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이 나는 시장통에서 자랐지만 엄마나 아빠가 누구와 다투거나 큰 소리 내는 걸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시장통과 잘 어울리지 않는 다정하고 친절한 말투와 태도를 갖춘 엄마를 양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싸웠다는 얘기를 들었다. 충격이었다. 엄마가 누구랑 싸울 수 있는 사람인가, 내가 아는 엄마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 엄청난 일을 해낸 사람은 생선 가게 주인이다. 시장에는 그 집 큰딸 이름을 붙인 생선가게가 하나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라서 독점이고 생선 팔아서 돈도 꽤 벌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당연히 엄마도 그 집에서 생선을 샀다.
엄마는 해산물을 좋아한다. 그래봤자 살림 넉넉지 않은 엄마가 사는 생선은 고작 고등어였고, 좀 특별한 날에는 오징어나 갈치를 사 왔다. 특히 엄마는 오징어를 좋아한다. 오징어로 매콤 새콤(엄마는 달콤은 아님)하게 무친 오징어초무침이나 오징어뭇국을 자주 끓여주었다. 먹어본 게 그런 거라 나도 오징어를 좋아한다. 내가 집에 가면 엄마는 늘 오징어를 무쳐주곤 했다. 그날도 엄마가 내가 오랜만에 집에 왔다고 오징어를 사 왔다. 까만 봉지를 열었는데 오징어에서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오징어를 까만 봉지에 다시 주워 담고 조용히 나갔다. 그리고 맨손으로 돌아왔다.
엄마 오징어는?
오징어 패대기치고 왔어.
응?
아니, 어떻게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번씩 상한 오징어를 주냐. 안 보인다고 이렇게 하는 건 아니지.
엄마는 시각장애인이다. 후천적으로 시력을 상실했다. 그래도 집에서 생활하는 거나, 시장에 장을 보러 가는 정도는 혼자 할 수 있다. 엄마와 아빠는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비싸도, 조금 품질이 떨어져도, 대형마트가 생겼어도 시장 단골가게에서만 장을 본다. 물건을 고르지도 않고, 달라는 돈을 다 주고, 에누리도 하지 않고, 더 달라고 조르지도 않는 가게 주인 입장에서 보면 참 편한 손님이다. 그런 엄마라서 만만했을까. 어느 날부터 생선가게 주인은 엄마에게 자꾸 싱싱하지 않은 생선, 상한 생선을 떠 안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엄마는 몇 번을 혼자 삭이고 삭혔다. 그런데 그날은 그러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근데 엄마, 진짜 오징어 패대기를 쳤어?
응, 진짜 패대기쳤어. 나도 성질 있다는 거 보여줘야지.
나중에 아빠에게 들으니 진짜 패대기친 건 아니라고 한다. 그냥 봉지째로 갖다 주고 돈도 안 받고 돌아와서 다시는 그 생선가게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패대기쳤으면 더 멋있었을 텐데, 엄마가 성질을 부려봤자 그 정도구나.
어버이날, 엄마가 좋아하는 오징어무침을 해주려고 장을 보러 갔다. 당연히 유미생선가게로 가지 않고, 마침 아파트 앞에 5일장이 서서 그리로 갔다.
오징어 얼마예요?
세 마리에 만오천 원.
이거 주세요.
어, 어, 근데 너 저 집 딸 아니야?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서 아주머니 얼굴이 잘 안 보였다. 모자 아래로 쌍꺼풀 진한 눈과 두터운 입술이 어디서 본 듯 만듯했다. 그보다는 목소리가 지문이다. 목소리에서 그 생선가게에 생각났고, 천막 뒤에 붙어있는 가게 이름을 보고, 아차 싶었다. 유미생선가게. 엄마가 오징어를 패대기치고 왔다는 집이었다. 아씨, 하필 어떻게 이 집에 왔나, 그렇다고 다시 물릴 수도 없고. 그나저나 날 어떻게 알아봤을까. 세월이 얼만데.
이제 시장 안에서는 장사 안 하세요?
응, 이제 여기 장에 나와서 해.
아, 아주머니는 여전하시네요. 건강하시죠?
응, 나는 건강해. 근데 엄마가 아파서 어쩌냐. 소식 들었어.
아, 네…
엄마는 좀 어떠셔? 얘긴 들었는데…
그냥 썩 좋진 않으세요.
오징어를 봉지에 담아서 내 손에 쥐어주고, 돈을 받지 않고 갑자기 가만, 하면서 여러 생선을 훑더니 낙지가 담긴 바구니를 털어 봉지에 넣어 내밀었다.
이거 엄마 갖다 드려. 엄마한테 미안해서…
아주머니가 말끝을 흐렸다.
아니에요. 근데 이왕 담으셨으니까 계산할게요. 저희 낙지도 좋아해요.
아니야. 이거 정말 선물이야. 돈 받으면 선물이 아니잖아. 내 마음이야. 그동안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었어.
더 이상 거절을 못하고, 또 그래서도 안 될 것 같아 오징어와 낙지를 받아 들고 집에 왔다. 아직 엄마가 자고 있다. 엄마가 알면 뭐라고 생각하려나. 생선가게 아주머니의 사과가 엄마에게 전달될 수 있으려나. 아니면 다시 패대기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