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뻔뻔해지기로 했다

엄마가 많이 아프고 나는 돈을 받는다

by 소요

전화가 온다. 막내 외삼촌이다. 요즘 나에게 오는 전화는 죄다 엄마의 안부를 묻는 전화다. 엄마에겐 네 명의 동생이 있는데, 그 중에 셋째, 막내 삼촌이 번갈아 가며 전화를 한다.


엄마가 안 좋을 때는 전화도 반갑지 않다. 솔직히 받기 싫다. 현장 유지도 아니고 더 안 좋아진 엄마 소식을 전하는 게 싫고 죄스럽다. 엄마가 안 좋을 때란 엄마가 단 한 마디의 말도 안(못) 할 때다. 언제부턴가 내가 전화를 안 받으면 친척들은 엄마가 안 좋은가, 하고 자체적으로 생각하신다. 언제고 엄마가 단 한 마디라도 할 수 있게 되면 전화를 연결한다. 다들 묻는 게 똑같다.


밥 먹었어?

응.

뭐 먹었어?

대답없음 또는 엄마가 더 이상의 말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내가 대리로 대답한다.


엄마의 병이 길어지자 이제는 돈도 온다. 카카오페이로. 그리고 문자도 왔다.


엄마 돌본다고 고생 많고 미안하고 고맙다.

같이 돕지도 못하고 마음만 무겁다.

약소하지만 돈 보내니 받아서 엄마 맛있는 거 사는데 보탰으면 한다.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


평생 외삼촌과 연락을 주고 받을 일이 없었다. 엄마가 아프니 전화도 받고, 문자도 받고, 이제 돈도 받아야 한다. 나는 돈 받는 게 익숙하지 않다. 돈 안 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건 나한테 주는 돈이 아니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안 받는다고 극수 사양을 해도 결국 받게 될 돈이다. 어차피 받을 돈이지만 엄마한테 물어본다.


엄마 삼촌이 돈 보냈는데, 돈 받아도 돼?

응, 받아도 돼.

어쩐 일로 말을 한다. 그리고 꽤 진심인 것 같고.

엄마 많이 뻔뻔해졌네. 돈 받으라고 하고.

대답없음


엄마는 처녀 엄마였다.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큰 딸인 엄마가 동생 넷을 돌봤다. 큰 삼촌은 일찍부터 큰 도시로 가서 취업을 했지만 시골에 남아있는 동생들을 돌봐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남은 엄마가 동생을 돌보고 살림만 하다가 혼기를 놓쳤는지 당시로는 늦은 26살에 중매로 시집을 왔다. 그때가 막내삼촌 일곱 살인가였는데 누나가 남자 만나서 자기를 버리고 시집 가서 원망스러웠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엄마는 시집 와서도 친정 식구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가세가 기운 친정 식구 먹고 살라고 논도 사 주고 소도 사주고, 삼촌들 대학도 보내고, 결혼도 시키고. 엄마 쓰러지기 직전까지 삶이 궁핍해 엄마에게 매달리던 이모에게 목돈을 보내고도 걱정이 돼 잠을 못 자던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가 더 이상 돈을 보내줄 수 없는 처지가 되자 이모는 연락 없음) 엄마는 아빠에게 고마워한다. 평생 살면서 보답할 거라고 했다. 당시에는 친정 식구 돕는 걸 싫어하는 남자도 꽤 많았지만 아빠도 진심으로 처가 식구들을 돕고 삼촌들 다 잘 되고 나서도 생색 한 번 내지 않았다(고 한다). 결론은 돈을 받아도 된다는 것.


이제는 노환과 치매로 고생하는 고모, 가까이 사는 사촌오빠, 멀리 사는 외사촌오빠, 그리고 내 시부모님과 친한 친구들도 나에게 돈을 보낸다. 나는 이제 뻔뻔하게 돈을 받기로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사양하고, 답례하고 그럴 여력이 없다. 그리고 입장 바꿔서 생각해도 돈을 보내는 것 말고 달리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도 한두 번이지. 이럴 땐 돈이 유용하다. 그리고 그동안 엄마가 많이 베풀며 살았으니까 이럴 때 돈 좀 받아도 될 것 같다. 돈 받고 맛있는 거 사먹자. 잘 먹어야 엄마도 살고, 나도 살지. 다 먹고 살자고 그러는 거니까.