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 캐러 가고 싶은 날
우유를 사러 간 아빠가 까만 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그게 뭐야?”
“쑥”
“쑥이 어디서 났어?”
“윤재 엄마가 줬어. 가니까 쑥을 다듬고 있더라고. 그거 좀 나눠줬어.”
윤재 엄마는 집 가까이 큰 슈퍼마켓 아주머니다. 아빠는 대형마트에 가지 않고 웬만하면 그 슈퍼에서 산다. 최근에는 윤재네 가게 바로 앞에 큰 편의점이 생겼다. 얼마 전 윤재네 가게 문 닫은 날(휴가 내고 해남 여행을 다녀오셨다고) 편의점에 가서 우유를 샀는데, 편의점 우유가 200원 더 싸다는 것을 아빠가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아빠는 윤재네 가게에서 우유를 산다. 조금 비싸도 아는 사람 물건 팔아줘야 한다는 아빠가 살아온 방식이다. 그런 관계다 보니 쑥도 얻어오는 것이겠지.
올봄에 나는 쑥을 캐지 못했다.
엄마가 죽을 것만 같아서, 그 정도로 좋지 않아서 한가하게 쑥을 캐러 나갈 수가 없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쑥을 캐러 다닌 건 3년 전부터다. 우리(나+남편+딸)가 이사 간 동네에는 야트막한 산이 하나 있다. 시골 출신이라 땅만 있으면 뭐가 막 보이는데 산과 밭이 있으니 내겐 너무 보물산이다. 겨울이 끝날 무렵에는 보라색 겨울 냉이가 보이기 시작하고, 봄이면 냉이와 쑥으로 시작하여 미나리, 산부추, 달래, 돌나물, 망초대, 민들레, 고들빼기를 캐곤 했다.
먹는 것도 먹는 거지만 나는 채집 활동 자체를 좋아한다.
땅 파봐야 돈 10원 안 나온다는 말이 있는데, 땅만 파면 뭐가 나오니 신기하지 않을 수가. 내가 심은 것도 아닌데 저절로 자라난 나물을 캐는 것은 확실히 농사와는 다른 원초적인 재미를 준다. 나물 캐러 다니는 취미생활은 딸을 낳은 것 다음으로 최고의 생산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모든 것을 소비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도시생활을 지탱하는 힘이기도 하다.
그 중에 가장 흔한 것이 쑥이다.
쑥은 정말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한 달 내내 캘 수 있다. 쑥이 지천에 널렸고, 캐는 활동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그렇게 많은 쑥을 해먹을 일이 없어서 캐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쑥을 아무리 좋아해도 떡을 해먹지 않는 이상 봄에 한두 번 먹으면 더 먹고 싶지 않았다. 방앗간에 가져가서 쑥떡을 할까도 생각해봤는데, 너무 번거롭고 엄두가 나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런 나의 이야기를 듣던 엄마가 어렵게, 정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럼 쑥 좀 캐서 엄마한테 보내줄 수 있어?”
“응, 그럼. 당연하지. 근데 쑥 뭐하게?”
“우리 쑥버무리 너무 좋아해. 그거만 있으면 밥도 안 먹어. 소화도 잘 되고.”
몰랐다. 엄마, 아빠가 쑥버무리 그렇게 좋아하는지. 부모님과 친밀한 나도 그들이 뭐를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
사실 시골에서 쑥을 살 수는 있다. 근데 엄마는 시골 할머니들이 장에 내놓는 쑥이 지저분한 길가나 농약 잔뜩 뿌린 밭둑에서 캔 것일까봐 선뜻 사게 되지 않는다고 했다. 식재료만큼은 까다로운 엄마다.
“왜 그걸 지금 얘기해. 우리 뒷산에 쑥이 지천인데. 나 쑥 캐는 거 좋아하는 거 몰랐어?”
“아니 알았지. 그런데 우리가 쑥 좋아한다고 하면 너 힘들게 캐러 다닐까봐 그래서 말 안 했지.”
왜 좋아한다는 말을 못해. 뭐 차를 사달라는 것도 아니고 명품 백도 아니고, 고작 지천에 널린 쑥인데.
엄마의 조심스러운 고백 이후 3년 내내 주말이면 쑥을 캐서 엄마에게 택배로 보냈다. 그리고 꼭 생색을 냈다. 4월에 있는 엄마 생일 선물이자 5월 어버이날 선물이라면서 싸고 퉁치곤 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쑥 캐러 나가지를 못했다. 벌써 5월하고도 열흘째다. 지금이라도 쑥 캐러 너무 나가고 싶다. 쑥을 선물로 주는 전통을 이어가고 싶다. 엄마 제발 좀 일어나봐. 나 쑥 좀 캐러 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