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많이 아프지만 난 오르고 싶었어.
남편과 딸이 온다길래 여름 옷가지를 좀 챙겨와달라고 했다. 엄마 집에 내 옷이 점점 쌓여간다. 앞으로 내 옷이 얼마나 더 쌓이게 되려나.
엄마는 여전히 많이 아프다. 이미 장기적인 여정이 되었다.
쉬어가야 한다. 심호흡이 필요하다. 아픈 엄마에게서 멀어져 남편과 딸에게로 가고 싶다.
지난번에는 동굴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어딘가 올라가고 싶다는 마음이 튀어나왔다.
원래 나는 산을 좋아한다. 산을 오르면 산을 내려올 수 밖에 없다. 완결성을 선사한다. 산을 오르면 내려다 볼 수 있다: 더 멀리, 더 넓게 볼 수 있다. 뭔가 끝없이 펼쳐진 간병인의 삶, 실망과 좌절로 점철되고 있는 내 삶에 다른 시야, 다른 마음이 필요하다. 그렇게 가게 된 곳이 단양 온달산성. 유홍준 씨가 어딘가 나와 극찬했던 그 곳에 언젠가 한번은 가봐야지 했었던 곳이다.
명색이 산성인데, 산을 좀 올라야지.
초입을 벗어나니 가파른 산길이 계단으로 이어진다. 나도 이 정도로 가파른 산길일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딸이 투덜댄다. 산은 좋아하지만 계단은 재미없다고. 남편이 긴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지팡이를 삼으며 앞서간다.
나는 원래 산을 잘 탄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가장 뒤쳐진다.
최근 많이 걷지 못했다. 운동량이 부족한 상태다.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종아리가 당긴다. 허벅지가 덜덜 떨린다. 엄마가 많이 아프지만 않았다면, 내가 간병하는 신세만 아니었다면, 원망이 나에게 쏟아질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말없이 투덜대고 딸은 한두 번 투덜거리다 만다. 내가 가여운 거다. 가여운 내게 투덜거리지 못하고 스스로 제동을 건다.
사람이 없다. 올라가면 전망이 얼마나 훌륭한지 몰라도 가는 길이 험하니 찾는 사람이 없다.
가다 보면 가끔 산악회 리본이 걸려 있을 뿐. 사람 마음이라는 게 상대적이다. 애초에 등산이라고 생각하면 등산할 각오를 하기 때문에 크게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애초에 등산이 아니라 온달산성이라는 유적지 관람으로 생각하고 왔는데 등산을 하고 있으니 더 힘이 든다. 하지만 산의 미덕은 올라간 게 아까워서 내려갈 수 없고 끝까지 간다는 것.
드디어 산성이 보인다. 멀리서 보니 생각보다 웅장하고 가까이 가니 생각보다 섬세하다.
산이 생긴 모양에 따라 성이 오르락 내리락 리듬이 느껴진다. 저 아래로 남한강이 보이고 뒤로는 첩첩산중 가운데 너른 평지, 영춘이라는 마을이 보인다. 그러게 산성에 오르니 적들이 쳐들어 오는 게 한 눈에 보이겠네.
여기 오는 사람이 우리 밖에 없어.
이렇게 아름다운 전망, 아름다운 산성이라도 힘드니까 아무도 오지 않는구나. 사람이 많은 관광지를 싫어하는 나는 이곳에 우리밖에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 뿌듯하고, 뭔지 모를 우월감도 밀려온다. 내려가기 싫다. 내려가면 엄마에게 가야 한다. 하지만 내려가야 한다. 산은 그렇게 완결되어야 하고, 나는 엄마에게 돌아가야 한다.
저기 사람이 있어.
내려가는 길에 우리도 말했고, 저쪽에서도 말했다. 우리 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우리같은 사람이 또 있었다. 다른 쪽에서 올라온 커플이 보였다. 올라오는 사람이 있구나. 우리 같은 사람이 있구나.
이렇게 힘든 사람이 나 밖에 없을 거야.
불운한 일이 겹쳐지고, 고통이 계속되어 시야가 좁아지면 생각도 좁아진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힘든 사람이고, 이렇게 힘든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은 지독한 외로움과 고립감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알고 보면 나 같은 사람이 저기 또 있다. 알고 보면 모두가 크고 작은 고통을 안고 살아가겠지. 다 그렇게 살아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