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그릇을 깬다

서로에게 서로가 있다

by 소요

냉장고에서 반찬 그릇을 꺼내다가 떨어뜨렸다.

그릇에 담겨 있던 김치가 사방으로 튀었고, 아침에 갈아입은 옷에도 튀었다. 하필 새하얀 새 옷. 김치 양념은 그릇을 벗어날 때 사악해진다. 옷에 묻으면 잘 지지도 않고, 살갗에 닿았을 때 유난히 차갑고 복잡하게 끈적거린다. 옷부터 갈아입으려고 방에 들어왔다. 쨍그렁 쨍그렁. 밖에서 유리 조각 치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냥 둬. 내가 치울게.


내 말을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아빠는 분주하게 깨진 그릇을 모아서 쓰레기봉투에 넣는다. 그 쓰레기봉투. 그 안에는 며칠 전 아빠가 깬 유리 조각이 담겨 있다.


나는 원래 그릇을 잘 깬다.

성마른 성격 탓인지, 손에 야무지지 못한 탓인지 그릇을 잘 깬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삶이 평온하고 급할 게 없을 때는 덜 깬다. 반대로 뭔가 불안하고 조급해서 짜증이 나면 깨는 빈도가 확 늘어난다.


그릇을 특히 많이 깼을 때는 아기 낳고 육아 전선에서 고군분투할 때였다.

내 손에 들어온 그릇들은 속수무책으로 내 손에서 미끄러져 나가떨어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하고 많은 그릇 중에 하필 유리로 된 볼에 초고추장 만들다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다. 이럴 때 선혈이 낭자하다,라는 표현이 생각날 정도로 초고추장이 사방으로 튀었고, 내 얼굴에도 튀었다. 나는 풀썩 주저앉았다. 그냥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전날에는 밥을 안치려다 밥솥째로 떨어뜨렸다. 밥솥이야 깨지지는 않았지만 젖은 쌀이 사방으로 튀어서 치우기 힘들고 기분 나쁜 건 매한가지였다.


그때 남편이 나와서 아무 말 없이 수습해 주었다.

그게 타박하는 말이던 걱정하던 말이던, 무슨 말이라도 얹었으면 나는 폭발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남편은 틀림없이 유탄을 맞았을 거고. 그런데 그냥 아무 말없이 조용히 치운 덕분에 나는 잠시 후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그때 내 감정은 널을 뛰었다)


그릇 깨는 것도 유전인가? 엄마도 그릇을 잘 깬다.
엄마는 시각장애인이니까 아무래도 살림이 어설프다. 엄마 집에는 유리나 도자기 그릇이 거의 없다. 찌그러질지언정 절대 깨지지 않는 스텐 그릇과 잘 안 깨진다고 자랑하지만 가끔 깨지는 코렐만이 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스텐 그릇이 싫다. 기껏 맛있는 음식을 맛없게 보이게 만든다. 보기 좋은 게 맛도 있다고, 나는 그저 그런 음식도 예쁜 그릇에 플레이팅을 한다. 그래서 엄마 집에 올 때마다 유리컵, 도자기 그릇을 사다 놓곤 했다. 그러나 다음에 와 보면 내가 사다 놓은 그릇은 다 어디 가고 없고(분명 깨졌을 거고) 스텐 그릇만 남아있다.


나나 엄마는 원래도 잘 깨니까 그릇을 깬다 해도 놀랄 게 없다. 하지만 아빠가 그릇을 깨는 건 처음 봤다.

그래서 아빠가 그릇을 깼을 때 나도 놀라고 아마 본인은 더 놀랐을 것이다. 아빠는 에고 그릇을 깼네, 혼잣말을 하면서 다급하게 수습했다.


그렇다. 우리 가족은 엄마를 간병하며, 또 간병이 길어지며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어수선하다. 하지만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버텨내는 건 누구라도 그릇을 깼을 때 말없이 치워주는 사람이 옆에 있어서다. 서로의 곁에 서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