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엄마를 독점하려고 했나

돌봄에의 초대

by 소요

부처님 오신 날, 동생이 왔다.


동생이 온다고 하면 분주해진다. 조금이라도 괜찮은 엄마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엄마를 보여주고 싶지만, 그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열심히 안 되는 것이 있다. 엄마는 더 좋아지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금이라도 단정해보이는 엄마를 만드는 거다. 엄마를 공들여 씻기고, 손발톱을 깔끔하게 깎고, 화장품을 꼼꼼하게 바르고, 가장 깨끗하고 예쁜 옷을 골라 입히고, 머리 드라이까지 해서 앉혀 놓았다. 좋아진 건 아니지만 겉으로는 좋아 보이게.


동생이 집에 와도 딱히 할 일은 없다.


와서 누워있는 엄마 한번 쓱 들여다 보고, 엄마 괜찮아? 물어보고, 대답없는 엄마를 바라본다. 그리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쓰레기 버리고, 설거지를 찾아한다.


나는 동생을 엄마 돌봄에 적극적으로 초대한 적이 없다.


동생은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가고, 장을 봐서 집으로 보내주고, 엄마 병원비를 낸다. 주간병인인 나의 지시와 부탁이 없으니 동생은 그저 우리 주위를 맴돌고 지켜보기만 했다. 특히 돌봄에서 난이도 상에 해당하는 일-화장실에 데려가고, 씻기고, 기저귀 갈고, 뒤처리하는 일은 아예 동생에게 보여주지도 않았다. 동생이 오기 전에 미리 해두거나 떠나면 했다. 최후의 보루 같은 거랄까. 목욕과 대소변 처리를 하다 보면 엄마가 얼마나 더 퇴행하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기도 하고, 엄마를 돌보는 나도 신체적, 정신적 한계에 직면하게 되는 일이다. 속으로 욕을 하고 겉으로 짜증을 내고, 이 모든 걸 끝내고 싶은 마음에 죽음을 생각하는 나의 악마성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엄마와 나의 치부 같아서 동생에게 가능한 보여주기 싫었다.


울고 있는 동생 모습이 생각난다.


엄마가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수술하기 전 엄마의 머리를 싹 밀었을 때,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에서 회복하고 있을 때 아이처럼 우는 동생이 너무 안쓰러웠다. 저렇게 때마다 울고 앉아 있으니 동생을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엄마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오지 말라고도 했었다. 와 봤자 할 일도 없고, 와 봤자 엄마랑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안 좋아지는 엄마를 단체로 관람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다.


그런데 엄마의 병이 장기화되면서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이렇게 동생이 아무것도 못하고 엄마 곁을 맴돌다가 갑자기 엄마가 떠나버리면 동생이 두고 두고 후회하고 나를 원망할 것 같아서다. 이제는 동생이 온다고 하면 말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에 처음으로 동생을 엄마 돌봄에 참여시켰다. 돌봄에 참여한다는 것은 엄마를 함께 만지는 일이다. 축 늘어진 엄마를 일으키고, 힘껏 부둥켜 안고 화장실에 데려가고, 엄마를 씻기고 새옷을 갈아입히고, 밥을 먹이고, 손발을 주무른다. 엄마를 잠시라도 서 있게 하는 것, 우리는 운동이라고 부르는 것도 동생에게 해보게 했다. 엄마를 직접 만지고, 엄마를 앞에서 껴안고 뒤에서 붙들고 하면서 엄마의 체온, 엄마 숨소리를 느끼고, 엄마 냄새를 맡아보라고. 그렇게 엄마를 만지고 느껴보아야 엄마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도 말을 못해서 그렇지, 아들이 만져줘서 좋았을 것이다. 아프지 않았다면 다 큰 아들이 이렇게 엄마를 만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좋아진 엄마를 보여주겠다는 마음, 나빠진 엄마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 엄마와 관련하여 내가 모든 걸 통제하려는 마음, 힘든 건 나 혼자 감당하겠다는, 이타적인 듯 이기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엄마 돌봄에 동생을 초대하고 엄마 곁에 동생 자리를 만들었다.


왜 엄마를 내 마음대로 하려고 했을까.

왜 좋아진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왜 말로써만 교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동생이 돌봄에 참여하니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엄마를 실컷 만져서인지 돌아가는 동생의 발걸음도 한결 좋아 보인다. 이제 우리 같이 엄마를 실컷 만지자. 엄마가 우리 곁에 있을 때, 모든 감각으로 엄마를 기억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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