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 사주는 오빠

인생 별 거 없다

by 소요

오빠가 밥 사준다고 나오라고 한다.


사촌오빠다. 큰집에 사촌오빠가 셋 있는데 그중에 둘째 오빠다. 오빠 셋 모두 사촌 동생인 나를 잘 챙겨주는데, 특히 밥을 잘 사주는 건 둘째 오빠다. 엄마 아프기 전에도 잘 사줬지만, 엄마 아프고 나서는 더 잘 사준다. 엄마 간병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면서.


오늘은 피자 먹으러 갈까? 여기 나폴리 피자 잘하는 데 있어. 화덕에 직접 구워.

의외였다. 오빠랑 밥을 여러 번 먹었지만 오빠가 피자 좋아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오빠 피자 좋아해? 한식만 좋아할 거 같은데…

이탈리아 출장 자주 다니다 보니 피자 좋아하게 됐어.


사실 나는 피자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안 좋아한다면서 피자 시켜 놓으면 잘 먹으면서 맨날 안 좋아한대, 하며 남편과 딸이 놀린다. 그 말도 맞다. 있으면 먹긴 먹는다. 선호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내가 먼저 피자 먹고 싶다고 하거나 내 돈 주고 사 먹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엄마 간병을 하면서 엄마 삼시세끼 밥 해주면서 매일 한식에 건강식만 먹다 보니까 그간 그렇게 찾아 먹지 않았던 피자, 햄버거, 빵, 짜장면, 이런 것들이 먹고 싶을 때가 있긴 하다. 그런데 이렇게 사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고맙지. 그런데 맨날 이렇게 얻어먹어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든다.


어릴 때부터 큰집이 가까워서 사촌들과 가깝게 지냈다.


클 때는 막내오빠와 가장 친하게 지냈다. 막내오빠가 숙제도 봐주고, 그림도 그려주고, 만화책도 보여주고 그랬다. 오빠가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줄 심증으로는 알았는데 물증까지 확보한 건 우표 책이었다. 오빠가 용돈 아껴가며 수집하던 우표 책을 자기 친동생이 아닌 나에게 물려줬을 때였다. 그런데 지금 밥 잘 사주는 오빠는 둘째 오빠다. 가까이서 살아서도 그렇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둘째 오빠와의 추억은 많지 않다. 아마 열 살이라는 나이 차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성향도 달랐을 것이다. 오빠는 좀 와일드하고 정이 너무 넘쳐서 다소 거리를 두고 싶은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스타일이다. 명절 때 가끔 보긴 했어도 따로 만나고 그러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 5년 전쯤 일하던 직장에서 벌어진 큰 사건으로 충격받아 엄마 집에도 안 오고 집에 처박혀 두문분출하고 있을 때 갑자기 둘째 오빠가 우리 집 근처에 와서 전화를 했었다. 지나가다가 들렀는데, 밥이나 같이 먹자고. 그렇게 우리는 밥을 먹게 됐다.


그렇게 이따금씩 밥을 먹다가 엄마가 많이 아프고 내가 엄마 집으로 오게 되면서 맨날 밥 사준다고 불러내고 있다.


맨날 만나면 엄마 얘기다. 오빠와 늘 같이 나오는 내가 언니라고 부르는 사촌오빠의 부인은 엄마랑 친하게 지냈다. 둘 다 착하고 순한 성격도 비슷하고, 말도 잘 통하고 서로 많이 의지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러 다녔다고 한다.


나도 엄마에게 듣긴 들었다. 언제부턴가 언니 얘길 많이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니의 내밀한 사정도, 오빠의 사업 이야기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서로 속을 터놓는 사이가 된 것 같았다. 엄마에게 언니는 조카며느리인데, 멀다면 먼 관계인데 저렇게 가깝게 지내는 것이 좀 신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 각자 집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과 서로의 감정들이 활발하게 오고 갔다. 오빠와 언니는 엄마에게 밥을 사주고 싶은데, 엄마가 저렇게 누워만 있으니 밥은 내가 다 얻어먹고 있다. 맨날 이렇게 얻어만 먹고 나는 어떻게 보답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 부담스러웠다. 엄마가 흑염소 좋아한다고 포장해 오고, 추어탕 먹다가 생각났다며 포장해 오고, 그럴 때마다 나는 뭘로 갚지 부채감이 엄청났다. 그런데 엄마가 많이 아프고, 그런 생각은 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조금은 이기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지금은 편하게 얻어먹자. 잘 먹고 힘내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맨날 바쁜 오빠 시간 뺏어서 미안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도 안 하기로 했다. 오빠도 좋아서 사주는 거겠지. 사업을 잘 키워서 자수성가한 오빠는 밥 먹을 때마다 그런다.


내가 이렇게 저렇게 살아보니 인생 별 거 없더라. 이렇게 좋은 사람 만나서 밥 먹고 사는 얘기하고 그게 다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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